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xx년 가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날 밤이었다. 어두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파리 포브르 생제르망 듀노 거리 33번지 4층에 있는 친구 뒤팽의 서재에서 나는 뒤팽과 함께 마주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1시간 이상 침묵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가득찬 담배 연기로 두 사람 모두 기절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밤, 초저녁부터 화제가 된 사건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즉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과 '마리 로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방문이 열리면서 경시총감 G가 들어왔다. 우리는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우연히 찾아온 것을 보고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때 마침 찾아온 것이 무척 반가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인물은 아니지만, 가끔 퍽 재미있는 일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 주었고, 또 그날 밤은 몇 년 만에 그를 만나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G가 방으로 들어오자 뒤팽은 램프를 켜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G는 단지 놀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뒤팽의 의견을 들으러 온 것이었다. 뒤팽은 램프를 켜려다 말고 입을 열었다.

"그런 얘기는 어두운 곳에서 들어야 어울리지."

"자네는 또 묘한 말을 하는군."

경시총감 G는 뒤팽을 보며 말했다. 그는 자기가 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건 묘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G는 항상 묘한 일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맞았어." 뒤팽은 G에게 파이프와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사건인가? 사람이 죽은 사건 따위는 이젠 질색이야." 나는 적이 궁금해져 G에게 물었다.

"이번엔 살인 사건이 아니야. 사건 자체는 아주 단순해. 우리 경시청 단독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어쨌든 무척 색다른 사건이어서, 이런 사건이라면 뒤팽이 듣고 싶어할 것 같아서 찾아온 걸세."

"단순하면서도 색다른 사건이라고?" 뒤팽이 물었다.

"사실 사건 자체는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 입장이 무척 난처해."

"그것 참, 일이 너무 쉬워서 때문에 도리어 어렵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절대 그렇지 않아! 그런 소린 하지 말라구." 경감 G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 자네 말만 들으면 그런 것 같은데?" 뒤팽이 흥미를 느끼는 듯 이렇게 물었다.

"너무나 명백한 사건일 거란 말이지? 하하..." G는 배를 움켜 쥐며 웃었다. "뒤팽, 이제 그만 웃기게."

"그러면 어디 사건 내용을 직접 이야기해 보지." 내가 G에게 말했다.

G는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의자에 푹 몸을 파묻고 입을 열었다.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말하기 전에 하나 약속해줘야겠어. 이 일은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해. 만약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간다면 나는 경찰에서 쫓겨나게 돼."

"자, 어서 얘기나 하지." 난 이야기를 재촉했다.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면 처음부터 그만두는 게 나아. 하여튼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절대 비밀이라는 걸 명심하게. 실은 궁중의 중요한 서류가 도둑을 맞았어. 우리는 그걸 훔친 범인을 알고 있어.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있고, 그 서류가 지금 범인 손에 있다는 것도  분명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서류 자체의 성격이 그래. 또 그 서류가 범인의 손을 떠날 경우 당연히 생겨날 일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 범인이 그걸 사용할 일이 하나 있는데, 아직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

"좀더 자세하게 말해주게"

"그 서류를 가진 사람은 어떤 권력, 그것도 아주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돼."

"아직도 잘 모르겠군..."

"아직 모르겠다고? 다시 얘기하지. 그 서류의 내용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급 관리의 명예에 직접 관련되어 있어. 그래서 그 서류를 가진 사람은 아주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거야."

나는 G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입장에 선다 해도, 그걸 가진 사람을 뻔히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무리 그 서류를 이용하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범인은 바로 D 장관이네. 그 사람은 무슨 짓이나 서슴없이 해치울 수 있는 인물 아닌가? 옳은 일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는 대담한 인물이다 보니, 두려울 수밖에 없는 거야. 서류를 훔쳐낸 방법도 교묘하고 대담하기 짝이 없어. 사실 그 서류는 어떤 편지인데, 궁중의 어떤 부인이 내실에 혼자 있을 때 받은 것이지. 그 부인은 편지를 받자 곧 봉투를 열어 읽고 있었지. 그 때 마침 고급 관리 한 사람이 찾아왔어. 부인은 편지의 내용을 보이고 싶지 않아 감추려 했지만, 때가 늦어 할 수 없이 겉봉을 거꾸로 해서 책상에 놓고 손님을 맞이했지."

"이 때 마침 공교롭게도 D장관이 또 그 부인을 찾아왔지. 그는 재빠르게도 그 편지의 내용을 짐작했어. 그는 모양이 똑 같은 다른 봉투를 꺼내 읽는 척하다가 편지를 슬쩍 바꿔치기한 것일세. 그러고 나서 다시 공무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하다가 물러나왔지. 이것을 부인은 두 눈 뜨고 다 보고 있었지만, 편지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은 다른 관리 앞이라서 그만 꼼짝 못하고 편지를 잃어버린 거야."

"거 참 대단하군." 뒤팽은 나를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그 편지는 요 몇 년 사이에 지극히 위험한 정치적 목적에 조금씩 이용되고 있네. 궁중에서는 하루 속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편지를 되찾으려고 난리를 피웠지만 끝내 허탕만 치고 말았어. 그래서 결국 나에게 지시가 떨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