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뒤에 회원들은 잡담을 하며 잠시 쉬었다.

“이런 때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좋겠지만 이 박군이 단연회(斷煙會)를 만든 뒤엔 식후의 제일미두 못 먹게 됐어요. 나버텀 생각은 간절한데, 낫살이나 먹은 게 도둑담배야 피울 수가 있어야지요.”

“선전부장의 설명이 또 나온다.”

“술두 다들 끊으셨다죠?”

영신의 묻는 말에 동화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술두 일금이에요. 내 의견 같애선 막걸리 같은 곡기 있는 술은 요기두 되구, 취하지 않을 만큼 흥분두 돼서 일도 훨씬 붓건만 젊은 기운이라 입에만 대면 어디 적당하게들 먹어야지요. 신작로가에 술집이 둘이나 되구, 못된 계집들이 들어와서 젊은 사람의 풍기두 나뻐지길래 회원들은 당최 입에두 대지 않기루 했어요. 하지만, 혼인이나 환갑 같은 때는 더러 밀주들을 해 먹는 모양입디다.”

하는데, 동혁이가 뒤를 대어,

“내 아우 하나가 말을 안 듣구 술만 먹으면 심술을 부려서, 여러 회원들한테 아주 면목이 없어요.”

하고는, 제 발이 저려서 피해 가는 아우의 등뒤에다 대고 눈살을 찌푸린다. 동혁은 말을 이어,

“회원들에게 조사를 시켜서 일년의 지출액을 뽑아보니까, 백 호두 못되는 이 동리에 술값이 거진 구백 원이나 되구요, 담배 값이 오 백 원이나 되니, 참말 엄청나지 않아요? 그래서 동회(洞會)를 할 때 자세한 숫자까지 들어서 이러다간 굶어 죽는다구 한바탕 격동을 시켰더니 늙은이만 빼놓군 거진 다 술을 끊겠다구 손을 들더군요.

하더니 웬걸 작심삼일은커녕, 그날 저녁두 못 참구 주막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담배두 끊는다구 곰방대를 꺾어버린 게 수십 개나 되더니만, 차츰차츰 또들 태우길 시작하는데, 담뱃대가 없으니까 궐련을 사먹으니 안팎으로 손해지요. 우리 회원들만은 꼭 맹세를 지켜왔지만…”

“그게 참말 큰 문젯거리야요. 하지만 여자들하구 일을 하면 술 담배를 모르니까, 그거 한 가진 좋더군요.”

하는데,

“자, 그만들 일어나 봅시다.”

하고 건배가 벌떡 일어선다.

“오늘 해 전으로 씨나락꺼정 다 뿌리나요?”

영신이도 일이나 하려고 들어가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건배는,

“아아뇨, 이제 죽가래루 판판하게스리 번대를 친 뒤에 새내끼를 다시 띄워 놓구서 하루낮을 뒀다가, 수확이 많다는 은방주(銀防主)든지 요새 새루 장려하는 팔단(八段)같은 걸 뿌리지요. 그러구 나설랑은 한 치쯤 자란 뒤에 물을 빼구서 못자리를 고른 뒤에 또 일주일쯤 뒀다가 다시 물을 넣지 않겠에요. 그래야 뿌리가 붙거든요.

그 뒤엔 가끔 물꼬를 봐서 혀 빼문 걸 뽑아 버리구선, 거진 치 닷분쯤 자란 뒤엔 한번 김을 매주는데, 여기선 그걸 도사리를 잡는다구 하지요? 그런 뒤에 유산(硫酸) 암모니아 같은 속효비료(速效肥料)를 주면 무럭무럭 자랄 게 아니에요? 논바닥이 시꺼멓게 되는 걸 봐서 그때야 모를 내는데, 그 후에두 또 몇 차례 김을 매주면 한가위엔 싯누렇게 익어서 이삭이 축축 늘어진단 말이지요. 아 그러면 낫을 시퍼렇게 갈어 가지구 덤벼들어 척척 후려서 묶어 세우군…”

하고, 신이야 넋이야 배우처럼 형용까지 해 가며 주워 섬기는데, 동혁은 듣다 못해서,

“여보게 웬놈의 수다를 그렇게 늘어놓나? 저 사람은 입두 아프지 않은 게여.”

하고 핀잔을 주듯 하고는 논으로 들어선다. 건배는 들은 체 만 체 하고,

“아 그러구설랑 개상을 놓구 바심을 한 뒤엔 방아를 찧어서 외씨 같은 하얀 쌀밥을 지어 놓구 통배추 김치에…”

하고 마른 침을 꿀떡 삼키는데, 영신은 항복이나 하는 듯이 손을 들고,

“고만요 고만, 그만하면 다 알겠어요. 어쩌면 그렇게 입담이 좋으세요?”

하고 호호호 웃으며 건배의 입을 막듯하였다. 그래도 건배는,

“두구 보세요. 양석두 바라 보지 못하던 논에서, 한 마지기에 석 섬 추수는 무난히 허구 말 테니, 그만이나 해야 우리들이 땀을 흘린 티가 나거든요.”

가만히 그대로 내버려두면 얼마든지 더 지껄일 형세다.

“더군다나 농사는 이력이 있어야겠어요. 우린 아주 손방이지만…”

영신이가 대접상으로 한 마디를 해 주니까 건배는,

"아무렴 그렇구 말구요. 이력이 제일이지요.”

하면서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더니, 황새다리를 성큼성큼 떼어놓으며 논으로 들어간다.

어느덧 곁두리 때가 되었다. 열 두 회원들은 손이 맞아 거쩐거쩐 일을 해서, 오늘 일은 거의 끝이 나게 되었는데, 먼저 나와서 발을 닦던 동화가 큰 마을 편을 바라보더니,

“에에키, 건살포 나오시는군.”

하고 입을 삐쭉해 보인다. 여러 사람들의 눈은 그리로 쏠렸다.

 

'4. 가슴 속의 비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