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이 때 이게 무슨 기적일까! 울타리를 헤치고 노란 사나이가 보도로 나타났다. 사냥 주머니에 두 마리 어린 토끼를 매달고 어깨에는 기억에도 생생한 러시아 가죽 멜빵에 삼림 감독주임의 그 최신형 라이플을 메고 있었다. 호프는 숨은 장소에서 안전하게 이 부랑배를 쏘아 쓰러뜨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사냥꾼 호프가 아무 경고도 없이 발사할 수는 없다. 그는 날쌔게 나무 뒤에서 길로 뛰어 나오며 "손 들어, 이 나쁜 놈!"하고 외쳤다. 그리고 밀렵꾼이 대답 대신 어깨에서 총을 내리는 것을 보자 사냥꾼은 방아쇠를 당겼다. 만세, 이게 안 맞을 리 없다. 그러나 총은 탕 하는 소리 대신 찰칵 하는 소리를 내었다. 뇌관을 단 채 너무 오랫동안 축축한 숲 속 나무에 걸어놓았던 것이 문제였다. 뇌관이 젖어 점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그만이다, 마지막 때가 왔군... 노인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의 모자만 총탄에 구멍이 뚫려 풀숲으로 날아갔다.
상대방도 운이 나빴다. 그것이 그의 총에 장전된 마지막 총알이었다. 다음 사격을 위해서는 탄약을 꺼내야 했다.
"덤벼라!" 호프는 목이 쉬어서 그의 개에게 지시했다. "덤벼라!" 그런데 저쪽에서 "이리 와, 나에게 와! 이리 와, 크람밤부리!"하고 부드럽고 애정에 찬 소리로, 옛날에 친근했던 그 목소리로 꼬이는 것이었다.
개는 그러나 -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순식간이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크람밤부리는 첫 주인을 알아보자 재빨리 뛰어갔다. 길의 한가운데까지. 그러나 호프가 휘파람을 불자 개는 돌아 서고, 노란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자 다시 되돌아 섰다. 사냥꾼과 밀렵꾼 한 가운데서 절망에 몸부림치며, 양자를 똑 같은 거리에 둔 채 무한히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 자리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 가엾은 개는 절망적이고 쓸데없는 투쟁을 포기하고, 그 혼란을 깨뜨리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고뇌는 그대로 계속됐다. 짖어대고 신음하며 배를 땅에 대고 몸을 활 시위처럼 당기면서 하늘을 우러러 그의 영혼의 고통을 증언해주기를 바라듯 머리를 높이 든 채 첫 주인에게 기어가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호프는 피에 굶주리듯 잔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떨리는 손으로 새로 뇌관을 채우자, 침착하고 확실한 동작으로 다시 조준했다. 노란 사나이 또한 총구를 그에게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결판이 난다. 서로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 무엇이 있건 지금 서로 상대방을 겨냥하고 있는 두 사람은 그림 속 한 쌍의 저격병처럼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사냥꾼의 총알이 맞았고, 밀렵꾼의 총알은 빗나갔다.
개가 폭풍우 같은 애무의 행동으로 밀렵꾼에게 기어올라 방아쇠를 당긴 그 순간 몸이 흔들렸던 것이다. "이 개새끼!" 밀렵꾼은 중얼거리며 벌렁 나자빠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심판을 내린 사나이는 천천히 밀렵꾼에게 다가갔다. 벌써 죽었겠지, 너깐 놈 죽이는 데는 산탄 한 알도 아깝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총을 땅에 세우고는 다시 탄환을 장전했다. 개는 그 앞에 똑바로 앉아 혀를 늘어뜨린 채 헐떡이면서 그의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꾼이 총알을 재우고 총을 다시 손에 쥐면서 그들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죽은 사람 대신 산 사람이 있었다 해도 이 얘기만은 어떤 증인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탄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는가?"
"짐작합니다."
"배신자, 비열한 놈, 의무와 충성을 잊은 놈!"
"예, 주인 어른 그렇습니다."
"네는 내 기쁨이었다. 허나,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제 너한테서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아!"
"당연한 말씀입니다, 주인 어른." 크람밤부리는 몸을 굽히고 뻗은 앞다리 위에 머리를 대고 꼼짝 않고 사냥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저주 받은 개가 이렇게 꼼짝 않고 그의 얼굴만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그는 빨리 결말을 지었을 것이고 자기나 개나 고통을 덜 받고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생물을 누가 쏘아 넘어뜨릴 수 있으랴. 호프 씨는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한 마디씩 강도를 높여 저주의 말을 반 다스나 퍼붓고 다시 총을 어깨에 메고 밀렵꾼의 시체에서 어린 토끼를 빼앗은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개는 그의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뼈에 사무치는듯한 비탄의 울부짖음으로 숲 속을 울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두 세 번 빙빙 돌고는 다시 죽은 자 곁에 앉았다. 관청의 검사원들이 왔을 때도 개는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검사원들은 밀렵꾼의 시체를 검사하고 뒷처리를 하고자 호프의 안내를 받아 해가 저물 무렵 나타난 것이었다. 크람밤부리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자 두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검사원 한 사람이 호프에게 말했다.
"이건 당신 개 아닙니까?"
"시체를 지키라고 여기 남겨 두었지요." 호프는 대답했지만 사실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진실은 감출 수 없었다. 시체가 차에 실려 운반돼 가자 크람밤부리는 목을 떨구고 꼬리를 꼬면서 어슬렁 어슬렁 그 뒤를 따라간 것이다. 노란 사나이가 누워 있는 시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음 날도 이 개가 서성거리는 것을 관리인이 발견했다.
그는 개를 한 대 걷어차고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크람밤부리는 이 사나이에게 이를 드러내 보이고 도망쳐 갔다. 사나이가 보기에 개는 호프의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크람밤부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처량한 똥개 생활을 보냈다.
크람밤부리 - 5. 비탄의 울부짖음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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