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조각상은 대답했어요.

"내가 살아있을 때,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나는 도대체 눈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단다. 내가 사는 궁전의 이름조차 상수시(걱정이 없음)였으니까 말이야. 그 궁전에는 도대체 슬픈 일 따위는 전혀 들어올 수가 없었지.

나는 그때 낮에는 꽃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밤에는 커다란 방에서 무도회를 열고 제일 앞 줄에서 춤을 추었지. 정원 둘레에 높은 담이 둘러 세워져 있어서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단다. 내 주위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무척 아름다웠어.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지. 만약 '즐거움'이 행복이라면, 난 분명 행복했어.

어쨌든 난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행복한 채로 죽었단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날 이렇게 높은 곳에 세워놓았지 뭐야. 그래서 난 여기서 이 도시의 온갖 보기 싫은 것들, 슬픈 일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됐지.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졌단다. 하지만 난 내가 본 것들 때문에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그리고 보니, 이 양반은 완전 순금은 아닌 모양이군." 제비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예의발랐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큰 소리로 똑바로 대놓고 하지는 않았어요.

"저기 저 멀리 말이야..." 왕자의 조각상은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여기서 훨씬 멀리 저 쪽, 좁은 골목길에 가난한 집이 있어. 창문이 열려 있어서 그 집 식탁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내게는 다 보인단다. 얼굴은 비쩍 여위었고, 온 몸이 지쳐 있어. 손은 온통 바늘에 찔린 자국 때문에 벌겋게 거칠어졌어. 그 집은 바느질을 하는 집이란 말이야.

그 여자는 지금 두껍고 윤이 비단 옷감 저고리에 정열화라는 열대 지방의 꽃 무늬를 수놓고 있어. 이 다음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황후의 제일 아름다운 시녀가 입고 나올 옷이야. 하지만 이 집 방 구석 침대에는 조그만 사내아이가 앓아 누워 있어. 열이 심해서 오렌지를 먹고 싶어하지.

하지만 엄마는 그 아이에게 맹물밖에는 먹여줄 수가 없어. 그래서 아이는 지금 울고 있단다. 제비야, 제비야, 꼬마 제비야. 내 칼자루의 루비를 뽑아서 저 여자에게 갖다줄 수 없겠니? 내 발은 이 받침대에 붙어 있어서 난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단다."

제비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지금 제 친구들이 이집트에서 절 기다리고 있어요. 제 친구들은 지금쯤 나일강 위를 날으면서 커다란 연꽃과 얘기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임금의 무덤으로 잠을 자러 가는 거지요. 그 임금은 화려하게 색칠한 관 속에 편안하게 누워 있어요. 임금의 몸에는 노란 삼베를 두르고, 향료를 발랐지요. 목에는 연록색 구슬 목걸이를 감고, 손은 마치 시든 나무 잎사귀 같지요."

"제비야, 제비야, 꼬마 제비야." 왕자는 말했습니다.

"단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내 옆에서 잠을 자면서, 내 심부름을 해줄 수 없겠니? 저 어린애는 이제 목이 타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이야. 엄마가 애타하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구나."

제비는 대답했습니다.

"전 별로 어린애들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지난번 여름에는요, 제가 냇물가에 앉아 있었는데요... 장난꾸러기 아이들 두 녀석이 오더군요. 물방앗간 아들인데, 이 녀석이 언제나 제게 돌을 던지는 거예요. 뭐 그 돌에 맞을 리야 없지요. 우선 우리 제비들이 그렇게 어설프게 날 리도 없거니와, 게다가 우리 집안은 대대로 몸이 날쌘 것으로 유명하걸랑요.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은 사실인 걸요. 돌 따위를 던지다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너무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왕자를 보고 제비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여긴 너무 추워서 곤란해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하룻밤만 더 있기로 해 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심부름을 하겠어요."

"고맙다, 꼬마 제비야." 왕자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비는 왕자의 칼자루에서 커다란 루비를 쑥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리에 물고 길거리의 지붕들 위를 날아갔습니다.

제비는 교회의 탑에 스칠 듯 가볍게 날았습니다. 그 탑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천사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지요. 궁전을 스쳐 지날 때에는 안에서 무도회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애인과 함께 테라스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 애인은 아가씨에게 이렇게 속삭였어요.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밤입니까? 아니,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힘입니까?"

"그런데 대무도회 때까지는 제 새 의상이 다 완성되어야 할 텐데..." 아가씨는 애인의 말에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전, 제 의상에 정열화 무늬를 수놓아 달라고 얘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바느질하는 집들은 어쩜 그리도 하나같이 게으름을 피우는지 모르겠어요!"

개천 위를 날아 지나갈 때에는 배의 돛대 위에 매달아 놓은 등불 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태인 거리도 날아 지났습니다. 거기선 유태인들이 물건을 거래하고, 구리 거울로 황금의 무게를 다는 모습도 보였어요.

드디어 그 가난한 집에 다 와서 제비는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어린아이는 열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피곤한 탓인지 벌써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어요. 제비는 창문 안으로 휙 날아들어가 식탁 위, 엄마의 골무 옆에다 루비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조용히 침대 주위를 날으면서 날개로 어린애의 이마에 시원한 바람을 부쳐 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