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일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요하나와 함께 벚나무 동산으로 갔다. 버찌를 걷어들이는 일이 끝나면 츠빙겐베르크 장터로 가곤 했다. 그 두 주일 동안 요하나는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요하나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두 주일 동안 요하나는 멍청이를 위해 정조를 지켰다.
어느날 멍청이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내일 모레가 버찌 잔치일세."
나는 요하나에게 버찌 잔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것은 버찌의 수확을 감사하는 잔치로서 근방의 친척들과 악사들이며 젊은이들, 처녀들이 모여든다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요하나와 나는 또 버찌를 싣고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어린애를 낳게 되고, 그러면 어린애에게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지어줄 작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숲을 지났다. 요하나는 울면서 우리들이 죄를 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좋아요, 요하나." 나는 말했다.
"나는 앞으로 어디로 떠돌아다닐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이 마음씨만은 언제까지나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을 거에요. 당신은 이렇게 가까이 있고, 또 이렇게 멀리 있으니 말입니다."
요하나는 말을 세우더니 말해다. "하인리히..." 요하나는 이렇게 말하고 내 눈시울에 키스했다. 그곳은 언덕길 꼭대기였다. 황토 길은 바람에 바짝 말라 있었고, 풀이 나부끼고 있었다. 마을은 저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목장도 저 아래에 있었다. 아! 그것은 정말 부드러운 푸르름이었다.
"내게도 인생이 있어요." 요하나는 말했다. "저곳에는 없는 그런 인생이..." 그렇게 말하면서 요하나는 마을을 가리켰다.
"하지만 어린애는 저곳을 떠날 수 없을 거에요. 하인리히,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알아 주시겠죠? 저기서 태어난 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말구요." 나는 대답했다.
"요하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살아야 할 그 길을 살아가면 되는 거야."
요하나는 또 울었다. 나는 말을 움직였다. 마차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이 지금도 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우리들이 마을로 들어가자 갑자기 여자들이 몇 사람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그 뒤로 남자들, 그리고 어린애들, 모두가 우리에게 뛰어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요하나는 일어서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말을 채찍질했다. 우리는 곧 집에 닿았다. 거기에는 악사들이 서 있고 마당의 나무들에 오색 리본으로 장식돼 있었으며 집 정면 벽에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뛰어내렸다. 요하나도 내려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외쳤다. 그러자 마당 안쪽에 모여 있던 남자들이 잠깐 흩어졌다. 그 뒤로 멍청이가 벤치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이마가 깨어져 피투성이였다. 윗도리도 피투성이, 아래 쪽 땅에도 피가 흘러내려 피투성이였다.
"어떻게 된 거에요?" 요하나가 외쳤다. 멍청이 옆에 서 있던 사나이, 노이슈타트에서 온 의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토바이 사고입니다. 지금 거의 빈사 상태입니다."
아아, 요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외침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울부짖었다. 그런가 하면 이번엔 웃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움찔했다. 여자들이 여기 뛰어들었다. 그러나 요하나는 못 박힌 듯 그대로 서 있었다. 혼자서, 제 몸을 부등켜 안 듯 소리쳐 외치더니 그만 기절했다. 어머나! 여자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몸부림치며 소리치는 요하나를 집안으로 떠메고 들어갔다.
그러나 의사까지 우리 남자 세 사람은 멍청이의 옆에 서서 소와 말들이 소란을 떠는 것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갑자기 집안에서 여자들이 또다시 외치고 게다가 마침 교회의 저녁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까지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들고 갈팡질팡하는 인간들을 무서운 하늘이 덮어버릴 것만 같은 바로 그 때, 멍청이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희멀건 거품마저 흘리며, 그러나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는 숨결이 넘어가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내 아이가 나왔나?"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몸이 오싹했다. 우리는 그를 떠메어 거실로 옮겨 가까스로 자리에 눕혔다. 위층에서는 요하나가 울부짖고 멍청이는 겨우 숨을 돌리는 듯 하더니 다시 묻는 것이었다. "내 아이가 나왔나?" 그리고 나서 그는 축 늘어져 허탈한 미소를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겨우 숨을 돌렸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나는 멍청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가슴은 뭉개지고 뺨 위로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위에서는 요하나가 아직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몇 번인가 이 농사꾼은 뭔가 말하려고 했다. 마치 어린애들이 태어나서 비로소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하는 그런 입 모습이었다. 아아, 나는 생각하는 것을 말로 나타내지 못하는 그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의사가 돌아와서 멍청이에게 주사를 놓았다. 그는 조금 안정이 되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봐, 멍청이." 나는 물었다. "나를 알겠나?"
"내 아이냐?" 그는 잘 돌지 않는 혀로 말했다.
"그렇고 말고." 나는 말했다. "어린애..." 갑자기 멍청이는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하인리히, 어린애... 그러면... 돼. 내 아이만 나오면 나야 죽어도 상관없지 않겠나?"
나는 그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었으나 그는 그것을 집어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눈을 치켜 떴다. 나는 이렇게 무서운 눈초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들었나?" 그는 속삭였다. "저 소리 들었나?"
위에서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세 번이나 울려퍼졌다. 유월의 따스한 밤 바람이 목장을 스쳐 지나가고, 버찌 잔치 리본이 마당의 나무에 매달려 바스락 바스락 스치는 가운데 이 젊은 농사꾼은 일어서더니 문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넘어졌다. 그리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내 아이가 먼저, 그리고 그 다음이 나야. 하나님, 소원입니다."
나는 그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는 마구 팔을 휘둘렀다. 그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의사가 방에 들어왔다. 그는 웃음 소리를 내며 손을 닦았다.
"튼튼한 아이야" 그는 소리쳤다.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뭐 토실토실한 애야."
갑자기 멍청이는 마루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똑바로 침대로 걸어갔다. 몸을 눕히는가 싶더니 입에서 피를 토했다.
"아, 그렇지..." 의사가 말했다. "깜빡 잊을 뻔했군..." 그러나 멍청이는 벌써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피가 가슴에서 펑펑 쏟아졌다. 그는 두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세 번 가량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어렴풋이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 그만 자리에 쓰러졌다.
"아멘." 의사는 말하고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층에서 갓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마구간에 가서 짐을 꾸렸다. 안마당엔 악사들과 열 여덟 명의 처녀들이 서 있었다. 의사가 웃으면서 문 앞에 나와 고함을 쳤다.
"멍청이의 아이야..."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악사들은 나팔을 불어대고 여자들은 기뻐서 스커트에 손을 자꾸 문질러댔다.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나는 큰 길로 나섰다... 우리들이 그 속에서 나와 그 속으로 사라져갈 흙먼지 속으로...
<끝>
버찌 잔치 - 4. 버찌 잔치와 '생명'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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