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남과 다른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아직도 하루 일을 마치고 혼자 떨어져 그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부지런하고 친절했다. 또 사람이 좋은데다 자기 일을 게을리하는 일이 없어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큰 바위 얼굴이 그의 선생님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큰 바위 얼굴에 드러나는 고상한 감정이 이 젊은이의 가슴에 풍성한 애정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어니스트는 다른 사람보다 더 넓고 깊은 인정을 갖고 있었다. 그 큰 바위 얼굴은 어니스트에게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지혜를 주었다.
또한 어니스트는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의 부끄러운 모습을 경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현재의 자신의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어니스트 자신도 들판에서, 또는 모닥불 가에서, 그리고 그가 혼자서 깊이 생각에 잠기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생겨나는 것보다 더 품격이 높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오래 된 예언을 말해주던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순박했다. 그는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그것과 똑같이 생긴, 살아있는 어느 인간의 얼굴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지 아직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개더골드는 죽어 땅에 묻혔다. 이상한 것은, 그의 육체, 그의 영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많던 재산이 그의 생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죽을 때쯤 그에게는 쭈글쭈글하고 누런 살갗으로 덮인, 해골이나 마찬가지인 육체만이 남았던 것이다.
그의 황금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거덜난 상인의 천한 얼굴과 산 위에 있는 장엄한 얼굴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개더골드가 살아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미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거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는 그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골짜기에서 태어난 인물로 유명한 장군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 전에 군대에 들어가 수많은 전쟁터를 거친 끝에 이제 이름이 잘 알려진 장군이 된 것이다. 그의 본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군대나 전쟁터에서는 그를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Old Blood And Thunder : 피와 천둥의 노인이라는 정도의 뜻 - 편집자 주*)'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역전의 용사도 이제 온갖 고생과 상처 때문에 몸이 허약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들어왔던 북 소리나 나팔 소리 등으로 요란한 군대 생활에 그만 싫증이 난 것이다. 그래서 그 역시 이제 그만 고향에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고 발표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골짜기 사람들의 흥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던 큰 바위 얼굴을 다시 한 번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는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날도 어니스트는 골짜기 사람들과 함께 일자리를 떠나 숲 가운데 파티가 열리고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어니스트는 멀리서라도 이 유명한 손님을 보고 싶어서 발꿈치를 치켜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큰 손님 주위는 온통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축사와 연설, 장군의 입에서 흘러나올 인사말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들으려는 듯 사람들은 식탁 주위에 몰려들고, 호위병으로 따라온 병사들은 임무를 다하느라고 총검으로 사람들을 무지하게 밀어댔다.
원래 성품이 부드러운 어니스트는 이 바람에 뒤로 밀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큰 바위 얼굴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바위 얼굴은 전과 마찬가지로 성실한 표정으로, 오래 마음속에 그리워하던 그런 친구를 대하듯 다정히 그를 마주 보며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이 때 그 전쟁 영웅의 얼굴과 멀리 산허리의 얼굴을 비교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지 않나? 똑같은 얼굴이야!"
한 사람이 기쁨에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맞아, 영락없구나! 바로 그 얼굴이야!"
다른 사람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똑같고 말고! 마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가 커다란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세 번째 사람도 이렇게 외쳤다.
"아무렴, 당연하지! 장군이야말로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인물이란 말일세."
이 세 사람은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는 마치 전파처럼 거기 모인 군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수천 명이 커다랗게 고함을 치고, 그 고함 소리는 산들을 지나 수 마일이나 울려 퍼졌다. 마치 큰 바위 얼굴이 천둥 같은 호흡으로 소리를 지른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장군이다! 장군이 나오셨다!"
마침내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쉿, 조용히 하라구! 이제 장군이 연설을 하신단 말이야!"
과연 식사가 끝나고, 박수 갈채 속에 장군의 건강을 기원하는 축배에 이어 장군은 감사의 뜻을 나타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니스트는 그를 보았다. 그의 머리 위에는 푸른 월계수 나뭇가지가 얽혀 아치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깃발이 그늘을 만들며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숲이 트인 곳으로 멀리 큰 바위 얼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이들, 장군과 큰 바위 얼굴 사이에는 사람들의 증언처럼 정말 닮은 구석이 있었을까? 어니스트는 그런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와 갖은 풍상에 찌든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정력이 넘쳐흐르고, 강철같은 의지가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선량한 지혜와 깊고도 넓고, 따뜻한 자애심은 찾을 수 없었다. 큰 바위 얼굴은 준엄한 표정이었지만 그 바탕에 분명히 더 온화한 빛이 있어서 그 표정을 녹여내고 있었다.
"예언이 말하는 그 인물이 아니다."
어니스트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큰 바위 얼굴 - 3. 피와 천둥의 군인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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