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나는 그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의논, 신문의 통신원을 사칭하고 다니면 인도 중부나 남부의 라주피타나 같은 고양이 낯짝만한 좁은 지방에서는 봉변을 당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수고를 무릅쓰고 기억을 더듬어, 그런 인간들을 추방하는 관계자에게 되도록 정확하게 두 사람의 인상을 써 보냈다. 그 뒤 들은 바에 의하면 둘 다 데간바 국경에서 잡혀서 송환됐다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옷차림을 다듬고 임금님도 없고 매일 신문을 제작하는 것 외에는 아무 사건도 없는 회사로 돌아갔다. 신문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인도 부인 사상 선도회의'라는 단체에서 한 부인이 찾아와 다른 업무를 즉각 중지하고 변두리 뒷골목 빈민가에서 있었던 기독교 행사의 기사를 쓰도록 주필에게 요구하는가 하면 예비역 대령들이 찾아와 '고참 직업군인과 징집병의 비교'라는 주제에 대해 쓴 10회, 12회, 아니 24회분의 논설을 게재해달라고 전해주기도 한다.

선교사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도 적지 않건만, 또 다른 선교사들은 어째서 자기들은 기사로 취급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매출이 부진한 극단이 지금 당장 광고료를 지불할 수는 없지만 뉴질랜드나 타히티 공연에서 돌아오면 이자를 붙여서 갚아 준다며 신문사를 찾아오기도 한다.

특허에 관련된 사람도 많다. 차량 연결기, 부러지지 않는 칼, 신형 차축 등의 발명자들이 서류를 호주머니에 넣고 아무 때나 찾아온다. 차(茶) 공장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무실에 놓인 펜으로 자기들의 취지서를 정성스럽게 쓰기도 하며, 무용 협회의 실무자들이 그 동안 자기들이 벌인 댄스 행사를 더 상세하게 써 달라고 떠들어댄다. 이상한 부인네들이 성큼성큼 들어와 "이건 분명 주필의 의무니까, 미안하지만 부인용 명함을 백 매 곧 인쇄해주세요"라고 말한다.

또 인도 각지의 간선 도로를 떠도는 형편없는 놈팡이들이 교정계에 채용해 달라고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요구하기도 한다. 1년 내내 전화벨은 미친 듯 울리고 유럽에서는 국왕이 살해되며 나라끼리 서로 욕을 퍼부어댄다. 원고를 가지러 다니는 검둥이 꼬마는 "카피 체이하이에(원고를 넘겨 주시오)"하며 지친 벌 비슷한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나 아직 신문 지면 대부분은 모드레드(옛 전설에 나오는 아더 왕의 조카로 원탁의 기사의 한 사람. 그의 방패엔 아무 표시도 없었다고 한다)의 방패처럼 하얗게 비어있는 상태다.

그래도 이 때가 일 년 중에서는 비교적 재미있는 시기이다. 나머지 6개월 동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온도계 눈금은 1인치씩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회사엔 차양을 치고, 겨우 글자를 읽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인쇄기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지며 산악 지방의 피서지 행사 등 오락기사나 사망기사 외엔 아무도 펜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전화 벨 소리가 무서워진다. 전화는 대부분 것은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통 땀 투성이가 되어 "구다 얀타 칸 지구에서 온 보도에 따르면 이 병의 발생은 전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이었다. 아직 환자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 당국의 불굴의 노력에 의하여 목하 병의 확산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모모 씨의 서거를 여기에 쓰면서 우리의 애도의 심정 금할 길 없다..." 따위 문장을 쓰는 것이다.

진짜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독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보도를 적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여러 나라 국왕들은 변함없이 제 멋대로 행동하며, 편집장은 무조건 신문이 24시간 내에 인쇄돼야 한다고 믿고 산악 지대 피서지에서 빈둥거리는 인간들은 사랑 놀음을 즐기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거 참, 어째서 신문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지 못할까. 여기엔 기사거리가 아주 많을 텐데 말이야."

이것이 1년 중 싫은 6개월이다. 말 그대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인 셈이다.

그렇게 싫은 계절의 어느날이었다. 런던 신문의 관습대로 토요일 밤이 아닌, 일요일 아침에 그 주 최종판의 인쇄를 앞두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상황이 대단히 좋은 것이다. 새벽에 인쇄를 돌린 직후 그나마 선선해진 공기 덕분에 잠을 청할 참이었다. 밤새 열기에 시달려 흐느적거릴 정도로 지쳤지만, 이제 아침 햇살로 뜨거워지기 전까지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나는 혼자서 신문 인쇄를 감독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지구 저편에서는 국왕과 궁정 대신들과 매춘부와 단체 등이 때론 위독해지거나 신헌법을 만들며 또 뭔가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신문은 그러한 소식을 게재하기 위하여 인쇄 시간을 최대한 늦춰 잡아야 한다.

그 날 밤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할 만큼 어둡고, 6월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숨이 막히게 더웠다. 뜨거운 서풍이 메마른 가지를 휩쓸어 불고, 곧 뒤따라 비가 올 것 같은 기색이었다. 삶은 것 같은 물방울이 개구리가 뛰는 것처럼 모래 위에 떨어져 왔다. 하지만 이 지쳐버린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비를 내리는 흉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편집실보다는 인쇄실 쪽이 약간 더 선선해 나는 거기 앉아 있었다. 활자가 철컥철컥 소리를 낸다. 독수리는 창밖에서 울고 벗다시피 한 식자공들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물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서풍이 그치고 최후의 활자까지 조판이 되고 주위는 침묵한 채 질식할 것 같은 열기 속에 조용해졌으나 우리들이 손 모아 기다리던 사건은 -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 어쨌든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선잠을 자면서 기다리는 뉴스 전보가 기대에 들어맞는 건지 어떤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또 지구 저쪽의 여러 인간들이 자신들로 인해 생기는 온갖 파장을 과연 알고서 행동하고 있을까 등을 생각하기도 했다. 더위와 긴장감에서 오는 피로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시계 바늘이 세 시를 가리키고 인쇄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 조사하기 위해 기계를 2,3회 돌려볼 즈음 나는 뭔가 큰 소리로 부르짖고 싶은 기분이 됐다.

이윽고 윤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일어서 나가려고 할 때 내 앞에 흰 옷의 사나이 둘이 우뚝 서 있었다. 첫째 사나이가 "그 때 그 양반이야" 하니까 두 번 째 사나이가 "정말이군"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인쇄기 소음보다 더 크게 웃고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길 저쪽에서 불이 켜진 걸 봤소. 우리들은 선선한 저쪽 구석에서 자고 있었죠. 내가 이 친구에게 말했어요. '신문사가 열려 있으니 가서 우리들을 데간바주에서 추방하게 만든 그 양반에게 말이라도 건네 보자.'고 말이오." 말을 꺼낸 것은 두 사람 가운데 작은 쪽이었다. 그는 전에 마우선 열차에서 만난 사나이였으며 같이 온 사람은 마와 환승역에서 만난 붉은 털의 남자였다.

나는 부랑인들을 만나지 않고 침대에 들어가 자고 싶었다. 그래서 싫은 표정을 하며 "무슨 용무요?"하고 물었다.

"회사 안 시원한 곳에서 당신과 30분쯤 얘기하고 싶소." 붉은 털의 사나이가 말했다. "뭐든 마실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피치, 아직 계약이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날 볼 필요는 없어. 사실 지혜를 좀 빌리고 싶어서... 돈을 달라는 게 아니오. 데간바주에서 우리를 골탕 먹인 건 알고 있지만 그 대신 부탁을 하나 들어 주시면 좋겠소."

나는 인쇄실을 나와서 지도가 걸려있는 무더운 편집실로 안내했다. 붉은 털 사내는 두 손을 맞잡으며 "그래도 찾던 물건이 있구먼"하고 지껄였다.

"바로 우리가 원하던 곳이야. 선생, 소개할까요. 이 쪽은 피치 개넌, 난 그 친구인 다니엘 드라보트입니다. 우리가 해온 일에 대해선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겠지. 거의 못해 본 일이 없으니까. 군인, 선원, 식자공, 사진사, 교정계, 노상 설교사, 한 때 바크우즈만 신문의 통신원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넌도 그렇고 나 역시 정신 상태는 정상입니다. 먼저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 얘기를 도중에 가로채지 않을 테니까. 당신 여송연을 한 가치 불 좀 붙여 볼까요?"

나는 시험조로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 다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미지근한 위스키 소다를 주었다.

"기막히게 좋군." 눈썹이 짙은 개넌이 수염의 거품을 닦으며 말했다. "자, 내가 말하겠어. 응, 선생. 우리들은 인도를 두루 다녔어요. 엔진 조립공도 하고 운전수도 하고 시시한 청부업자도 해봤지. 뭣이고 다 해 본 결과, 인도란 땅은 우리 같은 사람에겐 너무 좁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확실히 그 편집실은 그들에게 너무 좁았다. 둘이 테이블에 앉으니까 드라보트의 수염이 실내의 반을 채우고 나머지 반은 개넌의 어깨로 가득 차 보였다.

개넌은 지껄였다. "이 나라는 이제 손댈 곳이 없어요. 여길 다스리는 녀석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손가락 하나 찌르지 못하게 한단 말이야. 놈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어. 우리들이 삽으로 바위를 깨거나, 석유를 찾거나, 그밖에 무슨 일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들면 당장 관리들이 나타나 '손을 대선 안돼. 우리에게 넘겨'라고 막는단 말이죠."

"그래서 그 말씀대로 우리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법석대는 이 곳 말고 뭔가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지방으로 가기로 한 거야.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린 해낼 수 있어. 물론 술만은 별도지만, 이 점에 대해선 계약을 했죠. 지금 우리들은 왕이 되려고 마음 먹고 떠나는 중이오."

"우리 힘으로 왕이 되는 거야." 드라보트가 중얼거렸다.

"좋은 이야기군." 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낮에 햇빛을 받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거기다 오늘 밤은 지독하게 더워. 왕이 되는 생각이라도 해야 잠이 잘 오겠지. 한숨 자고 나서 내일 다시 오는 게 좋겠어."

"취한 것도 아니고, 일사병에 걸린 것도 아니오." 드라보트가 말했다. "우리는 지난 반년간 꿈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 생각해 왔소. 책과 지도를 살펴본 결과 우리 같은 사나이들이 들어갈만한 지방은 온 세계에서 한 군데 뿐이라는 걸 알아냈지요. 그 땅 이름은 가피리스탄이오. 내 계산으론 아프가니스탄의 오른쪽 제일 위 페샤와에서 3백 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아요."

"그 지방에선 32명의 우상신을 숭배하지만, 우리는 33번째, 34번째 우상이 될 거요. 산골이긴 하지만, 그 지방 여자들은 아주 예쁘다고 하더군."

"하지만 다니엘, 그건 안돼. 계약에 명시해뒀어." 개넌이 말했다. "여자도, 술도 안돼."

"이게 전부요. 그 밖에 아직 그 지방에 간 외부인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거기 놈들은 짐승처럼 서로 싸운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소.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곳에선 어디건 군사훈련을 제대로 시키는 놈이 왕이 될 수 있소. 우리는 거기 가서 왕을 보고 말할 참이오. '넌, 적군을 무찌르고 싶지?'라고 말이오. 그리곤 훈련하는 걸 왕에게 보여주는 거지. 이런 건 우리들이 잘 아니까요. 그리고 그 왕을 쫓아내고, 새 왕조를 세울 셈이야."

"국경 넘어 50마일도 못 가서 갈기갈기 찢겨 죽을 텐데..." 나는 말했다. "그 나라로 가려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 나가야 해. 아프가니스탄은 산 봉우리와 빙하 덩어리로 된 땅이야. 그곳을 빠져나간 영국인은 하나도 없어. 그곳 사람들은 완전히 야만인이야. 설혹 가피리스탄으로 도착했다 해도 손을 댈 수 없는 지방이야."

"정말 그럴까." 개넌이 말했다. "우리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면 오히려 고맙지. 우리들이 온 것은 그 나라의 일을 알기 위해서요. 그 나라에 대해 쓴 책을 읽고 싶소. 그리고 지도를 얻으려고 하는 거요. 바보 취급을 해도, 당신이 책만 보여 준다면 좋아." 그는 책장 쪽을 둘러보았다.

"당신들 지금 진심이야?" 나는 말했다.

"어느 정도는." 드라보트가 기분 좋은 듯 말했다. "가피리스탄에 관한 거라면 아무 거나 좋으니, 당신네 회사에서 제일 큰 지도와 종류 상관 없이 책을 좀 빌려줘요. 우리들은 별로 교육은 못 받았지만 글자는 읽을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