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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短調)
1.풀잎
풀벌레를 보면
풀잎이 어떻게 풀벌레가 되는지 알겠다
풀벌레의 날개짓을 보면
그가 또 어떻게 풀잎이 되는지도
알겠다
2.황금 갈대
강은 마르고
길은 끊겼도다.
황혼의 순간까지
한무더기의 흙으로까지
쫓겨온 그대 일족은
이제 빈 마음 땅에 꽂고
黃金 갈대가 되었도다.
3.거름
내 거름은
똥 만으로 되는건 아니다.
내 거름은
풀과 합수(合水)만으로 되는건 아니다.
내 거름엔
고통에 찬 신음과 피울음이 섞여있다.
내 거름엔
이 모든 걸
덮고 누르고 썩이는
긴 세월의 인내가 있다.
4.봄 출정
광활한 개활지의 지평에서 부터
문명의 대군이 밀려온다.
이 곳 섬처럼 남아있는 마을은
산벗꽃, 홍매화, 버들개지 기(旗)를 꽂고
봄 출정 준비에 한창이다.
운명을 아는 듯 쇠락한 군막(軍幕) 뜰에는
살구나무 한 그루만 그득하다.
전쟁이 밀물처럼 밀려와
이 섬이 사라지면
어쩌나 우리가 사랑했던 저 살구나무
바닷속 산호가 되려나.
5.태양에서 온 가시고기
태양에서 온
황금 가시고기가
오늘 아침 솔밭을
유유히 헤엄쳐 간다
내 볼의 온기는
가시고기가 스쳐간
흔적이다
6.살별
살별이 흐른다
성냥을 긋듯이 가까이 흐른다
가까울 수록 떨리는 마음
오, 불붙을 것 같다
7.어두운 밤
별이
물 속의 조약돌들을 만지는 듯이
맑은 밤
나무 한 그루
우주를 지켜보는
어두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