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은 화가래 장치를 꼬느고, 건배는 키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고무래를 들고, 못자리 판을 고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줄을 띄워서 한 판씩 두 판씩 갈라 나간다. 나머지 회원들은 바소쿠리 지게에 거름을 지고 낑낑거리고 와서 펴는데 퇴비 같은 거친 거름은 누르고 재같은 몽근 거름은 손으로 내저어 골고루 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죽가래로 쪼옥 고르게 번대질을 치는데, 건배의 아내가 점심을 이고 도랑을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내리쪼이는 오월의 태양 아래에 숭늉을 담아 든 오지병이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린다.

시계도 없는데 점심때를 어떻게 그렇게 일제히 맞추는지 건배의 아낙의 뒤를 따라 회원들의 사내동생이며 누이동생들이 밥보자기를 들고, 혹은 함지박을 이고, 한 군데서 모였다 나온 것처럼 죽 열을 지어 언덕을 넘고 논둑을 건너온다.

“이를 어쩌나, 저고리가 다 젖었군요.”

영신은 건배의 아낙이 이고 나온 묵직한 함지박을 받아 내려놓는다. 보자기를 열고 보니, 아침에 먹다 남긴 것인지 미역을 넣고 끓인 닭국에는 노란 기름이 동동 떴다. 건배의 밥은 보리반섞임인데, 새로 닦은 주발에 고슬고슬하게 피어 담은 영신의 밥은 외씨같은 이밥이다.

“찬은 없지만, 들밥이 맛있겠길래 가지구 나왔어요.”

하고 밥보자기로 어깨에 흐른 국 국물을 닦는다. 영신은 건배의 아낙을 붙잡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건만 그는 어린애를 볼 사람이 없다고 되짚어 돌아갔다.

“속이 궁해 죽겠는데, 우리 밥은 웬일이여?

동화의 거센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참 두 분 점심은 왜 그저 안 가져올까요?”

영신이가 돌아다보며 물으니까, 동화는,

“가져 올 사람이 있어야죠.”

한다. 그러자,

“얘, 저기 어머니가 오신다.”

하고 동혁이가 손을 들어 멀리 축 동편 쪽을 가리킨다.

동화는 마주 가서 어머니의 머리에서 함지박을 받아들고 뛰어왔다. 동혁의 어머니는,

“고만둬라, 고만둬. 내가 가지구 가마니깐…”

하고 아들 형제의 밥 함지를 손수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하다가, 숭늉 병을 들고 작은 아들의 뒤를 따라온다. 이런 계제에 아들을 찾아온 여학생을 먼 발치로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웅덩이로 가서, 흙과 거름을 주무르던 손을 씻고, 논두렁에 가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그들의 점심은 쌀을 양념처럼 둔 보리밥이나 조가 반넘어 섞인 덩어리를 짠지쪽과 고추장만으로 먹는다. 그 중에서는 돌나물 김치에 마른 새우를 넣고, 지짐이처럼 끓인 동혁이 형제의 반찬이 상찬이다.

“여보게들 우리 합병을 하세.”


새가 똥을 깔기고 간 것처럼 얼굴에 온통 흙이 튄 것도 모르는 건배가 함지박을 들고 동혁에게로 간다.

“참 그러십시다요. 나 혼자 맛난 걸 먹으니까, 넘어가질 않는 걸요.”

하고 영신은 밥을 따라 동혁이 형제의 곁으로 간다.

동혁은 커다란 숟가락으로 보리밥을 모를 지어서 폭폭 떠 넣었다가,

“왜 일 안하구 편하게 지내는 사람이라야만 기름진 걸 먹는 그 쉬운 이치 속을 모르세요?”

하고 껄껄껄 웃는다. 영신은 저를 빗대어 놓고 하는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얼굴을 살짝 붉혔다.

 

닭국 한 그릇을 들고 서로 권하느라고 이리 밀어 놓고 저리 밀어 놓고 하니까, 아까부터 넘실거리고 있던 동화가,

“그럼 이리 내슈. 먹는 죄는 없다우.”

하고 뚝배기를 집어 들고 돌아앉아 훌훌 마시더니 건더기까지 두메 한 쪽으로 건져 먹는다. 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뭏든 비위는 좋다.”

하고 아우의 턱밑의 어기적거리는 근육을 곁눈으로 본다. 영신은,

“퍽 쾌활하시군요.”

하고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건배는 동화를 물끄러미 보다가,

“참말 우리들의 먹는 거란 말씀이 아니지요. 그래두 오늘은 일을 한다구 반찬이 좀 나은 셈인데요. 이제 보릿고개를 넘길려면 굴뚝에서 연기가 못나는 집이 건성 드뭇해요. 높은 고개는 올라갈수록 숨이 가쁜 것처럼 이 앞으로 몇 달 동안이 한창 어려운 고비니까요.”

하고 여러 사람의 밥 먹는 것을 돌아보면서,

“우리 동리 사람들이 지내는 걸 보면 기막히지요. 몇십 리 밖에 나가서 품팔이를 하면 삯메기루 한대두 고작해서 삼십 오 전이나 사십 전을 받는데 어둑어둑할 때꺼정 일을 하려면 허기가 지니까, 막걸리라두 한 사발 마셔야 견디지 않겠어요? 그러니 나머지 돈을 가지구는 수다 식구가 입에 풀칠두 하기가 어렵거든요. 나무장사들두 하는데 남의 멧갓의 솔가지 한 개비래두 꺾다가 산림 간수한테 들키는 날이면, 불려가서 경치구 벌금을 무니까, 그나마 근년엔 못해 먹어요.”

하는데, 동혁이가,

“여보게 궁상은 고만 떨게. 온, 밥이 체하겠네 그려.”

하고 숟가락을 놓더니,

“하지만, 우리 농민들의 육체는 비타민 A가 어떠니 B가 어떠니 하는 현대의 영양학설(營養學說)은 당최 적용되지 않는데, 그래두 곧잘 살거든요.”

하고 입 속으로 몰래 양치질을 하는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눈을 깜박이더니,

“그렇구 말구요, 칡뿌리를 캐거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구두 사는 수가 용하지요.”

한다. 건배는 그 말을 받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그게 다른 게 아니라, 기적이거든.”

하고 하늘을 우러러,

“헛허허”

하고 허청 웃음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