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캐츠킬 산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북미주 동해안에 있는 대 아파라치아 산맥의 갈라지는 기점에서 산봉우리들이 강의 저 멀리 서쪽으로 솟아올라 마치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굽어보고 있는 듯 하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할 때마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때에 따라 이 산들의 꿈 같은 빛깔과 형태는 조금씩 바뀌곤 한다.

그래서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이 일대 여인들은 이 산을 일종의 기상 관측 표지처럼 여기고 있다. 맑게 개인 하늘이 저물어 오면 산은 보라빛을 띠고 아름다운 저녁 노을에 불쑥 윤곽을 드러낸다. 다른 곳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때에도 이 산들의 봉우리만은 잿빛 두건을 뒤집어 쓴 듯 안개가 자욱하여 저물어 가는 저녁 해의 마지막 빛을 반사하고 눈부신 왕관처럼 붉게 빛나곤 했다.

환상 같은 이 산의 기슭, 산의 푸른 빛이 좀더 가까워지면서 생생한 초록빛으로 옅어지는 근처에 아련하게 연기를 피워 올리는 마을이 있다. 그 판자 지붕이 수풀 속에 점점이 보이는 것을 혹시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봤던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역사가 퍽 오래된 작은 마을로 이 지방을 처음 개척할 무렵 홀랜드 이주민들이 세운 마을이다. 바로 피터 스타입샌트(바라건대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가 이 땅을 다스리던 초기의 일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곳에는 최초의 이주민들 집이 몇 채 남아있었다. 그 집들은 홀랜드에서 갖고 온 자그마한 노란 벽돌로 지어졌고, 네모진 창들이 달렸으며 집 정면엔 바람막이, 지붕에는 바람개비가 달려 있었다.

이 마을의 지금 말한 이러한 집에(실은 꽤 헐고 비바람에 부숴져 있었지만) 립 밴 윙클이라는 아주 정직하고 착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피터 스타입샌트 시절에 용감한 군인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크리스티나 요새 공격에도 참가한 밴 윙클 가문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립 밴 윙클 본인은 조상들의 군인다운 성질은 조금도 이어받지 않았다. 아주 정직하고 마음이 착했으며 이웃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마누라가 하라는대로 하면서도 언제나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순하고 얌전하니까 누구한테서나 호감을 샀지만 그것은 집안에서 엄처시하에 시달린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시끄러운 여편네에게 바가지를 긁히우는 사람일수록 집 밖에 나가서 사람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도록 굽신굽신하는 법이니까.

확실히 이런 남자들의 성품은 집안에서 마구 들볶인 결과로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간 쇠처럼 물렁물렁해지게 돼있다. 마누라의 잔소리는 꾹 참는 법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 세상 어떤 설교보다 더 효과가 있다. 때문에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도 때로운 고마운 존재로,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립 밴 윙클도 상당히 운이 좋은 사나이였을지도 모른다.

또 그는 마을의 아낙네들 사이에선 퍽 인기가 좋았다. 여자란 모두 그런 것이지만 마을의 아낙네들은 이들의 부부 싸움이 벌어질 때는 언제나 립의 편이었다. 저녁 때 여자들이 모여 그 일을 놓고 지껄일 때면 으레 '밴 윙클의 마누라가 나쁘다'고 말했다. 마을의 아이들도 립이 나타나면 좋아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과 어울려 함께 놀아주고 장난감을 만들어 주며 연 띄우기나 구슬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유령 이야기, 마녀 이야기, 인디인 이야기처럼 긴 이야기도 곧잘 들려주곤 했다.

그가 마을을 거닐 때면 언제나 많은 조무래기들이 그의 둘레를 둘러싸고 옷소매를 붙들고 늘어지거나 잔등에 기어오르거나 갖가지 장난을 하지만 무슨 짓을 당하든 그는 조금도 성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근방에서는 그에게 짖어대는 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립의 한 가지 나쁜 점은 도대체 돈이 될만한 일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게으르다거나 참을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타타르 사람의 길고 무거운 창 같은 낛시대를 쥐고 축축한 바위 위에 앉아, 물고기 한 마리도 물어주지 않아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하루종일 낛시질을 하는, 그리고 불과 몇 마리의 다람쥐나 들비둘기를 잡으려고 총을 메고 몇 시간이건 숲과 늪 사이를 돌아다니며 산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는 그런 사나이였으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웃 사람의 부탁이라면 거절하는 적이 없고, 옥수수 껍질 벗기기, 돌담 쌓기,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들일에는 발벗고 나서는 그였다. 또 마을의 아낙네들은 곧잘 그에게 심부름을 해달라고 했고, 자상하지 못한 남편들이 잘 해주지 않는 자자분한 일을 부탁하곤 했다. 말하자면 립은 자기 일 이외 남의 일이라면 즐겨 하는 것이지만 자기 가정이나 밭일이라면 왜 그런지 잘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자기 밭일은 쓸데없는 수고라고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건 온 나라 안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밭, 거기서는 아무것도 잘 되지 않고 뭣을 하더라도 잘 될 것 같지 않았다. 울타리는 언제나 무너져 소가 도망쳐 양배추 밭을 짓밟아 놓기 일쑤였다. 같은 잡초라도 딴 밭보다 일찍이 무성했다. 또 밭에서 무슨 일이라도 할라치면 꼭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려받은 토지는 그가 맡고부터 1에이커 또 1에이커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줄어들어 겨우 약간의 옥수수 밭과 감자 밭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밭은 그 근방에서 가장 가꾸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아이들도 마치 고아들처럼 누더기를 두르고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아들 립은 꼭 애비를 닮은 조무래기였지만 애비의 헌 옷뿐만 아니라 그 버릇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것 같았다. 이 소년은 아버지가 입던 낡은 반바지를 걸치고 망아지처럼 언제나 어머니 꽁무니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마치 화려한 옷차림을 한 귀부인이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치마를 쳐들 듯 언제나 한 손으로 그 바지를 한사코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립 밴 윙클은 흔히 세상에서 보는, 행복하고 어수룩하고 늘어지기 짝이 없는 성질의 사람이었다. 세상을 진득하게 생각하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고 그저 손쉽게 손에 닿는 것이나 얻어먹는, 말하자면 천 냥을 위해 일하기보다 한 푼으로 굶어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내버려 두면 아무 불평 없이 휘파람을 불면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누라는 끊임없이 그의 귀에다 바짝 대고 그가 게으름뱅이요, 실속 없고 이러다가는 집안 망칠 사람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침, 낮, 저녁 할 것 없이 마누라의 입은 쉬지 않고 남편이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다짜고짜 아우성을 치기 마련이었다. 립으로서는 이런 잔소리에 응수하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수없이 되풀이하는 바람에 아예 습관이 되어버린 그 방법,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눈을 치켜 뜰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 한 번 마누라의 일제 사격이 퍼부어진다. 할 수 없이 그는 퇴각하여 집을 뛰쳐 나간다. 마누라에게 꾸중만 듣고 있는 사나이로서는 사실 그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집안에서 립의 편은 기르는 개 울프 정도였다. 그러나 울프 또한 그의 주인처럼 항상 야단만 맞았다. 까다로운 밴 윙클 가의 부인은 립과 개를 게으름뱅이 친구로 여기고 립이 건들건들 돌아다니는 것도 이 개의 탓이라는듯 사나운 눈초리로 울프를 노려보곤 했으니까.

사실 뭐로 보나 이 울프는 훌륭한 견공 정신의 소유자로서, 숲을 뛰어다니는 다른 어떤 사냥개에 지지 않을 정도로 용감했다. 그러나 정신없이 고함치는 사나운 여자 앞에서는 아무리 용감한 사냥개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집안에 들어오면 이내 울프는 맥없이 꼬리를 땅에 늘어뜨리거나 뒷발 사이에 집어넣고 힐끗힐끗 밴 윙클 가의 부인을 곁눈질하면서 슬금슬금 기어다녔다. 그러다가 빗자루나 주걱이라도 번쩍 치켜드는 기미가 보이면 깨갱거리며 걸음아 날 살려라며 문께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립 밴 윙클과 살아가면서 마누라의 립에 대한 태도는 더욱 심해졌다.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는 성질은 나이를 먹는다고 순해지고 잔잔해지는 것이 아니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 입을 자주 놀릴수록 그 입은 점점 더 잘 드는 칼날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집에서 쫓겨나온 립은 언제나 마을의 만물박사와 게으름뱅이들이 모여드는 데로 가서 마음을 위로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