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저녁, 나는 사방 어느 곳을 봐도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에 홀로 누워 잠들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난파돼 뗏목을 타고 가는 뱃사람도 나보다는 덜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니 동틀 무렵 어떤 작은 목소리가 불러 깨웠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뭐!"
"양 한 마리만 그려..."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비비고 주위를 살폈다. 이상한 낯선 어린 아이가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그의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은 내가 훗날 그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내 그림이 실제 모델만큼 멋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 나이 여섯 살 때 나는 어른들 때문에 실망해 화가라는 직업에서 멀어졌다. 그나마 속이 보이는 보아 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보아 뱀밖에는 한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홀연히 나타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 사는 곳에서 사방으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 아닌가. 그러나 내가 본 어린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다. 피곤이나 굶주림, 목마름에 시달려 녹초가 되지도 않았으며, 겁에 질려 있는 모습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어, 겨우 말했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그 애는 무슨 중대한 일인 것처럼 아주 천천히 말을 되풀이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너무 깜짝 놀라면 사람들은 아무리 이상한 일이라도 감히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죽음이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는 하여간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보다 지리와 역사와 산수와 문법을 공부했다는 생각이 나서 (좀 언짢은 기분으로), 그 아이에게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괜찮아요.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나는 그때까지 한번도 양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릴 수 있는 오직 두 개의 그림, 그 가운데 하나를 다시 그려 주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 뱀의 그림을. 그런데 그 어린이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아니, 난 보아 뱀 뱃속의 코끼리는 싫어. 보아 뱀은 너무 위험하고, 코끼리는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아. 나는 양을 갖고 싶어.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그래서 나는 이 양을 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냐! 이건 벌써 병 들었어. 다른 걸로 그려 줘."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내 친구는 조용히 웃더니, 너그럽게 말했다.
"아이 참... 이게 아니라니깐.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아난..."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것 역시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내 양은 오래 살아야 해."
나는 모터를 분해할 일이 남아 있었다. 급한 마음에 마침내 아무렇게나 쓱쓱 그어댄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그리고 그림을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 양은 거기 들어 있어."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아닌가.
"바로 이게 내가 바라던 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좀 많아야겠지?"
"왜?"
"내가 사는 곳은 너무 작아서..."
"아마 그 정도면 될 거야. 내가 그려 준 양도 아주 조그맣거든."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작지 않은데... 이 봐! 잠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