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눈이 빠지게 보름치 식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식량은 그 날 따라 아주 늦게야 도착했습니다. 아침 나절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큰 미사를 드리는 것일 테지.' 점심때쯤에는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길이 나빠 일찍 노새를 몰고 떠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드디어 세 시쯤 말끔히 씻긴 하늘 아래 온 산이 비에 젖고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일 때였습니다. 나뭇잎에 물방울이 똑똑 하는 소리, 물이 불어난 개천이 좔좔 넘쳐 흐르는 소리와 함께 문득 방울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흡사 부활절 날 여기저기 종루에서 일제히 울려오는 소리와도 같이 즐겁고 경쾌했습니다.
그러나 노새를 몰고 나타난 사람은 꼬마 미아로도,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일까요? ... 천만 뜻밖에도 바로 아가씨였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노새 등에 올라 버들고리를 싣고 몸소 나타난 것입니다. 맑은 산 정기, 소나기 뒤에 싸늘하게 씻긴 공기 탓인지, 얼굴이 온통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꼬마는 앓아 누워 있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아이들을 보러 갔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스테파네트는 노새에서 내리면서 그 모든 소식과, 도중에 길을 잃어서 늦어졌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가씨 머리에 꽃은 꽃 리본이며, 눈부신 스커트, 그리고 곱게 빛나는 레이스로 단장한 화려한 옷차림이 덤불 속에서 길을 찾아 해맨 것이 아니고, 마치 어느 무도회에 들러 놀다가 늦어진 것처럼 보였답니다.
그 귀여운 모습! 아무리 바라보아도 내 눈은 지칠 줄 몰랐습니다. 사실 난 그때까지 그렇게 가까이서 아가씨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양 떼를 몰고 들판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으러 농장으로 가면, 가끔 아가씨가 식당을 휙 가로질러 가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하인들에게는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늘 아름답게 차려 입고 어쩐지 깔끔해 보이고... 그런데, 지금 그 아가씨가 바로 내 눈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만하면 넋을 잃을 만하지 않습니까?
바구니에서 식량을 끌어내자마자 스테파네트는 신기한 듯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아가씨는 아름다운 나들이 옷을 더럽힐까 봐 스커트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더니, 양을 몰아넣는 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자는 구석자리에 깔린 양 모피, 벽에 걸린 커다란 두건 달린 외투, 내 채찍, 그리고 구식 엽총 따위를 보고 싶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가씨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그래, 여기서 산단 말이지? 가엾어라. 밤낮 이렇게 외롭게 지내면 얼마나 답답할까! 뭘 하며 시간을 보내지? 무슨 생각을 할까?"
'당신을 생각하지요... 아가씨.'
문득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대도 물론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너무 당황해, 한 마디도 대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마 그러한 낌새를 눈치채고, 깜찍스러운 아가씨는 일부러 얄궂은 질문을 던져 내가 쩔쩔매는 꼴을 기뻐했는지도 모르지요.
"예쁜 여자 동무라도 가끔 올라오니? 정말 여자 동무가 여기 찾아오면, '황금의 양'이나 저 산봉우리로 날아다니는 에스테렐 선녀 같겠구나."
이런 말을 하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 그 귀여운 몸짓... 요정이 나타난 것처럼 얼른 왔다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가버리는 그 서운함... 정말 아가씨야말로 내게는 영락없이 에스테렐 선녀 같이만 느껴졌답니다.
"잘 있거라. 목동아."
"조심해 가세요, 아가씨."
마침내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노새 등에 싣고 떠났습니다.
별 - 2. 비 오는 어느 일요일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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