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비탈진 산길을 따라 감쪽같이 사라진 뒤에도, 그 노새 발굽에 채여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는 계속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 돌멩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내 심장에 쿵쾅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래오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아련한 꿈에라도 취한 듯 졸음에 겨운 듯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석양이 지고, 멀리 내려다 보이는 산골짜기들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변하고, 양들도 매매 울면서 울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비비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밑으로 내려가는 언덕배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우리 아가씨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웃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가씨는 물에 흠뻑 젖은 채 추위와 공포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언덕을 내려가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소르고 강을 기어코 건너려다 그만 물에 빠진 것입니다.
이제 날은 저물고 아가씨가 농장으로 돌아 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난처한 일이지요. 지름길이 있기는 해도 아가씨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내가 양 떼를 버려두고 여기를 떠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가씨는 산 위에서 밤을 세워야 하고, 가족들이 근심할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아가씨를 안심시키려고 힘 닿는 대로 위로해 줄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칠월이라 밤이 아주 짧습니다, 아가씨.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렇게 달래 놓고 나는 급히 불을 피워, 시냇물에 젖은 옷과 발을 말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유와 치즈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엾은 아가씨는 불을 쬐려고도,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구슬 같은 눈물만 눈에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그만 나까지 같이 울고 싶어지더군요.
기어코 밤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햇볕은 멀리 산꼭대기에만 간신히 남아 있어, 서쪽 하늘에 아지랑이처럼 한 줄기 빛을 던지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아가씨더러 울 안에 들어가 쉬시라고 당부했습니다. 새 짚 더미 위에, 아직 한번도 쓰지 않은 새 모피를 깔아놓고,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고 나는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습니다.
비록 누추할망정 내가 사는 울 안에서, 신기한 듯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양들 곁에서, 주인댁 따님이 - 양들 가운데 가장 귀하고 순결한 한 마리 양처럼 - 내 보호를 받으며 마음 놓고 고이 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생각에 마음이 벅차 올랐습니다. 이때까지 밤하늘이 그렇게도 깊고, 별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갑자기 사립문이 삐걱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양들이 뒤척이는 바람에 짚이 버스럭거리고, 혹은 잠결에 '매' 하고 우는 소리를 내는 놈들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누워 있느니 차라리 모닥불 곁에 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더 크게, 이글이글 피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밖에서 밤을 새워 본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깊이 잠든 한밤중에는 뭔가 또 다른 신비한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서 눈을 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연못에는 조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입니다.
온갖 요정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가 공기 속을 뚫고 들려오죠. 주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가 우리 주위를 감싸는 겁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밤이 오면 낮에는 침묵했던 물건들의 세상이 되는 거에요. 물론 그 동안 한 번도 이렇게 낯선 밤의 세계를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좀 무서워질 수도 있습니다만...
별 - 3. 다시 돌아온 아가씨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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