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불 그 노래 잘 지었지요? 답답한 때 한바탕 부르구 나면 속이 후련하거든요.”
건배의 넓적한 얼굴이 싱글싱글한다.
“저 사람은 구렝이 제몸 추듯 그저 제자랑을 못해서…그만 게 무슨 자랑인가?”
하고 동혁은 핀잔을 준다. 건배는,
“그럼 다른 건 몰라두, 청석골의 애향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조기회야 있겠나?”
하고 미소를 띠운 영신의 얼굴을 슬쩍 흘겨본다.
“우린 아침마다 기도회가 있어요. 찬송가두 부르구요. 촌 여자들이 제각기 작곡을 해 가며 부르는 찬미야말루 들을 만하죠.”
하고 영신은 앞을 서서, 언덕을 내려오는데 건배가 동혁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무어라 귓속말을 하더니,
“채 선생 조반은 우리 집에 가서 잡수십시다.”
하고는 앞장을 서서 휘적휘적 내려간다. 영신은 처음에는 사양을 하다가,
“고맙습니다.”
하고 동혁이와 나란히 서서, 풀밭의 아침 이슬을 밟으며 내려온다. 형의 뒤를 따르던 동화는 다른 동지들을 어깨로 떠밀며,
“여보게 우리들은 빠질 차례일세.”
하고는 저의 집편 쪽으로 불평스러이 발꿈치를 홱 돌린다. 건배는 영신을 돌아다보며,
“우리 집 여편넨요, 보통학교 하나는 명색 졸업이라구 해서, 아주 맹무니는 아니지요. 농촌 운동이 어떤 거라구 일러 주면 말귀는 어둡지 않아서 곧잘 알아 듣거든요. 허지만 새끼를 셋이나 연거푸 쏟아 놓더니 이젠 쭈그렁 바가지가 다 됐어요.”
하고 슬그머니 여편네 칭찬을 한다.
“저 사람은 마누라 자랑을 못하면 몸살이 나는 거야.”
동혁이가 또 놀리니까, 건배는,
“흥, 자네 같은 엿장수(늙은 총각이라는 뜻)가 뭘 안다구 말 참견인가?”
하고 영신을 돌아다보면서.
“저 사람 혼인 국수를 얻어 먹으려다가, 허기가 져서 죽겠에요.”
하고 나서, 동혁에게 눈 하나를 찌긋해 보인다. 동혁은,
“에이 이 사람!”
하고 호령이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건배를 노려본다. 건배는 납작한 토담집 앞까지 와서,
“이게 명색 우리 집인데요, 나같은 김 부귀(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사촌쯤 되는 사람은 이마 받이 하기가 똑 알맞지요. 하지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낙이 다 게 있구, 게 있거든.”
하더니, 미리부터 허리를 구부리며 집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두 사람은 아침 짓는 연기가 서리어 오르는 굴뚝 곁에서 서성거리며,
“저 사람도 겉으로는 저렇게 버티지만 생활이 말씀 아녀요. 교원 노릇을 하다가 쫓겨난 뒤에, 화가 난다구 만주(灣洲)로 시베리아로 돌아댕기며 바람을 잡느라고 논마지기나 좋이 하던 걸 말끔 팔어 없앴는데 냉수를 먹구 이를 쑤시면서두 궁한 소린 당최 안 하거든요.”
“산전수전 다 겪어서 속이 탁 터진 게지요. 아무튼 미안한데요.”
하는데, 젖먹이를 들쳐업은 건배의 아내가 행주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나오더니,
“어서 들어오세요. 이 누추한 집엘 귀한 손님이 어떻게 들어오시나.”
하고 친정붙이나 되는 것처럼 영신을 반가이 맞아들인다. 고생살이에 찌들은 그의 얼굴에는 잣다란 주름살이 수없이 잡혔고 검불을 뒤집어쓰고 불을 때다가 나와서 머리는 부스스하게 일어섰는데, 남편만 못지 않게 너름새가 좋다.
“온 천만의 말씀을 다 하세요. 이렇게 불시에 와 뵙게 돼서 여간 미안하지 않은데요.”
하고 영신이가 막 싸리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별안간 건배가 미쳐난 사람처럼 작대기를 휘두르며 뛰어 나온다.
건배가 놓여 나간 닭을 잡으려고 작대기를 들고 논틀 밭틀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광경은 혼자 보기 아까왔다. 그는 닭을 잡아 가지고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오더니,
“이거, 우리 아버지 제사 때 잡으려는 씨암탉인데 우리가 청석골 가면, 송아지 한 마리는 잡으셔야 합니다. 이게 미끼니까.”
하고, 생색을 내고 나서 푸덕거리는 대로 흰 털을 풍기는 닭의 모가지를 바짝 비틀어 부엌 바닥에다 던지고는 손을 탁탁 털며 방으로 들어온다.
수란을 뜨고 닭고기를 볶고 하여서 세 사람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영신은 상일까지도 힘에 부치도록 했거니와, 돈 한푼이라도 적게 쓰려고 지나치게 악의악식을 하고 지냈다. 그래서 한창 나이에 영양이 대단히 부족되어 건강을 상한 것이었다.
영신은 밥상으로 달려드는 두 어린 것에게 닭의 다리를 하나씩 물려 주고는,
“오늘이 내 생일인가 봐요.”
하고 잠시 고향의 어머니 생각을 하였다.
“고만 이리 들어오세요. 어서요.”
하고 영신은 건배의 아내를 자꾸만 끌어들이려고 하건만 그는 동혁이가 스스러운지,
“부엌 시중을 할 사람이 있어야죠.”
하는 핑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영신은 말머리를 돌려,
“그런데 공동답은 어떻게 하시는 거야요?”
하고 묻는다. 그 말에 선전부장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이일 저일 할 것 없이 이 박군이 다 발설을 해서 실행해 오는 거지만, 저 너머 큰 마을 강도사네집 논 닷마지기를 억지루 떼를 써서 도지루 얻었에요. 그래 우리 농우회원 열 두 사람이 합력을 해서 작년버텀 짓는 게야요.”
“그럼 추수하는 건 어떻게 하나요?”
“도지 닷섬만 그 집에 치르구선 그 나머지는 우리가 농사를 잘 지어서 열 섬이 나든 닷섬이 나든 적립을 했다가, 다른 돈하구 보태서 우리의 회관을 꼭 지을 작정인데…”
“참 좋은 계획이로군요. 우리 청석골두 강습소 겸 공회당처럼 쓸 회관을 시급히 지어야 할 텐데 당최 예산이 서질 않아요. 지금 임시로 빌려 쓰는 예배당은 워낙 협착한데다가 주일날하구 삼일날 저녁은 쓰지 못하니까, 여간 불편하지가 않아서 이번에 좀 쉬었다가 가선 억지루라도 집 한 채를 얽어 볼 작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