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지난 어느날, G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잠시 세상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왜 또 뒤팽을 찾아왔는지 궁금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게, G. 그 편지는 어떻게 되었나? D 장관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단념해 버린 건가?"
"실은 뒤팽 말대로 다시 한 번 그 집을 샅샅이 뒤져 봤어. 하지만 역시 허사였네."
"그런데 그 편지에 걸린 현상금은 얼마인가?"
"아주 대단한 금액이야. 확실한 걸 여기서 말하긴 어렵지만, 이것만은 내가 분명히 밝힐 수 있어. 즉, 나에게 그 편지를 주는 사람에겐 내가 서명한 자기앞수표 5만 프랑을 당장 내줄 수 있네. 사실 그 편지는 최근 더욱 중요해져서, 현상금도 두 배로 뛰었어. 그러나 금액이 세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알 것 같네."
"그런데 G.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자네가 충분히 노력한 것 같지는 않아. 약간 방향을 바꿔서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어떻게? 무슨 방법 말인가?"
"가령 이 문제에 대해서 남의 의견도 좀 고려하는 게 어떨까? 하하하... 자네 아바네시(19세기 영국의 유명한 학자)의 얘기를 알고 있나?"
"아바네시?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있나? 그 따위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 두게."
"어쨌든 내 말을 들어보게. 옛날에 아주 인색한 부자가 있었는데, 이 부자는 어찌나 구두쇠였던지, 병도 공짜로 치료하려고 마음 먹었지. 그래서 어느날 의사와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다가 슬쩍 자기 병의 증세를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꺼냈지. '선생님이라면 그런 병에 무슨 약을 처방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은거야. 그러나 그 의사는 한 수 위였지. 그는 '어떤 약을 권하느냐고? 그야 의사의 진찰을 받으라고 권하겠네'라고 대답했어."
"나는 지금 남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네. 그리고 어떤 사례라도 할 생각이야." G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에게 당장 5만 프랑을 내놓겠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뒤팽은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당장 이 자리에서 5만 프랑을 내놓을 텐가? 이 수표에 서명만 하면 당장 그 편지를 내주겠네."
나는 깜짝 놀랐다. G는 더 놀란 모양이다.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 어났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멍하게 벌리고, 눈알이 금세 튀어나올 것처럼 서 있었다.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뒤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5만 프랑 수표를 떼어 뒤팽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뒤팽은 수표를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에 집어 넣고 나서, 편지 한 장을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G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 읽어보더니 미친 듯 문으로 달려갔다. 뒤팽이 5만 프랑의 수표를 요구했을 때부터 G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G가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제서야 뒤팽은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리의 경찰관들은 누구나 쓸모 있는 사람들이지. 아주 유능하고 끈기가 있고, 지혜롭기도 하고, 또 빈틈 없기로 유명하지. 그뿐인가? 그들은 경찰관으로서 필요한 지식도 충분히 갖추고 있네. D장관 저택을 수색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을 때,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어. 문제는 그게 어디까지나 그들 능력의 범위에 그쳤다는 점이었어."
"그 능력의 범위란 게 뭐지?"
뒤팽은 말을 계속했다. "그의 방법은, 그 방법 자체만으로는 최고였어. 그 최고의 방법을 그는 거의 완벽하게 해냈어. 그 편지가 그들의 수사 능력 범위 안에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편지를 찾아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이번 상대에게는 들어맞지 않았어. 그는 사건을 너무 복잡하게 봤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서 실수를 한 것이네. 이번 경우는 초등학생만도 못하게 어리석게 군 셈이야."
"내가 알고 있는 한 초등학교 꼬마는 짝수냐 홀수냐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아주 잘하는 걸로 주변에서 유명했지. 이 게임은 자갈 같은 것을 손에 몇 개 쥐고서, 그게 짝수인지 홀수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이지. 내가 알고 있는 그 아이는 자기 학교의 어떤 아이와 게임을 해도 반드시 이겼어.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비결이 있었네. 그 아이가 그걸 설명해 주더군."
"그 비결이란 단지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는 것에 불과했어. 아주 어리석은 아이가 '짝수냐 홀수냐?' 하고 물었을 때는, 덮어놓고 한 가지 답을 댄단 말일세. 그게 틀렸더라도 다음부터는 꼭꼭 일아 맞히게 되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원리지. 즉 처음에 저 어리석은 상대방이 이겼으니까, 두 번째도 먼저 쥐었던 수를 쥘 것이란 말일세. 이런 식으로 해서 맞혀 나간단 말야."
"그런데 상대방이 좀 똑똑한 놈일 때는 우선 이렇게 생각해 본다네. '내가 처음에 댄 수가 틀렸으니, 두 번째는 반드시 같은 수를 쥘 거라고 일단 생각하겠지. 하지만, 약은 체하는 저 놈은 이 방법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해서 결국 처음에 쥐었던 수를 다시 손에 쥘 거야.'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맞추는 거야."
"나는 그 아이에게 다시 물었지. '상대방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지?' 그랬더니 그 아이는 서슴없이 '상대방이 지혜로운가, 바보인가,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리고 상대방이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알려면 우선 자신의 표정을 최대한 상대방의 표정과 비슷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내 마음에 떠오르는지 살펴봅니다.'라고 대답하더군."
"그런데, 이쪽의 아는 힘과 상대방의 그것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의 아는 힘을 정확하게 잰다는 말이 아닌가?"
도둑맞은 편지 - 3. 되찾은 편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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