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는 아름다운 탑들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탑의 동그란 지붕에는 황금을 입혀 놓아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궁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비싼 커튼과 벽걸이로 장식되어 있고,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방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천장을 덮은 둥근 유리창에까지 솟아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매일 왕자님의 궁전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언니들보다 훨씬 더 육지 가까이 간 것이지요. 바다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화려한 대리석 발코니 바로 아래까지도 갔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는 거기서 왕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밝은 달빛 아래 혼자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또 왕자님이 보트를 타며 음악을 듣는 모습도 초록색 갈대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인어 공주의 은백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곤 했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보고 그저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인어 공주는 자기가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던 왕자님을 구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인어 공주는 그 때 왕자님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입을 맞추었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지요.

인어 공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바다속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마음대로 다니는가 하면 높은 구름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물 밖 세상은 숲과 들판이 있고, 인어 공주가 바라보는 곳보다 훨씬 더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언니들도 거기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할머니만이 바다 위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나요? 바다 속 우리와 달리 죽지 않고 살 수 있나요?"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아니, 사람들도 죽는단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죽게 되지. 우리는 300년 동안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죽은 다음에 그냥 물위의 거품이 되고 마는 거야. 무덤도 없고... 다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단다. 우리는 저 푸른 갈대와 마찬가지야. 한 번 꺾이면 두 번 다시 파랗게 살아나지 못하는 저 갈대 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죽어서 흙이 된 뒤에도 그 영혼은 영원히 살 수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솟아올라서 저 반짝이는 별로 간단다. 우리가 물위로 떠올라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올라가는 거야."

"우리는 왜 영혼을 얻을 수 없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제 생명을 버리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못써! 우리는 지금 인간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지 않니."

"하지만 제가 죽으면 바다 위 거품으로 떠돌겠지요? 파도가 노래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이나 붉게 빛나는 태양도 볼 수 없잖아요? 영혼을 얻으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방법은 없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면 그 사람의 영혼이 네 몸 속으로 흘러 들어와 너도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을 함께 누리는 거야. 서로의 영혼을 나누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생길 수 없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사람들이 네 꼬리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들은 우리와 달라서 다리라는 것을 갖고 있지."

인어 공주는 슬픈 얼굴로 자기의 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말했어요.

"자, 이제 좀더 즐겁게 지내자꾸나. 우리는 30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건 정말 즐거운 거야. 인간들은 무덤으로 가지만 말이야. 오늘 저녁에 궁전에서 무도회를 열도록 하자."

바다 속 무도회는 사람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렇게 화려한 축제예요.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지요. 장미처럼 붉은 조개와 초록색 조개들이 사방으로 줄을 지어 있구요. 이 조개 껍질들이 파란 불빛을 비춰 무도회장을 아름답게 밝힌답니다. 그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리벽 사이로 헤엄치구요. 물고기들의 비늘은 자주빛, 붉은 색으로 반짝입니다. 어떤 물고기의 비늘은 금빛과 은빛이랍니다.

맑은 시냇물이 무도회장 가운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남자 인어들과 여자 인어들이 사랑스러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지요. 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는 못할 거예요.

막내 인어 공주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답니다... 막내 공주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결코 왕자님을 잊을 수 없었어요. 자기가 왕자님처럼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혼자서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작은 정원에 앉았어요. 그 때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저 배에는 왕자님이 타고 있을 거야. 왕자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 나는 꼭 왕자님을 얻고야 말 거야. 그리고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거야. 그래, 마녀에게로 가 보자. 어쩌면 마녀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인어 공주는 정원을 빠져 나와 바다 저쪽 거칠게 날뛰는 소용돌이 속으로 갔습니다. 마녀는 바로 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전에 한 번도 그 길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꽃은 말할 것도 없고 흔한 바다 풀조차 나 있지 않은 곳이었어요. 쓸쓸한 회색 모래만이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마녀의 집으로 가려면 소용돌이와 부글부글 끓는 진창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마녀의 집은 거기를 지나 이상한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나무와 덤불에는 모두 대가리가 달린 것 같았습니다. 마치 흙에서 솟아나 꿈틀대는, 수백 개 머리가 달린 뱀처럼 말이에요. 가지는 마음대로 휘어지는 긴 팔 같고, 몸통이 따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지나가는 것을 단단히 붙잡아 휘어 감아서는 두 번 다시 놓아주지 않는답니다.

인어 공주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앞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차라리 이제라도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팔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 살아 움직이는 덤불들이 손을 댈 수 없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으고, 가지를 내뻗는 무서운 그 덤불 식물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쳐 지나갔습니다.

그 덤불 속에 사람들의 하얀 해골이 보였습니다. 또 그 덤불들이 목을 졸라 죽인 여자 인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