세월은 되풀이해 비슷한 모양으로 흘러간다.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또 여름이 오고 겨울이 된다. 신문은 매일 발행되고 나도 그것에 종사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3년째 여름 어느 날, 더워서 미칠 것 같은 밤이었다. 새벽 판 발행을 앞두고 세계의 저쪽에서 무슨 전보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긴장된 기분은 먼저 말한 것과 똑 같았다.

지난 2년간 지명인사가 두세 명 죽었고 인쇄기의 소음은 더욱 요란해졌으며 신문사 뜰의 나무는 몇 피트 더 자랐다. 하지만 변화란 그런 정도였다.

나는 인쇄소에 나가 똑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신경의 긴장은 2년 전보다 강하고 더위도 한층 더 심하게 느껴졌다. 3시에 "인쇄 개시"하고 외치고 돌아설 때, 무척 초라한 어떤 인간이 의자 쪽으로 다가왔다. 머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앞으로 구부린 채 곰처럼 갈 지자 걸음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 사나이가 걷는지, 기는지 거의 분간할 수 없었으나 그 누더기를 걸친 절름발이는 우는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난 돌아왔습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다. "마실 것을 좀 주세요." 그는 우는 소리를 냈다. "제발 마실 것 좀 주세요!"

내가 편집실로 가자 그 사나이는 괴로운 듯 앓으면서 따라왔다. 나는 램프의 심지를 크게 했다.

"당신, 날 알겠소?" 그는 굴러 떨어지듯 의자에 앉아 숨을 헐떡이며 회색 머리털이 쑥대밭처럼 헝클어진 찌푸린 얼굴을 들어 불빛을 향했다.

나는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1인치나 되는 굵은, 코 위에서 마주친 짙은 눈썹을 본 기억이 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본 기억이 없는데" 나는 그에게 위스키를 주면서 말했다. "무슨 일로 온 거요?"

그는 위스키를 병 채 들고 꿀꺽 한 모금 마시더니, 질식할 것 같은 열기에도 불구하고 몸서리를 쳤다.

"난 돌아왔소." 그는 되풀이했다. "난 가피리스탄의 왕이었소. 나도 드라보트도, 왕관을 쓴 왕이었어! 이 방에서 우리는 맹세했지. 당신은 거기 앉아서 우리에게 책을 빌려 주었고. 난 피치요. 피치 다리아페로 개넌 말이오. 당신은 그 때부터 쭉 여기 있었구. 엄청난 차이구먼!"

난 적지 않게 놀랐다. 내가 무척 놀랐다는 것을 피치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정말..." 피치 개넌은 누더기를 두른 다리를 비벼대며 메마른 소리로 지껄였다. "이건 분명해요, 우리는 머리에 왕관을 얹은 왕이었소. 나도 드라보트도 말이야, 불쌍한 단... 아, 불쌍한 단. 나 그 놈에게 여러 번 말해 봤지만 내 충고는 먹혀 들지 않았어!"

"위스키라도 마시고 기분을 가라앉혀요." 나는 말했다. "생각나는 것은 모두, 남김없이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지 않겠나? 드라보트는 미친 사제, 자넨 그 하인으로 변장하고 낙타로 국경을 넘었지, 기억하고 있나?"

"난 아직 미치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곧 그렇게 되겠지. 물론 난 기억하고 있소. 가만히 내 두 눈만 바라보시오. 그렇잖으면 내 말은 끊기고 말 거야. 가만히 내 눈을 쳐다보고 말은 하지 마시오."

나는 몸을 앞으로 당기고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개넌이 한 팔을 털썩 테이블 위에 떨어트렸기 때문에 나는 그 손목을 쥐었다. 그 손은 새의 발같이 거칠어지고 손등에 붉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상처가 불거져 나와 있었다.

"아니, 그런 것을 보면 안 돼. 나를 봐야지." 개넌이 말했다. "그 상처에 대해선 나중에 얘기하지. 그러나 지금은 제발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 캐러번들과 함께 갔지. 동행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나와 드라보트는 여러 가지 우스운 짓을 해 보였어. 캐러번들이 저녁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드라보트 녀석이 모두를 웃기곤 했지... 그리고... 그리고 놈들은 뭘 했더라?"

"모닥불을 피웠는데 그 불똥이 드라보트의 수염에 튀어서 다들 죽어라고 웃었지. 조그만 불똥이 드라보트의 빨간 수염으로 튀어서 말이야... 어찌나 우습던지..." 그는 눈을 내 눈에서 떼곤 백치같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서 자네들은 캐러번과 함께 자그다라크까지 갔겠군." 나는 짐작으로 말했다. "자그다라크에 가서 가피리스탄으로 길을 돌았지?"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길이 괜찮다고 그래서 자그다라크 바로 앞에서 길을 꺾었소. 그런데 우리 일행, 나와 드라보트 그리고 낙타 두 마리가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어. 캐러번과 헤어진 후 드라보트와 나는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지. 가피리스탄 사람들은 마호멧 교도에겐 말을 안 하니까 이교도가 되자는 거였지."

"그래서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했어. 아마 그 꼬락서니를 상상도 못할 거야. 드라보트는 수염을 반쯤 태워버리고 어깨에 양 가죽을 걸치고 머리는 듬성등성 깎아 버렸소. 놈은 내 머리도 깎고 이교도처럼 보이도록 야릇한 옷을 입혀 주었소."

"험한 산중이어서 우리 낙타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어. 그 낙타는 마치 산양처럼 성질이 거칠었지. 가피리스탄엔 산양이 많아. 그리고 그 산도 그 산양처럼 성질이 거칠지. 항상 변덕을 부리고 사람을 못 살게 굴지. 언제나 싸움을 걸어와 밤에 잠을 못 자게 하거든."

"위스키를 한 모금 더 하는 게 어때" 나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가피리스탄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해서 낙타가 가지 못하게 됐을 때 자네와 드라보트는 어떻게 했어?"

"우리가 뭘 했느냐고? 드라보트에겐 피치 다리아페로 개넌이라는 짝이 있었지. 그 놈 얘기를 해줄까? 그 녀석은 그 추운 곳에서 죽어 버렸어. 다리에서 발이 미끄러져 1페니 짜리 팔랑개비처럼 공중에서 몸이 빙빙 돌다가 뒤집어지다 하면서 피치는 밑으로 떨어졌어. 아니 그렇군, 그건 두 개 3펜스 반이야, 그 팔랑개비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엄청 실수한 거지. 또 손해를 보겠고..."

"낙타는 소용 없게 되었지. 그래서, 피치는 드라보트에게 말했어. '우리 목숨이 달아나기 전에 뭔가 수를 내 보자'고 말이지. 그래서 둘은 낙타를 죽여버렸지. 먹을 것이 전혀 없었거든. 그리고 총과 탄환만 챙겼어. 마침 두 사나이가 노새를 네 마리 끌고 지나가더군. 그러자 드라보트가 놈들 앞에 나가 사정을 했지. '노새를 팔라'고 말이야."

"그러자 한 녀석이 '그런 돈이 있다면 이리 내 놔라'고 그러더군. 그러나 그 놈이 칼에 손을 대기도 전에 드라보트가 무릎으로 그 놈 목을 꺾어버리니까 나머지 다른 녀석은 달아나 버렸어. 개넌은 낙타에서 내린 총을 노새에 싣고 둘이 함께 추위가 뼈 속까지 스미는 산속을 기어갔어. 그 길이란 게 손바닥 만 했지."

그가 잠깐 말을 멈춘 사이에 나는 그가 갔던 나라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물어봤다.

"될 수 있는 대로 있는 그대로 선생에게 얘기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머리가 이전보다 좋지 못해. 드라보트가 죽을 때 똑똑히 보라고 놈들이 내 머리 속에 못을 박고 말았거든. 그 나라는 온통 산 뿐이고 노새도 견뎌내지 못하고 거기다 사람이라고 해야 가물에 콩 나기로 볼 뿐이야. 우리 둘은 기어오르다가 다시 내려가고... 개넌은 눈사태라도 생길까 봐 드라보트에게 너무 노래를 크게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지 말라고 부탁했지. 드라보트는 노래도 못 부른다면 왕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그러더군."

"우리는 그렇게 노새 꽁무니를 때리면서 한 시도 쉬지 않고 10일 동안 걸었지. 우리들이 산중의 크고 평평한 골짜기에 왔을 때엔 노새가 완전히 지쳐버려 다시 죽여 버렸어. 그놈들도 우리들도 먹을 게 전혀 없었어. 우리들은 상자에 앉아 노름을 했지. 그 때 활을 든 남자 열 명이 스무 명의 남자에게 쫓겨 그 골짜기로 달려 내려왔어. 녀석들 끔찍하게 싸우더군."

"그놈들은 백인이었어. 당신이나 나보다 더 하얀 거야. 머리칼은 노랗고 체격도 아주 당당했어. 드라보트가 총을 꺼내며 그러더군. '우리 사업의 마수걸이다. 저 열 명을 돕자.' 그러면서 그는 스무 명 쪽으로 두 발 쐈어. 2백 야드 쯤 떨어진 곳에 있던 놈이 푹 쓰러지더군. 다른 놈들은 도망쳤지만 개넌과 드라보트는 상자에 앉아 골짜기 위 아래로 거리도 재지 않고 마구 쏴댔지."

"그리고 나서 열 명 쪽으로 가니까 그놈들도 우리에게 화살을 쏘더군. 하지만 드라보트가 그놈들 머리 위로 빵빵 맥이니까 전부 땅바닥에 납짝 엎드렸지. 그는 놈들에게 걸어가 발로 걷어찼지. 그리고 그놈들을 일으켜선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모두 악수를 했어."

"놈들을 불러모아 상자를 운반시키면서 그는 이미 왕이 된 것처럼 행세했어. 일행은 상자를 짊어지고 골짜기를 가로질러 구름을 헤치고 산 꼭대기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어. 거기에는 커다란 석상이 여섯 개 서 있었지. 드라보트가 그 중 제일 큰 것에 가서 - 그건 인브라라고 하는데 - 총과 탄약을 밑에 놓곤 그 석상의 코와 자기 코를 공손하게 부비고 머리를 어루만진 다음 그 앞에 절을 했지."

그는 놈들에게 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어. '이제 됐어. 난 잘 알고 있어. 이 늙은 인형들은 모두 나와 친해.' 그리고 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켰어. 녀석들이 먹을 것을 가져오자 '필요 없어'라고 하더군. 두 번째 사나이가 먹을 것을 가져와도 '필요 없어' 그러는 거야. 그러나 나이 많은 노인, 그 부락의 추장이 먹을 것을 가져오니까 '좋아' 그러면서 천천히 먹더군."

"이렇게 해서 그는 별안간 귀신처럼 떡 나타나 별로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마을에 도착한 거야. 결국 우리는 그곳의 그 다리에서 떨어지게 됐지만 말이야,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