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린 왕자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도 내 질문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나는 차츰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그는 처음 내 비행기(비행기는 그리지 않겠다. 내가 그리기에는 너무 복잡한 물건이니까)를 보았을 때, 나에게 물었다.

"이 물건은 뭐야?"

"이건 물건이 아니야. 이건 날아다니는 거야. 비행기야, 내 비행기."

내가 날아다닌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아저씨는 하늘에서 떨어졌어?"

"그래." 나는 쑥스럽게 대답했다.

"야, 그거 참 신기하다..."

어린 왕자가 너무 귀엽게 웃음을 터뜨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내 불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그럼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겠네! 어느 별에서 왔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수수께끼 같은 그의 존재에 희미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그쳐 물어 보았다.

"넌 다른 별에서 왔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비행기를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저런 걸 타고 그렇게 멀리서 올 수는 없지..."

그는 오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양을 꺼내 들고 그 보물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알듯 말듯한 '다른 별들'이라는 이야기에 내가 호기심을 느꼈을지 생각해보라. 나는 좀더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넌 어디서 왔어? `네가 사는 곳'이 도대체 어디야? 양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그는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더니 대답했다.

"잘됐어. 아저씨가 준 상자는 밤에는 양의 집으로도 쓸 수 있을 거야."

"당연하지. 네가 얌전하게 있으면, 낮에 양을 묶어 둘 고삐도 하나 주지. 말뚝도 주고."

그러나 내 말에 어린 왕자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묶어 둬? 참 이상한 생각을 다 하네!"

"하지만 묶어 두지 않으면 양이 아무 데나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을 거 아냐?"

내 말에 아이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도대체 양이 가기는 어디로 간다는 거야?"

"어디든 가겠지, 앞으로 곧장 가버리면..."

그러자 어린 왕자가 엄숙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은 곳인데, 뭘!"

그리고는 좀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앞으로 곧장 가 봐야 별로 멀리 갈 수도 없어..."

그래서 나는 아주 중요한 두 번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가 태어난 별은 겨우 집 한 채 정도 크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구, 화성, 금성 이렇게 이름을 갖고 있는 큰 행성들 외에 때로는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별들이 수백 개도 더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천문학자가 이런 별을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준다. 예를 들어 `소행성 3251'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소행성은 1909년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단 한 번 망원경으로 보았을 뿐이다. 이 천문학자는 국제천문학회에서 자기가 발견한 것을 거창하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누구 하나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른들은 항상 그렇다.

 

소행성 B612를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후 터키의 독재자가 백성들이 유럽식 옷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 천문학자는 1920년에 아주 근사한 양복을 입고 다시 발표했다. 이번에는 모두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내가 소행성 B612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번호까지 밝히는 것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때?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지?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 이렇게 묻지 않는다.

"그 앤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야?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지? 그 애 아버지가 돈을 잘 버니?" 이런 것들만 묻는다. 이런 걸 알아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이 "아주 아름다운 장미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엔 제라늄, 지붕 위엔 비둘기가 있고..." 이렇게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십 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비로소 소리친다. "야, 얼마나 멋질까?"

여러분이 "어린 왕자는 무척 멋이 있었고, 밝게 웃었으며, 양을 갖고 싶어했다. 누군가 양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여러분을 어린아이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행성 B612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곧 알아듣고, 쓸 데 없는 질문을 늘어놓아 여러분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이렇다. 그들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주 너그러워야 한다.

그러나 삶을 이해하는 우리는 물론 숫자 같은 것을 우습게 여긴다. 차라리 이 이야기를 옛날 요정들 이야기처럼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즉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옛날에 자기 몸보다 조금 더 큰 별에 어린 왕자 한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친구가 갖고 싶어서..."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훨씬 더 진실하게 들렸으리라.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 책을 가볍게 읽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추억을 이야기하려니 너무 슬프다. 내 친구가 양을 데리고 떠난 지 벌써 육 년이나 흘렀다. 내가 여기에 그 모습을 그리려고 애쓰는 것은 그 애를 잊지 않기 위한 것이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나 다 친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숫자밖에는 관심이 없는 어른들처럼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그림물감 한 통과 연필 몇 자루를 사온 것은 이 때문이다. 여섯 살 때 속이 보이는 보아 뱀과 보이지 않는 보아 뱀을 그린 것 외에는 전혀 그림에 손을 대보지 못한 내가 이 나이에 다시 그림을 시작하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그와 비슷한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잘 될지는 모르겠다. 어떤 그림은 그런 대로 괜찮지만 어떤 그림은 아주 엉뚱한 것이 돼 버린다.

키를 어림잡기도 어렵다. 이 어린 왕자는 너무 크고, 저건 너무 작다. 옷 색깔도 망설여진다. 나는 어쨌든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그러나 결국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할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내 친구는 아무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자기와 같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이미 상자 속에 있는 양을 볼 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어른처럼 되어 버렸는지도 몰라. 아마 늙어 버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