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온한 세월이 계속 흘러갔다. 어니스트는 아직도 자기가 태어난 그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그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였다. 그리고 별로 대단치는 않지만 그의 존재는 차츰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지금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과거 그대로 순박한 마음을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느껴왔다. 생애의 가장 좋은 시절 대부분을, 인류를 위해 뭔가 훌륭한 일을 해 보겠다는 거룩한 희망으로 지닌 채 살아왔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일종의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의 맑고 높은 순박한 사상은, 소리 없이 그의 덕행으로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그의 설교를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가 토해내는 진리는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 설교를 통해 새로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곤 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바로 자기 이웃 사람이요 가까운 친구인 어니스트가 뭔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어니스트 자신은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해 보지 못한 깊은 사상이 마치 속삭이는 시냇물처럼 한결같은 힘으로, 술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냉정을 되찾고 나자 사람들은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의 험상궂은 인상과 산 위에 있는 자비로운 얼굴과는 비슷한 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다시 어떤 저명한 정치가의 넓은 어깨 위에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지어 신문에까지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이 정치가는 개더골드 씨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씨와 마찬가지로 이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역시 일찍이 이 고장을 떠나 법률과 정치 업무를 해 왔다. 부자의 재산과 군인의 칼 대신 그는 오직 한 개의 혀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혀는 앞의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했다.
그는 웅변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간에 청중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틀린 것도 옳다고 여기고, 정당한 것도 잘못되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맘을 먹기만 하면,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자욱한 안개를 일으켜, 대자연의 햇빛을 무색하게 할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의 웅변은 때로는 천둥과도 같이 으르렁대며, 때로는 한없이 달콤한 음악처럼 사람의 귀에 속삭였다. 그것은 사나운 질풍처럼 휘몰아치는가 하면, 평화로운 노래이기도 했다.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지만, 그의 심장은 그의 혀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말재주를 이용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혀가 말하는 소리는 각 나라의 정부와 여러 왕들의 조정에까지 울려퍼지게 되었다. 그이 목소리가 방방곡곡에 울려퍼지고, 온 세계에 그의 명성이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웅변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도록 설복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보다 앞서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그의 추종자들은 그와 큰 바위 얼굴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신사는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 늙은 바위 얼굴 - 편집자 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동료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을 때, 그는 자기 고향인 이 골짜기를 방문하려고 나섰다.
주 경계선에서부터 기마 행렬이 그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빠짐없이 일을 쉬고 길가에 모여,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하였다. 어니스트도 그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
말굽 소리도 요란하게 기마 행렬이 달려왔다. 먼지가 어찌나 요란하게 일어나는지, 어니스트는 그 올드 스토니 피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악대가 감격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메아리쳐 골짜기 구석마다, 이 유명한 손님을 환영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역시 가장 멋있는 모습은 멀리 솟은 절벽이 그 음악을 메아리로 울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위로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뜨거운 열기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였다. 어니스트도 가슴에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도 모자를 위로 던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영웅 만세! 올드 스토니 피즈 만세!"
그러나 어니스트는 아직 그 사람을 보지는 못하였다.
"왔다!"
어니스트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외쳤다.
"저기 저기 좀 보라구, 올드 스토니 피즈 말이야. 저 산 위의 노인과 비교해 봐. 마치 쌍둥이 같지 않아?"
화려한 행렬 한가운데로 네 마리 흰 말이 끄는 뚜껑 없는 사륜 마차가 달려왔다. 그 마차에는 유명한 정치가 올드 스토니 피즈가 모자를 벗어 들고 앉아 있었다.
"어때? 정말 대단하지!"
어니스트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큰 바위 얼굴이 이제야 비로소 자기 짝을 만났다. 솔직히 말하여, 마차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띠고 있는 그 얼굴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어니스트도 산 위에 있는 얼굴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훤하게 벗어진 이마나 그밖에 얼굴 생김생김이 참으로 당당하고 힘차게 보였다. 마치 타이탄과 경쟁하려고 만들어진 전형적인 모습 같았다.
그러나 정치가의 얼굴에는 장엄함이나 위풍, 신과 같은 위대한 사랑의 표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산 중턱의 그 얼굴은 그러한 위대한 표정으로 빛나게 있으며 그것이 그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물질에 정신적인, 영적인 표정을 부어주고 있었다. 이 정치가에는 그것이 원래부터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원래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놀랄만한 품성을 타고난 이 정치가의 눈자위에는 지치고도 우울한 빛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니스트의 옆 사람은 팔꿈치로 그를 쿡쿡 찌르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때? 어떤 것 같아? 이 사람이야말로 저 산 중턱의 노인과 똑같지 않냐구?"
"아니야!"
어니스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전혀, 조금도 닮지 않았어."
"그래? 그렇다면, 저 큰 바위 얼굴이 좀 안됐구먼."
옆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올드 스토니 피즈를 위하여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아주 낙심해서 우울하게 그 곳을 떠났다. 예언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 그렇게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보여서 그는 그게 슬펐다.
큰 바위 얼굴 - 4. 돈과 칼보다 강한 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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