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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울어대는 죄인들 가운데 서서 삼림 감독주임이 악마 같이 광포하게 외친 그 명령은, 수렵장지기가 그에게서 들은 마지막 명령이 되고 말았다. 1주일 후 그는 또 다시 보리수 숲에서 삼림 감독주임을 만났으나 그가 만난 것은 이미 죽은 시체였다.
시체의 상태로 짐작컨대 삼림 감독주임은 죽은 후 늪과 자갈이 많은 곳을 질질 끌려와 이 장소에 버려진 것 같았다. 시체는 부러진 가지 위에 눕혀 있고 이마에 보리수 꽃을 엮은 화환이 얹혀 있었다. 가죽 멜빵은 사라지고 싸구려 끈이 가슴에 감겨 있었다. 모자는 그 옆에 놓여 있었지만 거기에도 보리수 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냥 주머니는 그대로 놓고 갔지만 탄약은 모두 빼가고 그 대신 보리수 꽃을 넣어 놓았다.
삼림 감독주임의 최신형 고급 라이플이 보이지 않고 오죽잖은 헌 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중에 피해자의 가슴에서 발견한 탄환은 감독주임의 어깨에 걸쳐 있는 이 헌 총의 총신에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호프는 이처럼 무참하게 죽은 시체를 눈 앞에 두고 경악해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만 눈을 멀뚱하게 떠서 바라보며 처음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얼마 뒤 겨우 상황을 관찰하고 그는 말 없이 속으로 물었다. "도대체 개는 뭘 하고 있었담?"
크람밤부리는 시체의 냄새를 맡고 코를 땅에 댄 채 미친 듯 주위를 뛰어 다녔다. 캥캥 우는가 하면 소리높이 환희의 소리를 짖어대면서 두 세 번 뛰었다간 짖어대는 것이, 마치 훨씬 옛날에 사라져버린 회상을 되찾는 것 같았다...
"가자." 호프는 불렀다. "자, 가는 거야!" 크람밤부리는 그 명령에 복종했지만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 이 사냥꾼이 언제나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주인님, 도대체 이게 안 보입니까? 이 냄새를 맡지 못합니까? 제발 주인님, 보세요! 자 여기로 오세요. 여기예요!" 그리고 콧등을 사냥꾼의 무릎에 대며 "따라오시겠어요?"라고 묻는 것처럼 자주 뒤를 돌아보며 시체 있는 곳으로 기어가는 것이었다. 무거운 총을 들어올려 입에 물어가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사냥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의별 억측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꼬치꼬치 캐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또 그가 당장 취해야 할 조치도 사냥개의 태도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차라리 그가 발견한 그 무참한 시신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곧바로 관청에 가서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그는 여하튼 그가 해야 할 조치를 했다.
관청에 가서 법률로 정해진 틀에 박힌 수속을 마치고, 그날 하루와 밤을 그 때문에 허비한 뒤 호프는 자기 전에 다시 개를 불러 타일렀다.
"이 봐" 그는 말했다. "지금은 벌써 경찰이 출동해 수색을 시작했어. 우리 감독 주임을 쏴 죽인 악당을 이 세상에서 잡아 없애야 하는데, 그래 이 일을 딴 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니... 넌 그 비열한 부랑배를 알고 있어. 놈을 알고 있단 말이야! 그러나 이건 누구한테도 알릴 수 없지. 그런 건 난 말하지 않았다. 이 내가, 바보같이... 내가 너를 사건에 휩쓸리게 하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는 자기의 무릎 사이에 앉아 있는 크람밤부리 위에 몸을 굽혀 볼을 개의 머리에 대고 개의 고마워하는 애무의 몸짓을 받아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잠들 때까지 연방 "기분이 어때, 크람밤부리?"하고 노래를 불렀다.
범죄자들은 대개 자기의 범행 장소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을 받곤 한다. 심리학자들도 그 비밀스러운 충동을 해명하려고 시도하지만 호프가 이렇게 자세한 학문적인 내용을 알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는 개를 데리고 줄기차게 보리수 숲 근처를 뒤지고 다녔다.
삼림 감독주임이 죽은 지 열흘째 되던 날 그는 처음으로 몇 시간 동안 복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백작의 숲에서 다음 벌채 때 베어낼 나무를 표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을 끝낸 다음 그는 다시 총을 어깨에 메고 제일 가까운 길을 택해서 숲을 가로질러 보리수 숲 근처에 있는 영유림을 향해 가려고 했다. 벚나무 울타리 옆으로 뻗어있는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잎 사이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후는 다시 깊은 고요가, 한없이 깊은 고요가 주위에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별 것 아니려니 생각했으나 그래도 개가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털을 곤두세우고 고개를 쑥 빼곤 꼬리를 곧게 세우고 울타리 한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흥, 요것 봐라, 요 놈 바로 너구나! 호프는 이렇게 생각하며 나무 뒤에 몸을 감추고 노리쇠를 당겼다.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여느 때도 숨이 가빴지만 지금은 아예 숨이 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