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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3세 폐하(영국 국왕. 재위 1760-1820년. 이 왕의 재위 시절에 미국이 독립했다)의 붉은 얼굴 초상이 간판으로 걸려 있는 조그마한 여인숙 앞 벤치에 이들은 언제나 모여 앉아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마을의 소문, 졸리는 이야기를 끝없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기나긴 여름날을 보내는 것이다. 지나던 나그네가 묵은 신문 한 장이라도 주고 가는 날이면 그들 간에 꽤나 똑똑한 듯한 토론이 벌어진다. 그건 어느 정치가나 돈을 내고서라도 들어 둘만한 것이었으리라.데릭 밴 브멜이라는 학교 선생이 신문 기사를 졸리운 목소리로 읽으면 모두들 장엄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이 선생으로 말하면 학문이 있는, 까다롭고 키가 작은 사나이였고 사전 속의 어떤 어려운 낱말에 부딪혀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들은 몇 달 전에 일어난 세상의 사건들을 똑똑한 체하며 토론하는 것이었다.
토론의 결론은 마을의 어른이며 여인숙 주인인 니콜라스 베다의 생각에 따르기 마련이었다. 이 노인네는 아침부터 밤까지 여인숙 앞에 자리를 잡고는 몸을 움직인다는 게 다만 볕을 피해 커다란 나무 그늘을 좇아 위치를 바꾸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이 노인의 동작을 보면서 마치 해시계처럼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체 이 노인네는 여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줄곧 파이프를 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노인네의 졸개들(훌륭한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졸개들이 있기 마련이지만)은 그의 마음을 알아 채고 그의 의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읽은 것이나 이야기한 것이 마땅치 않을 때 노인은 연거푸 파이프를 피며 못 견디겠다는듯 뻐끔뻐끔 연기를 뿜어댔다. 반면 마음에 드는 일이면 파이프의 담배 연기를 느긋하게 빨아들였다간 조그만 구름처럼 불어낸다. 때로는 파이프를 입에서 빼고 향기로운 연기로 코 둘레를 가리고는 "암, 그렇구 말구"라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립이 이들 속에 한 몫 끼어 이제 좀 쉬어야지 하고 있는 곳까지 수다스러운 마누라가 쫓아오곤 했다. 그렇게 되면 동료들은 그를 동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자리에서 쫓아내야 했다. 립의 마누라는 이 할 일 없는 모임에 돌연 뛰어들어 누구라 할 것 없이 마구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그 훌륭한 니콜라스 베다조차 이 사나운 여편네가 퍼붓는 험담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왜 우리집 주인을 꾀어 게으르게 하는 거예요?"라며 마누라는 무턱대고 닦아 세웠다.
불쌍한 립은 마침내 기운이 다 빠지고 말았다. 밭일이나 마누라의 호통을 피하기 위해 엽총을 들고 숲을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숲속에서 나무 등걸에 앉아 주머니에 들어있는 음식을 꺼내서는 강아지 울프와 함께 먹었다. 언제나 같이 마누라한테 구박을 받고 있는 이 울프가 불쌍해 견딜 수 없었다.
"불쌍한 울프, 너는 항상 우리 마누라한테 개 취급을 당하지. 그러나 걱정 말아. 내가 살아 있는 한 네 편을 드는 친구는 꼭 있을 테니 말이야."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울프는 꼬리를 흔들면서 반가운 듯 주인의 얼굴을 쳐다본다. 비록 개일지라도 뭔가 생각이 있었다면 울프 역시 마음 속으로 주인을 가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느 맑은 가을 날, 여느 때처럼 긴 산책을 나간 립은 캐츠킬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갔다. 제일 좋아하는 다람쥐 잡기를 하고 있었지만, 원체 사방이 조용했기 때문에 총 소리가 이 산에 메아리 쳐 울리고 다시 되돌아와 메아리 칠 정도였다. 그날 오후 늦게 그는 숨이 차고 아주 지쳐서 절벽 위에 푸른 풀로 덮인 언덕에 벌렁 누웠다.
나무 사이 사이로 몇 마일에 걸쳐 무성한 숲이 저만큼 아래로 보였다. 그 아래 멀리 넓은 허드슨 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보였다. 강은 자줏빛 구름을 비치고 거울과 같은 수면 위에 떠 있는 배의 돛이 여기저기 보였지만 그것도 나중에는 푸른 산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또 한 쪽으로는 나무들이 뒤섞여 황량하고 무성한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 보였다. 골짜기 한쪽은 비탈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 조각으로 메워져 있고 석양 빛도 거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잠시 립은 이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옆으로 누워 있었다. 점점 해가 저물어 산들이 길고 푸른 그늘을 골짜기에 던지기 시작했다. 마을에 닿기 전에 캄캄해질 것 같고 또 마누라한테 된 바람을 맞는다고 생각하니 립은 저절로 긴 한숨이 새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