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판에 선들바람이 베옷 속으로 스며들 적에, 버드나무의 매미 쓰르라미 소리가, 피아노나 유성기 소리보다 더 정답고 깨끗한 풍악소리로 들려야 하겠는데… 어째 오늘 저녁엔 서양으로 유람이나 온 것 같은 걸요.”

 

하고 시침을 딱 갈기고 한 마디 비꼬아 던지는 바람에, 백씨는 그만 자존심을 상한 듯 동혁과는 외면을 한 채,

 

“그야 도회지에서 살게 되니까 외국 사람하고 교제관계도 있어서 자연 남 보매는 문화생활을 하는 것 같겠지요. 그렇다고 내가 그런 시골 취미를 모르는 줄 아시면 그건 큰 오핸걸요.”

 

하고 변명 비슷이 한다. 동혁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던 것처럼,

 

“취미요? 시골 경치에 취미를 붙인다는 것과 농민들과 똑같은 생활을 해 가면서 우리의 감각까지 그네들과 같아진다는 것과는 딴판이 아닐는지요? 값비싼 향수나 장미꽃의 향기를 맡아 오던 후각(嗅覺)이, 거름구덩이 속에서 두엄 썩는 냄새가 밥 잦히는 냄새처럼 구수하게 맡아지게까지 돼야만, 비로소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생길 줄 알아요. 농촌 운동자라는 간판을 내걸은 사람의 말과 생활이, 이다지 동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나서, 동혁은 제가 한 말이 좀 과격한 듯해서,

 

“반드시 백 선생더러만 들으시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지만 농촌 운동일수록 무엇보다 실천이 제일일 줄 알아요. 피리를 부는 사람 따로 있고, 춤을 추는 사람이 따로 있던 시대는 벌써 지났으니까요. 우리는 피리를 불면서 동시에 춤을 추어야 합니다. 요령을 말씀하면, 우리는 남의 등뒤에 숨어서 명령하는 상관이 되지 말고 앞장을 서서 제가 내린 명령에 누구보다 먼저 복종을 하는 병정이 돼야만 우리의 운동이 성공하겠단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기에 동혁은 이마에 땀을 다 흘렸다. 그 동안 백씨는 몇 번이나 얼굴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다가, 무슨 생각에 잠긴 모양인데,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앉았으나 동혁이가 말 구절마다 힘을 들일 때는 무엇에 꾹꾹 찔리는 것처럼 어깨와 젖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동혁은 정면으로 보았다.

 

백씨가 자기의 변명을 기다랗게 늘어놓으려는 기세를 살피고, 동혁은 기둥에 걸린 뻐꾸기 시계를 쳐다보더니,

 

“기차 시간이 돼서, 고만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일어선다. 백씨는 형식적으로

 

“왜 어느 새…”

 

하고 붙잡는 체하는데, 영신이도 시계를 쳐다보더니,

 

“참 저도 가야겠어요.”

 

하고 따라 일어선다.

 

두 사람은 큰 길로 나왔다. 상기가 되었던 뺨을 스치는 밤바람이 여간 시원하지가 않다.

 

“우리 산보나 할까요?”

 

“기차 시간이 되지 않았어요?”

 

“오늘 못 가면 내일 첫차로 가지요. 하룻밤쯤 새우는 건 문제 아니지요. 영신씨가 또 쫓겨나실까봐서…”

 

“전 괜찮아요. 쫓겨나면 고만이죠.”

 

영신은 동혁이가 또 그대로 뿌리치고 갈까 보아 도리어 겁이 났던 판이라 '어디로 갈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럼 목도 마른데 악박골로 가서 약물이나 마실까요?”

 

하고 독립문 쪽을 향해서 앞장을 선다.

 

“참, 악박골이 영천이라고도 하는 덴가요?”

 

“여태 한 번도 못 가 보셨어요?”

 

“온, 시골뜨기가 돼서…”

 

“누군 시골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 고장은 옛날에 서울 양반들이 귀양살이나 하러 오던 동해변의 조그만 어촌인데요. 동혁씨의 고향은 저번에 소개를 해 주셔서 잘 알았지만, 거기도 어지간히 궁벽한 데더군요.”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가면서, 서로 자기네 고향의 풍경과 주민들의 생활하는 형편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버스는 그친 지도 오랜 듯, 큰길 양옆의 가게는 빈지를 닫기 시작한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감옥 앞 넓은 마당까지 오니까 전등불이 건성드뭇해지고, 오고 가는 사람도 드물어서 어두운 골목속으로 드나드는 흰 옷자락만 희뜩희뜩 보일 뿐.

 

떠오른지 얼마 안되는 하얀 달은 회색빛 구름속에 숨었다가는 흐릿한 얼굴 반쪽을 내밀고, 감옥의 높은 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악박골 물터 위의 조그만 요리집에서는 장구소리와 함께 노래가락이 흘러나온다. 건달패와 논다니들이 어우러져서 약물이 아닌 누룩 국물을 마시고 그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다.

 

동혁은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돈 십 전을 주고, 약물 한 주전자와 억지로 떠맡기는 말라빠진 굴비 한 마리를 샀다.

 

“온, 샘물을 다 사먹는담.”

 

하고 한 바가지를 철철 넘치도록 따라서 영신에게 권한다.

 

“주전자 꼴하고 약이 되기는커녕 배탈이 나겠어요.”

 

하면서도, 한창 조갈이 심하던 판이라, 둘이 번 차례로 한 사발씩이나 벌떡벌떡 마셨다. 물이야 정하나마나 폭양에 운동을 한데다가 한여름 동안 더위에 들볶이던 오장은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쏴아하고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데, 골 안으로 스며드는 밤 기운에 속적삼에 배었던 땀이 식어서 선뜩선뜩 할 만큼이나 서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으슥한 언덕 밑 바위 아래에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등뒤 송림 속에서 누군지 청승맞게 단소를 부는 소리가 들린다. 영신은 한참이나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감옥 속에 갇힌 사람이 자다 말고 저 소릴 들으면 퍽 처량하겠어요.”

 

하고 얼굴을 든다. 구름을 벗어난 창백한 달빛은 고향 생각에 잠겼던 그의 얼굴을 씻어 내린다.

 

“참,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군요.”

 

동혁이도 약간 애상적인 감정에서 눈을 번쩍 뜨며 혼잣말 하듯 한다.

 

“왜요?”

 

영신의 눈은 동그래졌다.

 

“몇주일 전까지는 백판 이름도 모르던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서, 약물터의 달을 똑같이 쳐다볼 줄이야 꿈이나 꾸었겠어요?”

 

“참요, 이것도 하나님의 뜻인가 봐요.”

 

“참, 영신 씨는 크리스찬이시지요?”

 

“전 어려서부터 믿어 왔어요. 왜 동혁 씨는 요새 유행하는 마르크스주의자세요?”

 

“글쎄요. 그건 차차 두구 보시면 알겠지요. 아뭏든 신념을 굳게 하기 위해서나 봉사의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렇지만, 자본주의에 아첨을 하는 그따위 타락한 종교는 믿고 싶지 않아요.”

 

하다가 영신이가 무어라고 질문을 할 기세를 보이니까,

 

“종교 문제 같은 건 우리 뒀다가 토론하십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까요.”

 

하고 동혁은 손을 들어 미리 영신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딱 감고 한창이나 이슬에 젖은 숲 속의 벌레소리를 듣고 있더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고 웅숭깊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간담회 석상에서 영신씨가 하신 말씀을 듣고 감복을 했지만, 내가 농촌의 태생이면서도 여러 해 나와 있다가, 직접 농촌 속으로 들어가 보니까, 참말 그네들의 사는 형편이 말씀이 아니예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떠드는 것보다 몇 곱절 비참하거든요.”

 

하고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마른 침을 삼키더니 오래 전부터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난 자진해서 학교를 퇴학하고 싶어요.”

 

하고는 다시금 잠긴다. 숲 속에서 반득이는 반딪불을 들여다보며 동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영신은, 얼굴을 번쩍 들며,

 

“왜요? 일 년 반만 더 다니시면 졸업을 하실 텐데요?”

 

하고 놀라운 듯 눈을 크게 뜬다.

 

“고만 둘 수밖에 없어요. 중학교 때엔 억지를 쓰고 별별 짓을 다 해 가면서 고학을 했지만, 나 하나 공부를 시키려고, 아버지는 올 봄까지 대대로 내려오던 집 앞 논까지 거의 다 팔으셨에요. 졸업만 하면 큰 수나 날 줄 알고, 계량할 것도 안 남기신 모양인데, 내가 졸업이라고 한댔자 바로 취직도 하기 어렵지만, 무슨 기수(技手)라는 명색이 붙는대야 월급이라곤 고작 사오십 원밖에 안될 테니 그걸 가지고 객지에서 물 밥 사 먹어가며, 양복 해 입고 소위 교제비까지 써 가면서 수다한 식구를 먹여 살릴 수가 있겠어요? 되려 빚만 자꾸 지게 되지요?

 

그러니까 나머지 땅마지기나 밭날갈이를 깡그리 팔아 없애고서, 거산을 하게 되기 전에 하루바삐 집으로 돌아가서 넘어진 기둥을 버티고 다시 일으켜 세울 도리를 차려야겠어요. 까딱하면 굶어죽게 될 형편이니까요.”

 

“…”

 

영신은 동혁의 사정도 딱하거니와 그만 못지 않게 말이 아닌 저의 집의 형편을 생각하느라고 말 대답도 안하고 있다가, 한참만에야 한숨을 섞어,

 

“제 사정은 백 선생밖에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어요. 홀로 되신 우리 어머니는 육십 노인이 딸 하나 공부를 시키느라고 입때 생선 광주리를 이고 댕기세요. 올 여름엔 더위를 잡숫고 길바닥에 쓰러지신 걸, 동네 사람들이 업어다가 눕혀 드렸어요. 그렇건만 약 한 첩 변변히…”

 

그는 그만 목이 메었다가, 간신히 입술을 떨며,

 

“정신을 잃으신 동안에 어느 몹쓸 놈이 푼푼이 모아 넣으신 돈주머니를 끌러 가서, 그게 원통해 밤새도록 우시는데…”

 

하고, 영신은 가슴속으로부터 치밀어오르는 울음을 참느라고 잇자국이 나도록 손가락을 깨문다.

 

동혁은 몹시 우울해졌다.

 

가슴이 턱 막힌 듯이 갑갑해서 더운 입김을 후하고 내뿜는다. 숲 속의 벌레소리도, 바위 틈으로 졸졸졸 흘러내리는 샘물 소리도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동혁은 '내가 공연히 그런 소리를 끄집어냈구나'하고 바로 정수리 위에서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내려다보는 유난히 큰 별을 원망스러이 쳐다보다가 영신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자, 우린 그런 생각은 고만하십시다. 어쨌든 우리는 명색 전문학교까지 다녀 보니까, 여간 행복된 사람들이 아니지요.”

 

하고 목소리 부드러이 영신을 위로한다.

 

“참말 공부니 뭐니 다 집어치고, 시골로 내려가야겠어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서울 와서 나 혼자 편안히 지내는 게 어머니께나 동리 사람들한테까지 큰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첨엔 멋도 모르고서, 무슨 성공을 하고야 내려간다고 하나님께 맹세까지 하고 올라왔지만요…더군다나 아까 백 선생댁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이제까지 지내온 걸 여간 뉘우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자, 동혁은 벌떡 일어섰다. 양복바지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거의 궐연 한 개를 태울 동안이나 왔다갔다 하며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영신의 앞으로 다가서며,

 

“영신씨!”

 

하고 힘차게 부른다.

 

“우리들이 이렇게 만나서, 한 십 년이나 사귄 동지처럼 가슴을 터놓고 하룻밤을 새운 기념을 우리 영원히 남기십시다.”

 

하고 중대한 동의를 한다.

 

“어떻게요?”

 

영신의 눈은 별빛에 새파랗게 빛난다. 동혁은 버썩 대들어 그 소댕같은 손으로 서슴치 않고 여자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우리 시골로 내려갑시다! 이번 기회에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서, 우리의 고향을 지키러 내려갑시다! 한 가정을 붙든다느니보다도 다 쓰러져 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기 위한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 용기를 냅시다! 그네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선구자로서의 기쁨과 자랑만은 남겠지요.”

 

영신이가 무엇에 아찔하게 취한 듯이 눈을 내리감고 있는 것은 불시에 두 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의 고동을 진정하려 함이다. 그는 마주 일어서서 영신에게 으스러지도록 잡힌 손에 힘을 주며,

 

“고맙습니다! 당신 같으신 동지를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영신은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덧 인왕산 너머로 기울어 가는 달빛 아래서 두 남녀의 마주 쏘아보는 네 줄기 시선은 비상한 결심에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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