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는 다시 한 번 전보다 더 진지하게 시인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나서 큰 바위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시인은 물어 보았다.
"저는 평생 동안,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서 이 시를 쓴 분이야말로 그 예언을 실현하는 분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니스트는 대답하였다. 시인은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주인께서는 제가 저 큰 바위 얼굴과 닮았기를 기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보니 개더골드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나, 올드 스토니 피즈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역시 실망하신 것이지요? 맞습니다. 저는 그 정도밖에 안 됩니다. 저 역시 저보다 먼저 나타난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겨드렸을 뿐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지만, 저는 저기 저 인자하고 장엄한 얼굴에 비교할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 담긴 생각이 신성하지 않단 말씀입니까?"
어니스트는 시집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시인은 다시 말했다.
"그 시에는 신의 뜻을 전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울리는 노래가 희미하게 메아리치는 정도는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친애하는 어니스트 씨! 그러나 나의 생활은 나의 사상과 일치하지 못합니다. 나 역시 큰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꿈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보잘것없고 천박한 현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좀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나의 작품들이 말하는 것, 자연 속에나 혹은 인생 속에 그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장엄함이나 아름다움, 지고지선한 가치에 대해 나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일조차 있습니다. 그러니 순수한 선(善)과 진(眞)을 찾는 당신이 어찌 나에게서 저 큰 바위 얼굴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시인의 대답은 서글펐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어니스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오래 전부터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어니스트는 밖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시인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팔장을 끼고 그 곳으로 걸어갔다. 그 곳은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공터였다. 뒤에는 잿빛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앞으로 무성한 담쟁이덩굴이 울퉁불퉁한 벼랑으로부터 줄기줄기 뻗어내려와 울퉁불퉁한 바위를 비단 휘장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 공토의 약간 높은 곳에 푸른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가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 자기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몸짓으로 이야기할만한 정도의 공간이었다. 어니스트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연단에 올라가 따뜻하고 다정한 웃음을 띠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설 사람은 서고, 앉을 사람은 앉고, 기댈 사람은 기대고 서서 저마다 편한 자세로 그렇게 모여 있었다. 서산에 기우는 해가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햇빛이 잘 통하지 않는, 고목이 울창한 어두운 숲에도 석양의 밝은 빛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또 다른 쪽에는 그 큰 바위 얼굴이 언제나 변함없는 유쾌하고 장엄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자기의 마음속 생각을 청중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자신의 사상과 일치되어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자기의 일상 생활과 조화되어 있어 현실성과 깊이가 있었다. 이 설교자가 하는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생명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속에 착한 행위와 신성한 사랑으로 된 그의 일생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름답고 순결한 진주가 그의 소중한 생명수에 녹아 들어간 것 같았다.
시인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어니스트의 인간과 품격이 자기가 쓴 그 어느 시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다고 느꼈다. 그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 존엄한 사람을 우러러보았다. 온화하고 다정하고 생각이 깊은 얼굴에 백발이 흩어진 그 모습... 그것이야말로 예언자와 성자다운 모습이라고 시인은 혼자 생각하였다.
저 멀리,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의 황금빛 속에 큰 바위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흰 구름은 어니스트의 이마를 덮고 있는 백발처럼 보였다. 그 광대하고 자비로운 모습은 온 세상을 감싸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니스트의 얼굴은 그가 말하고자 했던 생각에 일치되어, 자비심이 섞인 장엄한 표정을 지었다. 시인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지혜로운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말을 다한 어니스트는 시인의 팔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빨리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것이었다.
<끝>
큰 바위 얼굴 - 6. 보시오! 보시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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