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에 퍽 얻어맞는 바람에 눈을 떴다. 눈 앞에 불쑥 말의 커다란 모습이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이 주정뱅이 자식아."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내가 길 한복판에 드러누운 것을 어떤 사나이가 본 것이다. 아마 잠이 든 채 나도 모르게 거기까지 굴러간 모양이다. 농사꾼 한 사람이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그 농사꾼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져서 내게 덤벼들었다. 젊은 농사꾼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거세게 끌어당겼다.
"이제 겨우 아침 일곱 시밖에 안됐는데 얼굴이 맛이 갔군." 그는 호통을 치며 나를 밀어서 길 옆 개천에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잽싸게 딱 한 대 먹여주자 그대로 나자빠졌다. 당연히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 주먹질을 했다. 그러나 나는 권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시골 농사꾼 따위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젊은 농사꾼은 얼마 안 가서 땅바닥에 나자빠져 꼼짝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숲의 달콤한 공기를 가슴에 흠뻑 들이마셨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일까. 나는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나는 가슴을 쭉 펴고 늘 하던 식으로 작은 술병을 한 모금 하려고 했다. 그 때 마차에서 어떤 여자가 뛰어내렸다. "이 멍청아!" 그 여자는 외치면서 농사꾼 옆으로 뛰어가 머리를 쳐들고 이마를 쓸어주기 시작했다.
"아니, 아주머니, 그걸로는 안될 걸." 나는 여자에게 말을 걸며 그들 부부 곁으로 가서, 농사꾼 코 밑에 술병을 들이밀었다. 그는 눈을 떴다.
농사꾼은 윗몸을 일으키더니 마누라가 제 몸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당신을 한 대 먹인 거지 뭐야." 내가 대답해 줬다. 그러자 그 마누라는 웃었다. 농사꾼이 영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이 근처를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설치는 날치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말을 계속했다. "내가 누군가 알려드리지. 일터를 잃은 조립공일 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조국 땅을 떠돌아다니는 중이지. 그러다 지치고 허기져서 여기서 잠깐 잠이 들었던 걸세."
그 때 그 마누라가 또 한 번 웃었다. 빨간 보자기를 뒤집어 쓴, 그 밑의 머리카락은 까맣고, 그 이는 어쩌면 또 그리 희고 깨끗할 수 있을까.
"아유, 멍청이." 그녀는 농사꾼의 턱에 붙은 흙을 문질러 털어주면서 말했다. "처음에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싸우지 않아도 됐을 걸... 그 벌을 받은 거에요."
멍청이, 그 농사꾼은 일 분 가량 나를 그렇게 노려보았다. 그리곤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튼 어디든지 마을을 찾아 들어가 배를 채워야겠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버터를 바른 빵이라든가 따뜻한 감자를 좀 얻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말이다.
"여기 타게." 멍청이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마차에 탔다. 조그마한 말이 종종걸음으로 달리고, 앞 자리에는 그 멍청이가 타고 고삐를 잡았다. 나는 그 마누라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숲의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우리들은 만나서 마차를 타고 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으로 내가 멍청이네 집에 붙어 있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길을 가는 동안 우리들은 정말 한 마디도 지껄이지 않았다. 마차는 평평한 분지의 어떤 마을에 이르러 어느 농가 앞에 멈췄다. 집은 아주 컸고 우리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거기 들어서면서 나는 너무 기진맥진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을 떠 보니 나는 높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가에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둘러 보았더니 벽에 수호천사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그림을 보고 나는 기뻤다. 울창한 숲 속의 위험한 길에서 천사가 한 어린이를 인도해가는 그림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침대 위에도 그런 그림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소가 울었다. 나는 메크렌부르크의 그 불행했던 아마리에 고모 집에 내가 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가 다시 한 번 울자 나는 또 생각했다. '이건 프랑돌의 휴양지로구나. 그러면 머지않아 콘라드와 슈나이더 녀석들이 올 게다. 그러면 또 다들 트럼프 놀이에 열을 올리게 되겠지.'
그런데 소가 세 번째 울자 문을 열고 그 멍청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너는 이틀 밤 이틀 낮을 꼬박 자기만 했어" 하고 말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훑어 보면서 말했다. "자네가 해줄 일이 있어. 실은 나흘 전에 우리집 일꾼이 죽어 버렸거든."
"그게 바로 그 친구 침대였어." 그는 내가 누워있던 침대를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껑충 뛰어오르며 외쳤다. "밥과 잠자리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네."
"그렇게 하지." 멍청이는 말했다. 우리들은 아랫방으로 내려가 진을 마시고 치즈와 빵을 먹었다.
농사꾼 집에는 별로 힘드는 일이 없었다. 멍청이는 내가 하고싶은 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선 나는 기계란 기계는 모조리 다 고쳐주었다. 짚을 묶는 기계에서부터 작두, 전기 줄 배선 또는 원심기에 이르기까지. 소나 말의 뒤치닥거리도 했고 장부 적는 것도 거들어줬다.
어느날 밤에는 멍청이가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하기에 함께 노이슈타트까지 가서 괜찮은 중고품을 하나 사오기도 했다. 내가 그것을 먼저 시승해본 이후 이 멍청이는 매일 밤 이 고물 오토바이를 윙윙거리며 고개 꼭대기 참나무가 서 있는 곳까지 꼬불꼬불한 산길을 몰곤 갔다 오곤 했다.
시간은 달콤한 휴식 속에서 지나갔다. 농장의 짐승들을 돌보고 난 뒤의 기분은 어쩌면 그리도 흐뭇했던지. 외양간 속에 짐승들은 윤이 나도록 솔질을 했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그들 멍청이 부부가 만족스러워 하는 것이 기뻤다. 멍청이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나를 칭찬했다. 그는 자주 나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혀 숲 가운데 있는 주막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의 마누라 이름은 요하나였다. 젊고 미인이었다. 나에게는 별로 말을 건네지 않았고 나도 될 수 있으면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은 그녀가 곁에 있으면 언제나 나는 프렌츠헨의 생각이 떠올라 난처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면서도 건드려보지 못한 첫 사랑 여자애였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매일 일하고 자고, 그리고 먹어 지새는 멋진 생활이었다.
버찌 잔치 - 2. 젊은 농사꾼과 그의 아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3 / 전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