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반짝이는 겨울 햇볕이 아침 식사 테이블에 비쳐 들어오자 허버트는 어젯밤 일을 놓고 쓸 데 없는 걱정이라고 비웃었다. 방에는, 어젯밤과 달리 평범하고 건강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다. 마르고 지저분한 조그만 원숭이 손은 제멋대로 식기 장 위에 던져져 있어 그 영험 따위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 먹은 군인은 모두 그 모양이야." 화이트 부인은 말했다. "우리들이 그런 쓸 데 없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니.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그렇게 소원이 이루어지겠어요. 설령, 이루어진다손 쳐도 2백 파운드가 당신에게 재앙을 안기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니 화이트?"

"아니, 하늘에서 2백 파운드가 아버지 머리에 떨어질지도 모르죠." 허버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모리스 얘기로는" 아버지가 말했다. "모든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니까, 가령 어떤 일이 생겨도 그것이 그 소원의 결과일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

"어쨌든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그 돈에 손을 대지 말아 주세요." 허버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 돈이 아버지를 욕심꾸러기로 만드는 바람에, 자칫 아버지가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하니까요."

어머니는 웃으면서 현관까지 아들을 배웅했다. 아들이 큰 길에 나간 것을 보고 나서 아침 식사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의 경박하고 귀가 얇은 성질을 놀려먹으며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도 역시 그녀는 우편 배달부가 현관 문이라도 두들기면 다급하게 달려 나가기도 하고, 그 우편물이 양복점에서 온 청구서인 것을 알고선 퇴역 특무상사의 황당한 얘기를 유쾌하게 비웃었다.

"허버트가 돌아오면 또 뭔가 우스운 얘기를 할 거예요." 부부가 점심 식사를 하며 마주 앉았을 때 그녀는 말했다.

"그래도" 맥주를 직접 따라 마시면서 화이트 씨는 말했다. "그게 내 손에서 움직인 것은 분명해. 그것만은 맹세코 단언할 수 있어."

"그렇게 착각한 것 뿐이예요." 아내는 달래듯 말했다.

"아니, 확실히 움직였어." 남편은 말을 자르며 대꾸했다. "착각한 것이 아니야. 난, 다만... 왜 그래?"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집 바깥에서 한 사나이가 묘한 거동을 하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집에 들어오려고 했다가도 그러나 또 뭔가 주저하는 듯 집안을 살펴보고는 했다. 그녀는 이 사나이가 훌륭한 옷차림에 번쩍이는 고급 실크햇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2백 파운드를 떠올렸다.

세 번이나 그 사나이는 문 앞에까지 왔다가 또 뒤로 돌아섰다. 사나이는 네 번 째 다가와 문에 잠깐 손을 댄 채 서 있다가 이윽고 단호하게 문을 열고 통로로 들어왔다. 화이트 부인은 재빨리 손을 뒤로 돌려 에이프런의 끈을 풀어 의자 쿠션 밑으로 쑤셔 넣었다.

침착하지 못한 태도의 이 수상한 사나이를 그녀는 방으로 안내했다. 사나이는 슬쩍 화이트 씨를 쳐다봤다. 그녀가 방안이 어지러운 것, 남편이 뜰을 손질할 때 입는 작업복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변명했으나 그 사나이는 거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성다운 인내심을 보이며 상대방이 용건을 꺼내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방은 처음에 기묘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는 댁을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입을 연 상대방은 몸을 구부려 바지에서 조그만 솜 꼬투리를 집어 뜯었다. "저는 모오앤메긴즈 회사에서 왔습니다."

노부인은 흠칫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녀는 숨을 거칠게 쉬면서 물었다. "허버트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입니까? 무슨 사고라도?"

남편이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 여보" 다급하게 그는 말했다. "좀 앉으세요. 뭐 그렇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 아마 당신은 나쁜 기별을 하려고 오신 건 아니겠지요?"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만..." 손님은 말을 꺼냈다.

"다치기라도 했습니까?" 어머니가 물었다.

손님은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상처가 너무 심해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스럽진 않을 겁니다."

"다행이군요." 늙은 여인이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 그러다 그 위로의 말이 지닌 무서운 의미가 어렴풋이 이해되면서, 그리고 이 쪽의 시선을 피해 외면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그녀는 말을 끊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와들와들 떨면서 둔감한 남편의 손에 자신의 늙은 손을 포갰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기계에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손님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기계에 휩쓸렸다고?" 화이트 씨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 말을 따라 했다. "그래요?"

노인은 앉은 채 얼빠진 것처럼 창 밖을 주시하며 아내의 손을 두 손으로 끌어당겨 40년 전 연애 시절 그랬던 것처럼 꼭 쥐었다.

"허버트는 우리의 하나뿐인 자식입니다." 조용히 손님 쪽을 향해 노인은 말했다. "참혹합니다."

상대방은 기침을 하고 일어나서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회사에서는 당신들의 불행에 진정으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들에게 전하도록 저를 보낸 것입니다." 부부를 보지도 않고 그는 말했다. "저는 회사의 고용인일 뿐입니다. 다만 회사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늙은 여자는 얼굴이 창백해져 두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바로 그 특무상사가 처음 싸움터에 나갔을 때 지었던 그런 표정이었으리라.

"저는, 모오앤메긴즈 회사가 이 일에 대해 모든 책임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합니다." 상대방은 말을 계속했다. "회사는 아무 책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댁의 자제의 그 동안의 근무 상태를 고려, 약간의 금액을 보상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화이트 씨는 아내의 손을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무서운 눈으로 손님을 쏘아 보며 메마른 입술로 겨우 물었다. "얼마 정도나?"

"2백 파운드 입니다." 상대방은 말했다.

아내의 비명 소리도 듣지 못하고 노인은 몽롱하게 미소를 지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탁 마루 위에 쓰러져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