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저녁 신랑 신부는 배에 올랐습니다. 대포가 울려 퍼지고 하늘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배의 한가운데에는 왕자님과 공주님을 위해 황금빛과 자주빛으로 곱게 장식한 방이 마련됐습니다. 바람을 받아 돛이 부풀어오르자 배는 이제 가볍게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오색 찬란한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갑판 이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의 생일 날 바다 위에 난생 처음 올라와서 보았던 그 배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도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치 제비가 날쌔게 맴을 도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춤을 추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면서 인어 공주에게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인어 공주도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춤을 춘 적은 없었답니다. 부드러운 두 다리를 날카로운 칼날이 베는 것 같은 고통도 지금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 두 다리보다 마음이 훨씬 더 아픈 거예요. 오늘이 왕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인어 공주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주어가면서 이런 고통을 참았던 것은 오직 왕자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과 함께 공기를 숨쉬는 것도, 깊은 바다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오늘이 마지막이랍니다. 영혼을 가질 수 없는 인어 공주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영원한 밤의 어두움일 뿐이지요.

배 위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즐겁고 흥겨운 축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 가득 품고서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님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신부를 안고서 화려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배는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적에 잠겼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팔을 난간에 기대고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바닷물 위로 언니들이 떠올랐습니다. 언니들도 인어 공주처럼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언니들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린 해가 뜨기 전에 너를 살리려고 이렇게 달려왔단다. 우리 모두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고 이렇게 칼을 얻어 왔어. 자 여기 있단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이 칼을 왕자의 가슴에 꽂아야 한다. 왕자의 따뜻한 피가 네 발을 적시면 네 꼬리가 다시 자라나는 거야. 그러면 너는 다시 예전처럼 인어가 되어 앞으로 300년을 더 살 수 있어.

서둘러야 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를 죽여. 아니면 네가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할머니도 너무 슬퍼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흰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었어. 왕자를 죽이고 돌아오려므나! 서둘러야 한단다! 저기를 봐! 하늘에 저렇게 붉은 띠가 나타나는 게 보이니? 이제 금방 해가 솟을 거야. 그러면 넌 죽고 마는 거야!"

언니들은 칼을 인어 공주에게 주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주빛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님이 왕자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자는 모습이 보였어요. 인어 공주는 허리를 굽혀 공주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아침 노을이 밝아오는 하늘과 날카로운 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꿈을 꾸면서도 신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칼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러나 마침내 그 칼을 멀리 바다 가운데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왕자님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 부드러운 햇살은 죽음처럼 차디찬 바다를 비추었어요.

인어 공주는 죽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밝게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었어요. 햇빛 사이로 투명한 모양들이 수백 개나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모양들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위 배의 하얀 돛과 하늘의 붉은 구름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투명한 모양들은 어떤 곡조를 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점점 더 하늘 높이 떠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형체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인어 공주가 물었습니다.

"공기의 딸들에게로 가는 거예요."

다른 형체들이 대답했습니다.

"인어는 영혼이 없지요.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질 수 없어요. 공기의 딸들도 역시 영혼은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착한 일을 하면서 영혼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는 중이에요. 공기를 통해서 꽃의 향기를 이 세상 멀리까지 퍼뜨리는 거랍니다.

300년 동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영혼을 얻을 수 있어요. 가엾은 인어 공주님, 당신은 마음을 다 바쳐 영혼을 얻으려고 했지요. 엄청난 아픔을 참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그 고통이 당신을 공기의 요정들의 세계로 끌어올린 거랍니다. 이제 당신이 착하게 살아가면 300년 뒤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두 팔을 해를 향해 뻗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 위에서는 왕자님이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인어 공주를 찾고 있었어요. 그들은 슬픈 얼굴로 진주빛으로 빛나는 바다의 거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어 공주가 바다 속으로 뛰어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신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에게는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공기의 요정들과 함께 장미빛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300년이 지나지 않아도 우린 그 곳에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착한 어린이를 찾아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 기간을 줄여 주십니다. 그러면 300년 가운데서 1년이 줄어드는 거에요.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도 하루씩 늘어나게 됩니다."

어느 공기의 요정이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