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한 사나이라면 왕의 형제 분이나, 아니면 거지의 친구라도 되겠지.

이 표현은 편협하지 않은 처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대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그 동안 여러 번 거지의 친구가 된 적은 있으나, 그게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어떤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나는 왕이 되려다 만 어떤 사나이와 매우 친해져서 어떤 왕국 즉, 군대와 법정, 세금과 국가 정책 등을 제대로 갖춘 하나의 왕국을 양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왕의 형제가 되지는 못했다. 왕이 되려다 만 이 사나이도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내가 왕관이 탐이 나면 내 스스로 찾으러 나가야 할 판이다.

그 일은 인도의 아지밀에서 마우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처음 시작됐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나는 일등석의 반액에 불과한 2등조차 타지 못하고, 견디기 어려운 하급 객석에 앉아 여행하고 있었다. 하급 객석엔 쿠션도 없고 승객들은 하층 유라시아 사람이거나 원주민들이어서, 긴 밤차 여행을 같이하기에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대개 한 잔씩 걸쳐 얼큰해진 부랑인들이었다.

이런 하층민들은 식당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보자기나 병에 음식을 넣어 오거나 원주민 과자 장사에게서 과자를 사기도 하고 길가의 물도 마신다. 당연히 더운 계절에는 열차 안에서 죽어 나가기도 한다. 이들이 푸대접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하급 객석은 나시라바드에 도착하기까지 텅 비어 있었다. 그 역에서 한 사람 키가 크고 눈썹이 짙은 신사가 와이셔츠 바람으로 올라 타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 사나이도 나처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있었으나, 그래도 위스키에 관해서는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그 사나이는 자기가 겪은 사건이나, 인도의 벽촌에 가 본 체험담, 단 며칠 먹을 양식 때문에 결사적인 모험을 벌인 얘기 등을 들려주었다.

"만약 인도 사람들이 모두 당신이나 나처럼 매일매일 밥벌이를 한다면 인도에서 얻을 세입은 7천만 정도가 아닙니다. 적어도 7억 정도는 짜낼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말했다. 나는 상대방의 입과 턱을 바라보면서 과연 그런가 하고 무심히 들었다.

우리들은 정치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그래 봐야 정치판 멀리서 상황을 바라보는 떠돌이들이 여기저기서 줏어 들은 인도 지방 왕국의 정치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다. 우편 행정에 관한 얘기도 화제가 되었다. 내 이야기 상대가 마침 다음 정거장에서 아지밀로 전보를 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지밀은 인도 서부로 가는 봄베이 선과 마우 선 철도의 분기점이다.

내 상대방이 가진 돈은 밥값도 하기 어려운 8아나 뿐이었으며 나도 아까 말한 것처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지갑에 한 푼도 없었다. 더욱이 나는 인도의 벽지로 가는 도중인데, 재무부와 미리 연락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내 목적지엔 우체국 따위는 없다. 그래서 어차피 나는 그를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역장을 공갈해서 요금은 나중에 지불하기로 하고 전보를 치면 됩니다." 그 친구는 말했다. "당신에게 이것 저것 묻겠지만, 그래도 요즘 나는 여기저기 쫓기는 판이라서.... 당신이 머지 않아 이 노선으로 돌아올 때 도와주면 안될까요?"

"내 일정은 열흘 가량 걸립니다." 나는 대답했다.

"8일 이내에 돌아오실 수 없을까요?" 그는 말했다. "내 일이 조금 급한 거라서요."

"열흘 이내에는 당신 전보를 쳐드릴 수 있겠지만... " 나는 말했다.

"하긴 다시 생각하니 전보 같은 걸로는 그 놈을 불러 들이지 못할 것 같은데... 사실 내가 전보를 보내는 녀석은 23일에 델리를 출발, 봄베이로 갈 테니까 즉 23일 밤에 아지밀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난 지금 인도 중부 사막 지방으로 취재차 가는 길입니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이것 대단하시군!"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조도포아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와 역에서 갈아 타게 되겠지요.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봄베이 행 우편 열차로 24일 아침에 마와 환승역을 통과하게 되어 있어요. 그 시간에 역까지 나와주실 수 없을까요? 당신에게 별로 지장은 없을 줄 같습니다만... 당신이 바크우즈만 신문의 통신원이라 해도, 사실 그런 인도 중부 지방에는 기사거리로 쓸만한 건 전혀 없으니까요."

"당신도 그 지방에서 기사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물어 보았다.

"여러 번 있지요. 하지만 관리들에게 곧 적발돼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에 쫓겨나곤 했지요. 그런데 내 친구, 그 친구에게 용무를 알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그 놈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완전히 계산이 어긋나게 되거든요. 당신이 마와 환승역에서 그 놈과 만나 '그 남자는 이번 주에 남부로 가 있을 거요'라고 전해 준다면 무척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만 말해도 충분히 알아먹을 수 있습니다. 그 친구는 빨간 수염을 기른, 키가 큰 사나이로 대단한 멋쟁이입니다. 짐을 팽개친 채 이등차에서 신사 차림으로 누워 자기도 하지요. 아무튼 그 친구를 찾아 '그 남자는 이번 에 남부로 가 있다'고 말해 주시면 됩니다. 당신의 저쪽 체류 일정을 이틀쯤 단축하면 됩니다."그는 힘주어 말했다.

"당신은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나는 물었다.

"동부에서요." 그는 말했다. "당신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내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영국인은 대개 어머니의 추억이라고 해도 좀처럼 부드러운 기분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때 어쩐지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당신이 내 부탁대로 말을 전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마와 환승역에서 이등 객차입니다. 거기 누워 있는 붉은 수염의 남자입니다. 틀리면 안됩니다. 전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전해주면 그 친구가 찾아오거나, 아니면 내게 필요한 물건을 부쳐올 겁니다. 그래서 난 거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보면 전해 드리지요." 나는 말했다. "그런데 내 어머니와 당신 어머니를 위해 충고하죠. 지금 상황에서 바크우즈만 신문의 통신원이라고 떠들면서 인도 중부지방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할 겁니다. 그 쪽에 진짜 통신원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어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 통신원 자식들은 언제쯤 돌아갈까요? 그 자식들이 내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해서 무작정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까. 난 데간바 토후의 계모 사건을 미끼로 저 토후 자식을 혼내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 토후가 자기 계모에게 무슨 일을 한 거요?" "고춧가루를 싫컷 먹인 뒤 기둥에 달아매어 숨이 넘어가도록 마구 때렸습니다. 그 사건을 냄새 맡은 사람이 몇 있지만, 거기 찾아가 토후를 협박해 돈을 얻을 용기를 가진 사람은 나뿐이오. 내가 이전에 비슷한 사건으로 골드움나로 찾아갔을 땐 녀석들이 내게 독약을 먹이려고 했지요. 그건 그렇고, 내가 부탁한 것을 마와 환승역에서 그 친구에게 전해 주시겠지요?"

그가 시골의 조그만 역에서 차를 내린 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신문사 통신원의 이름을 빌려,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조그만 지방의 토후에게서 돈을 뺏어내는 인간들의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직접 그런 인간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 생활을 보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이 예사다.

인도 오지 지방의 토후들은 자기들의 특이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영국 신문에 대해서 뿌리 깊은 공포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을 노리는 신문 통신원들에게 샴페인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하거나, 마차에 태워 쫓아내는 일이 많다. 그들이 백성을 지나치게 억압해 폭동이 일어나거나 너무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토후가 누군가에게 독약을 먹이건 말건, 주정뱅이가 되건 말건, 병에 걸리건 말건 세상 사람들이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토후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방은 지상의 암흑세계라고 할 만하다. 그곳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한쪽에선 철도나 전신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옛날 하른 알 라시드 시대 그대로인 것이다.

나는 열차에서 내려 여러 토후들과 만나 일을 마치는 8일 동안 수많은 굴곡을 거쳐야 했다.  하루는 그럴싸한 예복을 입고 왕후나 위정자들과 섞여 수정 술잔을 기울이며 백은 그릇으로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에는 땅바닥을 기며 닥치는 대로 풀잎에 음식을 담아 먹고, 냇물로 목을 축이고 하인과 함께 모포를 덮고 자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

일을 마치고 난 약속대로 예정일에 인도 사막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야간 우편 열차는 나를 마와 환승역에 내려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조그마한, 천하태평이라는 태도의 인도인이 운영하는 철도가 조도포아로 향한다. 델리에서 오는 봄베이행 우편 열차도 여기서 잠깐 정차한다.

내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그 우편 열차도 구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다급하게 플랫폼으로 달려가 겨우 객차를 찾아냈다. 그 열차엔 이등차는 하나밖에 없었다. 창을 올리고 보니 여행 모포를 뒤집어쓴, 불 타는 것처럼 빨간 수염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찾던 사나이였다. 그는 자고 있었지만 내가 옆구리를 찌르자 끙끙대며 눈을 떴다. 램프 불빛으로 보이는 얼굴은 크고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또 차표 검사야?" 그가 말했다.

"아니오." 내가 말했다. "그 남자가 이번 주에 남부에 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요. 그 남자는 이번 주에 남부에 가 있소."

열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털 사나이는 눈을 부볐다. "그 남자가 이번 주에 남부에 가 있다고?" 그는 따라 했다. "과연 그 놈답게 뻔뻔스럽군. 그 놈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난 당신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아."

"그런 말은 없었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바람이 모래를 휩쓸어 올리며 불고 있어 아주 추웠다. 나는 기차에 뛰어올라 - 이번엔 하급 객차가 아니었다 - 잠이 들었다.

만일 그 털보가 1 루피 동전이라도 줬다면 기묘한 경험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나는 그것을 보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유일한 보수는 자기 의무를 다했다는 기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