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편지를 잘 이용하려면 언제나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둔다는 걸 눈치챘어. G가 그렇게 철저하게 조사했는데도 편지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그건 확실해졌네. 그래서 나는 확신을 갖게 됐어. 즉, D 장관은 편지를 깊이 감추지 않고,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장소에 감춘 것이라고 말이야. 그래 나는 이 생각을 확인해 보기 위하여 파란색 색안경을 가지고 D 장관을 찾아갔네."
   
"그는 마침 집에 있더군. 뭔가 짜증스러운 일이 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방안을 거닐더군. 나는 요즘 아주 눈이 나빠져 안경이 필요하다면서 준비했던 푸른 색안경을 썼지. 그리고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 하면서, 방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어. D 장관 바로 곁에 있는 커다란 책상을 우선 주목해 보았지."

"책상 위에는 악기, 책이 대여섯 권, 그리고 여러 가지 편지와 서류 따위가 너절하게 놓여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지. 그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어. 그 때 문득 두꺼운 종이로 만든 값싼 편지함을 발견했어. 조그만 놋쇠 손잡이에 때묻은 푸른 리본이  드리워진, 서너 칸으로 나뉘어진 편지함이었지. 거기에 편지가 하나 들어있는데, 아주 더럽고 구겨진 데다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어. 마치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찢어버릴까 하다가 생각이 달라져 그만둔 것처럼 말야."

"그 편지에는 커다란 검은 봉인이 찍혀 있고, 'D장관에게'라고 눈에 띄는 큰 여자 글씨체로 씌어 있었지.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바로 문제의 편지임을 알아차렸네. 겉으로 보기에는 G가 일러준 편지의 모양과 딴판이었지. 같은 점은 편지의 크기뿐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게 바로 그 편지라고 단정한 것은, 그 편지가 아주 더럽다는 점이었지. D 장관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거야. 이건 보는 사람이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짐작했네."

"더욱 수상한 것은 편지가 꽂힌 장소야. 그야말로 누구 눈에나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는 것,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나는 서슴지 않고 단정할 수 있었지. 나는 D 장관을 상대로 되도록 시간을 끌며, 그가 스스로 열중할 수 있는 문제를 꺼내서 토론했지. 그러면서 편지를 좀더 자세히 관찰했네. 나는 새로운 사실을 또 발견했어. 편지봉투를 다시 이용할 때 흔히 쓰는 방법처럼, 새로 봉인을 하고 이름을 썼더군. 이것으로 나는 문제의 그 편지가 맞다고 확신했지."

"나는 D 장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일부러 금빛 담배 케이스를 테이블에 두고 왔네. 이튿날 아침, 잃어버린 담배통을 찾으러 간 것처럼 나는 다시 D 장관을 찾아가 그 전 날 하던 토론을 계속했지. 그런데 창 밖에서 총 소리가 들리고, 비명 소리와 군중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더군. D 장관은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더군. 바로 그 때 나는 편지함에 있는 편지를, 미리 준비해 간 편지와 살짝 바꾸었네."

"물론 그 편지 모양과 똑같이 만드느라고 고생을 좀 했지. 밖에서 일어난 소동은 소총을 가진 어떤 미친 녀석이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총을 쏜 사건이었어. D 장관은 미치광이거나 주정뱅이일 거라며 자리로 돌아왔어. 나는 곧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지. 하지만, 실은 그 미치광이 소동도 내가 돈을 주고 시킨 일이었지."

"그런데 왜 가짜 편지까지 만들어야 했나? 처음 갔을 때 당당히 빼앗아도 됐을 텐데..."

"D 장관은 목숨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야. 또 그 집에는 주인을 위해 싸울 하인이 적지 않아. 만약 자네 말처럼 했다면, 나는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을 거야. 영원히 행방불명으로 처리되는 또 하나의 파리 시민이 되는 걸세. 그리고 또 다른 목적도 있었지. 정치적인 측면에서, 나는 편지를 도난 당한 궁중의 귀부인 편이라네."

"편지 도난 사건 이후 일 년 이상 장관은 그 부인을 자기 마음대로 휘둘러 왔지. 그러나 이젠 정반대 상황이 됐어. 장관은 아직 편지가 없어진 것을 모르고 있어서, 편지가 자기에게 있다고 믿고 여러 가지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게 뻔해. 그렇게 되면 D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고 장관 자리에서도 쫓겨날 수밖에 없겠지."

"대신 놓고 온 편지에 뭔가 써 두지 않았나?"

"글쎄, 그냥 백지를 넣는 것은 좀 쑥스럽더군. 언젠가 D 장관이 비엔나에서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일이 있지. 그 일이 떠오르더군. 그 때 나는 웃으면서 '언젠가는 꼭 이 일을 갚아줄 겁니다.'라고 말했거든. 또 이번 일을 누가 했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백지 가운데 이렇게 몇 줄 써 넣었지."

'그토록 가혹한 음모도 디에스테스에게는 적당한 보응이라네.
아트레우스에게는 비록 걸맞지 않은 일일지언정...'

"이것은 크레비용(프랑스의 극작가)이 쓴 <아트레>라는 연극에 나오는 말이라네."

참고 : 아트레 이야기는 그리스의 전설로서 아트레우스와 디에스테스 형제의 비극을 그린 것이다. 디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를 유혹했는데, 아트레우스는 복수를 하기 위하여 디에스테스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디에스테스가 먹도록 한다는 이야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