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박수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여러분!”
청중이 숨소리를 죽이게 하는 저력 있는 목소리다.
“오늘 저녁에 항상 그리워하던 여러분 동지와 한 자리에 모여서 흉금을 터놓고 서로 얘기할 기회를 얻은 것을 무한히 기뻐합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음성이 아니요, 땀에 절은 교복이 팽팽하게 켕기도록, 떡 벌어진 가슴 한복판을 울리며 나오는 바리톤(남자의 저음)이다. 청중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지려나?' 하는 듯이 눈도 깜짝거리지 않으며 동혁의 얼굴을 바라 본다.
동혁은 장내를 다시 한 번 둘러 본 뒤에 천천히 입을 연다.
“그러나, 삼 년째 이 운동에 참가해서 적으나마 힘을 써 온 이 사람으로서 그 경험이나 감상을 다 말씀하려면 매우 장황하겠습니다. 더구나 오늘 저녁은 간단한 경과만 보고하기를 약속한 까닭에, 정작 이 가슴속에 첩첩이 쌓인 그 무엇을 여러분 앞에 시원스럽게 부르짖지 못하는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못하는 말은 사사로운 좌석에서 얘기할 기회를 짓고, 또는 개인적으로도 긴밀한 연락을 취해서 서로 간담을 비춰 가며 토론도 하고 의견도 교환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수첩을 꺼내 들고 자기의 고향인 남조선의 서해변에 있는 한곡리(漢谷里)라는 궁벽한 마을의 형편을 숫자적으로 대강 보고를 한다.
호수(戶數)가 94호인데, 농업이 7할, 어업이 2할이요 토기업(土器業)이 1할이라는 것과 인구가 4백 60여 명에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 8할 이상이나 점령한 것을 3년 동안을 두고 여름과 겨울 방학에 중년 이하의 여자들과 육칠 세 이상의 아동들을 모아 놓고 한글을 깨쳐 주고 간단한 셈수를 가르쳐 준 것이 2백 47명에 달하는데, 그곳 보통학교 출신들의 조력이 많았다는 것을 말하자 박수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동혁은 천천히 수첩을 접어 넣으며 집안 식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말씨로,
“우리 고향은 워낙 원시부락(原始部落)과 같은 농어촌이 돼서, 무지한 부형들의 이해가 전연 없는데다가, 관변의 간섭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별짓을 다 해 가면서 억지로 시작을 했었지요. 첫해에는 아이들을 잔뜩 모아는 놨어두 가르칠 장소가 없어서 큰 은행나무 밑에다 널판대기에 먹칠을 한 걸 칠판이라고 기대어 놓고, 공석이나 가마니를 깔고는 밤 깊도록 이슬을 맞아가면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였는데 마침 장마 때라 비가 자꾸만 와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움을 팠어요.
나흘 동안이나 장정 십여 명이 들러붙어서 한 대여섯 간 통이나 파고서 밀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덮고, 그 속에 들어가서 진땀을 흘리며 '가갸거겨'를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밤새도록 비가 퍼붓듯이 쏟아졌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가 보니까 교실 속에 빗물이 웅덩이처럼 흥건하게 고였는데, 송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책상 걸상이 둥실둥실 떠다니드군요.”
그 말에 여기 저기서 픽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이 자신도 남자다운 웃음을 띠우고,
“그 뿐인가요, 제철을 만난 맹꽁이란 놈들이 뛰어들어서 저희끼리나 글을 읽겠다고 '맹자왈', '공자왈' 해 가며 한 바탕 복습을 하는데…”
그때에 어느 실없는 군이 코를 싸쥐고,
“매앵 꽁 매앵 꽁”
하고 커다랗게 흉내를 내어서 여러 사람은 천장을 우러러 간간대소를 하였다. 여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어대다가 눈물을 다 질금질금 흘린다. 그러자,
“웃을 얘기가 아니요!”
“쉬 - 조용들 합시다.”
하고 꾸짖듯 하는 소리가 회장 한복판에서 들렸다. 동혁이도 검붉은 얼굴에 떠돌던 웃음을 지워버리고 한 걸음 다가서며,
“나 역시 이 자리를 웃음 바탕을 만들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이보다 더 비참한 현실과 부딪쳐서 더한층 쓰라린 체험을 하신 분도 많을 줄 알면서도 다만 한 가지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하고 잠시 눈을 꽉 감고 침묵하더니 손을 번쩍 쳐들며,
“그러나 여러분! 끝으로 꼭 한 마디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고 목청을 높여 힘차게 청중에게 소리친다. 대원들은 물론, 사회자까지도 다시금 긴장해서 엄숙해진 동혁의 얼굴만 주목한다.
“눈뜬 소경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필요합니다. 계몽 운동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사업 중의 하나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분자인 우리들이 이러한 기회에 전 조선의 농촌, 어촌, 산촌으로 방방곡곡에 파고 들어가서 그네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네들이 그 더 할 수 없이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는 문제를 머리를 싸매고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육칠십 년 전 노서아의 청년들이 부르짖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말)를 지금와서야 우리가 입내 내듯 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에게 뒤떨어진 것을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높직이 앉아서 민중을 관찰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태도를 당연히 버리고, 그네들이 즉 우리 조선 사람이 제 힘으로써 다시 살아나기 위한 그 기초공사를 해야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모인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물질로, 즉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온갖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 요샛말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정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끝마다 힘을 주다가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못 살게 구는 적(敵)이, 고쳐 말씀하면 우리의 원수가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하고 나서, 그는 무슨 범인이나 찾는 듯한 눈초리로 청중을 돌아본 뒤에 손가락을 펴들어 저의 머리통을 가리키며,
“그 원수가 이 속에 들었습니다. '아이구 이제는 죽는구나' '너 나 할 것 없이 모조리 굶어 죽을 수밖에 없구나'하는 절망과 탄식! 이것 때문에 우리는 두 눈을 멀거니 뜬 채 피를 뽑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지레짐작 즉 선입관념이 골수에 박혀있는 까닭에 우리가 피만 식지 않은 송장노릇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 천치바보가 아닌 담에야 우리의 현실을 낙관할 수야 없겠지요. 덮어놓고 '기운을 차려라', '벌떡 일어나 달음박질을 해라'하고 고함을 지르며 채찍질을 한대도 몇 십 년이나 앓던 중병환자가 벌떡 일어나지야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하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혀끝으로 불을 뿜는 듯한 열변에 회장은 유리창이 깨어질 듯한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옳소 - ”
“그렇소 - ”
는 고함과 함께,
“그건 탈선이요.”
하고 반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동혁은 금새 눈초리가 실쭉해지더니,
“어째서 탈선이란 말요?”
하고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며 목소리가 난 쪽을 노려보는 판에, 사회자는 동혁의 곁으로 가서 무어라고 귓속말을 한다.
“중지시킬 권리가 없소!”
“말해라, 말해!”
이번에는 발을 구르며 사회자를 공박하는 소리로 장내가 물끓듯한다. 동혁은 그 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서서 매우 흥분된 어조로,
“지금은 시간의 자유까지도 없지만 내 의견과 틀리는 분은 이 회가 파한 뒤에 얼마든지 토론을 합시다.”
하고 누구든지 덤벼라! 하는 기세를 보이더니,
“나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 민중에게 우선 희망의 정신과 용기를 길러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 계몽운동 대원의 가장 큰 사명으로 믿습니다. 동시에 여러분도 이 신조를 다같이 지키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동혁은 성량(聲量)껏 부르짖고는 교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