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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지부 회합에서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일어났어. 늙은 추장 하나가 우릴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난 기분이 무척 언짢았지. 그 의식이 결국 사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도는데다 녀석들이 어디까지 사실을 알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거든. 그 늙은 사제는 바슈가이 부락 건너편에서 온,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 아가씨들이 정성스레 만든 지부장의 휘장을 드라보트가 몸에 걸치는 순간, 그 늙은이가 고함을 지르면서 드라보트가 앉아 있던 돌을 뒤집어 엎으려고 하더군.""나는 순간 '이제 다 틀렸어'하고 드라보트에게 말했지. "정식 허락도 없이 지부를 만들려고 하니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러나 드라보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군. 열 명의 사나이가 지부장 의자를 들어 뒤집어 엎어도 - 그 의자는 인브란의 바로 그 돌이었지 - 꿈적하지 않았어. 그 늙은 사제는 뒤집은 돌 아래쪽 흙을 닦아 내더군. 그리고 거기서 드라보트의 휘장에 새겨진 것과 똑 같은 표지를 발견해 다른 사제들에게 보여주었어."
"인브라의 다른 사제들도 거기 그런 것이 새겨진 것을 모르고 있었어. 그 늙은 사제는 드라보트 앞에 엎드려 드라보트의 발에 키스하더군. '이봐,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운이 맞아 떨어졌어.' 드라보트가 내게 말하더군. '놈들은 이 기호가 어떻게 새겨진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이제 우리는 안전해. 우릴 위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드라보트는 의사봉 대신 들었던 총의 개머리판을 땅바닥에 쾅 내리치고는 외쳤어."
"그는 '내 오른팔의 권능으로, 그리고 여기 피치의 도움을 얻어 나는 내가 이 나라 가피리스탄의 비밀공제조합 모태 지부의 지부장임을 선언한다. 또 피치와 함께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임도 아울러 선언한다.' 그리고선 왕관을 쓰더군. 그래서 나도 내 것을 머리에 썼지. 난 행사 집행자 역할을 했고, 그리고선 아주 엄숙한 의식을 시작한 거야. 사실 놀라 자빠질 만한 기적이 아닐 수 없었지."
"별로 설명도 해주지 않았는데 사제들은 기억이 생생한 것처럼 제 2 급의 방식대로 격식을 맞춰 움직이는 거야. 그 의식이 끝나자 피치와 드라보트는 여러 부락의 신분이 높은 사제나 추장 등 우두머리급들을 진급 시켰지. 비리 휘슈가 그 가운데 제일 지위가 높았어. 우리는 휘슈의 간이 콩알만 해지도록 일부러 무서운 의식을 치렀지. 사실 그건 원칙이 아니지만, 당시로선 그럴 필요가 있었어. 우두머리는 10명 이상 두지 않았지. 우리가 주는 지위를 싸구려로 여겨서는 곤란하거든. 녀석들은 서로 진급하고 싶어서 다들 아우성이었지."
"드라보트는 '반 년이 지나면 또 집회를 열어 너희들의 활동 결과를 조사하겠다.'고 말했어. 놈들 부락의 사정을 알아보니, 놈들도 이제 서로 싸우는 것에 지치고, 싫증을 내고 있더군. 사실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더라도 무슬림(마호멧 교도)들과 싸울 일이 만만치 않았어. 드라보트는 '무슬림들이 공격해오면 너희들이 나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지."
"드라보트는 또 말했어. '마을 사람 열 명에 한 명씩 군사를 뽑아 국경을 지키도록 한다. 한 번에 이백 명씩 이 골짜기에 와서 군사 훈련을 받는다. 올바로 행동하면 앞으로는 누구도 사살되거나 창에 찔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너희는 백인, 즉 알렉산더의 후예이며 아무 데서나 빈둥거리며 자빠져 있는 깜둥이 무슬림과는 다르니까 말이야.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신에게 맹세코...' 녀석은 여기서부터는 영어로 말하더군. '난 너희들을 훌륭한 국민으로 만들어 주마. 그렇지 않으면 나는 도중에서 죽게 되겠지.'하고 말이야."
"그때부터 반년 간 우리가 한 일을 일일이 말할 수는 없어. 드라보트 녀석이 나로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 벌렸거든. 또 나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을 해냈지. 즉 드라보트는 그 지방 놈들의 말을 금방 배워 버렸어. 나는 녀석들의 경작을 돕고, 가끔 군인들을 데리고 다른 부락을 순시하러 다니고, 골짜기 사이에 다리를 놓곤 했지. 골짜기 때문에 교통이 전혀 이어지질 않았으니까."
"드라보트는 내게 아주 잘해 주었지. 하지만 그 시뻘건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소나무 숲을 어슬렁거릴 땐 뭔가 내가 간섭할 수 없는 계획을 머리 속에서 짜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그래서 나는 점잖게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지."
"드라보트는 백성들 앞에선 결코 날 소홀히 대하지 않았어. 토인들은 나와 군대를 무서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드라보트가 우두머리였어. 그는 사제나 추장들과 모두 친하게 지냈지. 누구나 언덕을 넘어 드라보트를 찾아와 불평을 말하곤 했는데, 드라보트는 공평하게 이것을 들어주고 네 사람의 사제를 불러 어떻게 처리하라고 일러주곤 했지. 다른 조그만 부락과 전쟁을 할 때는 중요한 추장들을 불러 회의를 가졌지."
"바슈가이에서는 비리 휘슈, 슈우에서는 피키 개건, 그리고 가후제람이라는 추장이 그들이었어. 이것이 최고 군사회의였던 셈이야. 그리고 바슈가이, 슈우, 가와그, 마드라에서 4명의 사제들이 참가한 것이 이를 테면 핵심 간부회의였어. 그 회의의 결정에 따라 나는 부하 40명에게 총 스무 자루를 들리고 일꾼 60명에게 터어키 구슬을 짊어지게 해서 마르티니 총을 사러 고아반드 지방으로 갔지. 그리고 헤라티 국왕 근위연대가 갖고 있는 마르티니 총을 몰래 사들였어. 놈들은 터어키 구슬을 주면 자기 이빨이라도 빼 줄 놈들이거든."
"나는 고아반드에 한 달 머무르면서 그곳 관리 한 녀석에게 입막음으로 좋은 터어키 구슬을 주고, 연대 지휘관인 대령에겐 좀 더 많이 줘서 매수했지. 그 두 사람을 통해 마르티니 총 2백 자루, 사정 거리 6백 야드인 가브르제 총 상급품 1백 자루, 그리고 품질이 별로 좋진 않지만 거기 쓸 탄약을 입수했어."
"나는 그걸 갖고 돌아와 군사 훈련을 받는 녀석들에게 나눠 주었지. 드라보트는 너무 바빠서 이런 일에 손을 댈 수 없었어. 그래도 처음 훈련 받은 고참병들이 도와줘서 5백 명을 훈련시켰고 그 가운데 2백 명은 총을 쏠 수 있도록 했지. 허술하게 손으로 만든 총이지만, 놈들에겐 기적 같은 물건이었지."
"겨울이 가까워 오니까 드라보트는 소나무 숲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화약 공장을 세울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겨우 나라 하나 세우는 건 흥미가 없어졌어!' 드라보트가 말하는 거야."
'난 이제 제국을 만들 작정이야! 이 놈들은 흑인이 아닌, 영국인이야! 이 놈들의 눈과 입을 보라구. 서고 앉는 모습도 그렇고. 이 놈들은 집안에서 의자를 사용해. 이 놈들은 [사라진 종족]으로 알려진 바로 그 녀석들이야. 결국 영국인이란 얘기지. 사제들이 반대만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국세 조사를 할 계획이야. 이 일대 골짜기에는 최소한 2백만 명 정도는 살고 있어. 부락은 어린애들로 가득하지. 2백만 명의 백성, 그리고 25만 명의 병사, 게다가 이들은 모두 영국인이야! 필요한 것은 총과 약간의 훈련 뿐이야. 러시아 놈들이 인도를 엿볼 경우 25만 명의 병사가 러시아 옆구리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지.'
"그는 수염을 비비면서 말했어. '우리는 제왕이 될 수 있어. 지상의 제왕! 브르크의 토후 따위는 이제 우습지. 인도 총독이라 해도 우린 대등하게 대할 수 있어. 총독에게 말해서 우리 정치를 도와주는 훌륭한 영국인 12명, 내가 알고 있는 12명을 보내달라고 말해야겠어. 세고우리에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마크레이 중사가 있네. 나에게 몇 번씩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었지. 더구나 그 마누라는 내게 바지도 하나 주었어. 톤후 형무소 간수인 동킹도 괜찮지. 내가 인도에 있을 때 뒤를 봐주던 사람들이 많단 말이야. 봄이 되면 그들에게 사자를 보내는 거야. 그리고 지부장인 나의 업적에 대해 편지를 써 조합본부의 사면장을 얻도록 하는 거야.
지금 인도 원주민 병사들이 마르티니 총을 받게 되면, 그 동안 사용하던 스나이더 총은 전부 쓸모 없게 돼. 낡긴 했지만, 이런 변방에서 전쟁을 치르는 데는 아직 괜찮은 물건이야. 영국인 12명과 1백만 자루의 스나이더 총으로 조금씩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정복하는 거야. 일 년에 20만 자루씩 입수하면 돼. 그래서 우리들의 제국을 만드는 거야.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나는 이 왕관, 내가 쓰고 있는 이 왕관을 빅토리아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바치는 거야. 그러면 여왕 폐하는 말하겠지. [일어서시오, 다니엘 드라보트 경!] 와, 이건 엄청난 일이야! 굉장하지? 응, 이봐! 그러나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바슈가이, 가아와그, 슈우, 그리고 여기저기에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일 말이야?' 나는 드라보트에게 물었지. '가을엔 군사 훈련을 시킬 수 없어. 저 낮게 깔린 구름을 좀 봐. 엄청난 눈이 내릴 거야.'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다니엘은 내 어깨를 꽉 붙잡으면서 말했어. '나는 네가 반대하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아. 나를 도와서 현재의 지위까지 오르게 해준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너니까 말이야. 너는 최고 사령관이며, 국민들도 모두 그걸 잘 알고 있어. 그러나, 좌우간 나라가 커졌으니까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을 네가 다 도와줄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면 저 촌뜨기 중 놈들에게 말해보지 그래?' 나는 이렇게 말하고선 곧 잘못했다고 후회했지. 하지만 그 동안 촌놈들을 훈련시켜 군사로 만드는 일이며, 여러 가지로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 왔는데, 다니엘 녀석이 그렇게 거만한 말을 하니까 나도 기분이 나빠졌던 거라구
'싸움은 그만 두자, 피치.' 다니엘 녀석이 화도 내지 않고 말하더군. '너도 왕이고, 이 나라의 절반은 네 것이야. 그래도 피치, 이건 분명해. 이젠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필요해. 우리를 대신해 온갖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서너 명은 있어야 해. 나라가 커진 데다, 내가 항상 모든 일을 다 지시할 수는 없단 말이야.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 게다가 이제 겨울이 닥쳐오고 있어.' 녀석은 새빨간 수염을 씹으며 말했어.
'내가 잘못했어, 다니엘.' 내가 말했지. '나는 나름대로 힘껏 했어. 놈들을 훈련시키기도 하고, 보리를 솜씨 있게 쌓는 법도 가르쳤고. 고아반드에 가서 무기도 가져왔지. 하지만 네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리 있나. 왕이란 자리는 그렇게,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는 거겠지.'
'또 다른 문제도 있어.' 드라보트는 방을 거닐며 말했어. '이제 겨울도 되고, 국민들도 크게 떠들어댈 것 같지는 않아. 또 들고 일어난댔자 우리를 어떻게 하진 못할 거야. 난 이제 마누라를 얻어야겠어.' 난 말했지. '제발, 여자에겐 손을 대지 말게. 난 바보지만,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손에 넣었다는 걸 알고 있어. 계약을 생각해. 그리고 여자에겐 다가가지 말란 말이야.'
'그 계약은 우리들이 왕이 될 때까지만 유효한 거야. 그리고 우리가 왕이 된 지 벌써 몇 달째야.' 드라보트는 손에 왕관을 들고 무게를 달아보며 말했어. '너도 아내를 얻도록 해, 피치. 추운 겨울에 너를 따뜻하게 안아줄 그런 귀엽고 발랄한 아가씨 말이야. 여기 아가씨들은 영국 여자보다 더 좋아. 게다가 맘대로 고를 수도 있어!'
'유혹하지 마! 지금보다 더 안정될 때까지는 난 여자와 사귀지 않겠어. 나는 두 사람 몫을 일해왔고, 너는 세 사람 몫을 했지. 조금 몸을 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좋은 담배를 가져오고 맛있는 술을 들여오는 건 뭐 괜찮겠지. 하지만 여자는 절대 안돼!'
'여자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어.' 드라보트가 말했어. '난, 정식 아내를 말하는 거야. 왕자를 낳을 왕비 말이야. 제일 강한 종족에서 왕비를 선출하면 그놈들과 친족 관계를 맺게 되는 거야. 그리고 왕비는 내 곁에서 국민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내게 모두 얘기해 주겠지.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것이야.'
'내가 선로공으로 있던 시절에 모갈에서 함께 살았던 그 벵갈 여자를 기억하고 있나?' 난 드라보트에게 말했어. '그 여자도 꽤 괜찮았어. 내가 잘 모르는 말이며, 그밖에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지.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된 줄 알아? 역장 심부름꾼과 눈이 맞아서 내 한 달 월급의 절반을 갖고 도망쳐 버렸어. 트기 녀석들과 붙어서 다도우르 환승역으로 간 거지. 거기서 뻔뻔스럽게 그 녀석이 자기 남편이라고 지껄여댔다는 거야. 사정을 뻔히 아는 그 기관수 앞에서 말이야!'
'그건 그거고, 이건 달라.' 드라보트는 잘라 말하더군. '여기 여자들은 너나 나보다 더 피부가 하얗지. 난 겨울 안에 왕비를 맞아들이겠어.'
'마지막 부탁이다. 단, 제발 그만둬.' 나는 말했어. '그런 짓을 하면 재난이 올 뿐이야. 성경에도 쓰여 있지만 왕은 여자에게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해. 나라를 다스린 지 얼마 되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
'나도 최종적으로 대답하는 거야. 난 왕비를 얻을 거야.' 드라보트는 이렇게 말하고 왕관과 수염을 햇빛에 빛내면서 커다란 악마처럼 소나무 숲을 빠져 나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