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공주는 선실의 창문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일렁이는 물살에 기댄 채 공주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랗고 검은 눈을 가진 젊은 왕자님도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열 여섯 살이 넘어 보이지는 않았답니다.

오늘은 바로 왕자님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배 안을 온통 화려하게 꾸민 것이랍니다. 갑판 위에서는 선원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공중에는 불꽃이 펑펑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은 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곧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자기에게 떨어져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꽃은 이리저리 튀면서 화려하게 빛나는 물고기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불꽃은 맑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고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왕자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어요.

점점 밤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아름다운 왕자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이제 화려한 등불이 모두 꺼지고 더 이상 불꽃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않았지요. 대포 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혼자서 조용히 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배는 돛을 활짝 펼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커다란 구름도 몰려왔어요. 멀리서 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렸습니다. 배는 커다란 파도 때문에 바다 위를 날 듯이 달렸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마치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시커먼 파도가 마치 배를 덮치려는 듯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배는 높은 파도 사이에서 백조처럼 가라앉았다가 다시 치솟으면서 거칠게 흔들렸어요.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여기저기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배의 두꺼운 몸체가 거센 파도에 얻어맞고 휘어졌어요. 그리고 그 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돛대가 절반으로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해진 것을 보고 인어 공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도 부서진 배의 파편들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요.

그 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이며 주위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가 막 왕자님을 발견한 순간 배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인어 공주는 무척 기뻤습니다. 왕자님이 바다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반가웠거든요. 하지만 곧 사람은 인어처럼 물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오면 왕자님은 곧 죽고 말 거예요. 그러나 왕자님은 절대 죽어서는 안됩니다.

인어 공주는 물위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배의 파편들을 피해 왕자님에게로 헤엄쳐 갔습니다. 자기가 다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파도 위로 떠올라 왕자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왕자님은 정신을 잃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름답던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인어 공주가 아니었다면 왕자님은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지난밤 그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빛나는 해님이 붉게 떠올랐어요. 왕자님으 두 뺨이 햇빛을 받아 차츰 붉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두 눈은 그대로 감겨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어요. 왕자님의 모습은 마치 바다 속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조각상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한 번 왕자님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살아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때 인어 공주는 육지를 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산꼭대기에 백조처럼 하얀 눈이 덮여 있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멋있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 앞에 있는 집들은 아마 교회나 수도원들이겠지요. 거기 정원에는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키가 큰 종려나무들이 서 있었구요. 바닷가에는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을 끌어안고 모래밭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양지쪽에 왕자님을 눕혔습니다.

그 때 종소리가 울리더니 젊은 처녀들이 정원으로 뛰어 달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래서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왕자님에게 누가 오는지를 지켜보았어요.

어떤 젊은 아가씨가 왕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가씨는 깜짝 놀라 곧 사람들을 불러 왔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왕자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몹시 슬펐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왕자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막내 공주는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습니다. 언니들이 막내 공주에게 바깥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막내 공주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공주는 매일 밤 왕자님이 누워 있던 그 바닷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뒤 단 한 번도 왕자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높은 산을 뒤덮고 있던 하얀 눈도 모두 녹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제 꽃도 가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꽃과 나무들이 날이 갈수록 시들고, 정원은 무척 쓸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공주는 한 언니에게 이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차츰 다른 언니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언니 가운데 하나가 그 왕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 언니도 배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왕자님을 보았던 거예요.

"막내야, 이리 오렴."

공주들은 막내 공주를 이끌고 왕자님의 궁전이 있는 곳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궁전은 노란 돌로 지어져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바다에서부터 커다란 대리석 계단이 궁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