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왕자'의 조각상이 높고 둥근 기둥 위에 서서 도시 위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온몸이 종잇장처럼 얇게 편 순금으로 감겨 있고, 두 눈은 반짝거리는 푸른 구슬이었습니다. 칼자루에는 루비가 빛나고 있었지요.
이 조각상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감탄했습니다.
"마치 바람개비 새처럼 우아하구나." 시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은 예술을 아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 싶어서 이런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용성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것도 두려웠기 때문에 전혀 격에도 맞지 않는 걱정을 하면서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지요.
"물론 바람개비 새만큼이라도 실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어린아이가 떼를 쓰고 짜증을 내면서 울어대면 현명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가야, 왜 저 왕자님을 본받지 못하니? 저 왕자님은 설혹 꿈속에서라도 젖을 달라고 울지는 않는단다."
불행 가운데서 온갖 희망을 다 잃어버린 어떤 사나이는 이 훌륭한 조각상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진짜 행복한 것도 있는 모양이야...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면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지."
고아원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조각상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반짝거리는 길고 빨간 옷을 입고 하얗고 깨끗한 턱받이를 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나오는 길이지요.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야, 정말 천사님 같아!"
"너희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알지?" 배운 것이 많은 교사가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아직 천사를 본 적이 없을 텐데 말이야."
"네, 하지만 그래도 꿈속에서는 천사님을 보는 걸요." 아이들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학식이 풍부한 교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교사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조그마한 제비 한 마리가 그 도시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친구 제비들은 이미 육 주일 전에 모두 따뜻한 이집트 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주위에 없었습니다. 이 제비는 그러니까 홀로 남겨진 것이지요. 다름이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한 포기 갈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어요.
제비는 이른 봄날에, 커다란 노랑나비를 쫓아 냇가를 날고 있을 때 처음으로 그 갈대 아가씨를 보고 그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답니다. 그 날씬한 허리의 모습이라니... 제비는 그 옆으로 날아가 땅에 내려앉아 갈대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도 좋을까요?"
이 제비는 마음속 생각을 당장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을 건넨 것이지요. 그러자 갈대 아가씨는 가만히 머리를 숙이며 제비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비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 갈대 아가씨 주위를 휘감으려 날았답니다. 날개로 냇물 수면을 어루만지면서, 은빛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면서 말이지요. 이것이 그 사랑의 최초의 속삭임이었고, 그 뒤로는 제비는 여름 내내 갈대 아가씨와 함께 놀았어요.
"거 참,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군 그래. 저 아가씨는 가난한데다, 일가 친척들이 너무 많아서 귀찮을 텐데..." 다른 제비들은 이 사랑을 보고 이렇게 지저귀곤 했습니다. 정말 그 냇가에는 갈대가 무척 무성했어요. 그리고 어느새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제비들은 모두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지요.
친구들이 모두 가 버리자 제비도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동안 사랑하던 갈대에게도 어쩐지 싫증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 아가씨는 도대체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단 말이야. 게다가 좀 곁눈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바람이란 녀석과 함께 놀고 있으니 말이야!"
사실 제비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갈대 아가씨는 그 아름다운 몸을 형언할 수 없이 부드럽게 굽히곤 했거든요. 그리고 제비는 또 말했지요.
"저 아가씨는 아무래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라는 팔자인 모양이야. 하지만 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나이 아닌가. 그러니 내 아내가 될 사람도 아무래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면 곤란하단 말이야."
"당신은 나와 함께 먼 곳으로 갈 생각은 없으십니까?" 마침내 제비는 마음을 먹고 갈대 아가씨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마치, 나에게는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답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그 동안 당신은 날 희롱해왔군요. 전 이제 피라밋이 있는 나라로 갈 겁니다. 그럼 잘 있어요!" 제비는 이렇게 소리치고 그 자리를 떠나 날아갔습니다.
제비는 하루 종일 하늘을 날아서 밤이 될 무렵 이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어디에 머무르면 좋을까? 도시에는 여러 가지 준비가 잘 갖춰져 있을 텐데."
그 때 높고 둥근 기둥 위에 서 있는 조각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음, 그래. 여기 머무는 게 좋겠군." 제비는 소리쳤습니다. "공기도 좋고, 아주 기막히게 좋은 장소로군 그래!" 제비는 그렇게 행복한 왕자의 두 발 사이에 날아와 앉은 것입니다.
"오늘 밤은 황금으로 꾸민 침실에서 자게 됐지 뭐야!" 제비는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제비가 날개 그늘에 막 머리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그 순간, 커다란 물방울이 제비에게 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거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 제비는 소리쳤습니다. "하늘엔 구름 한 조각 없고, 별이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다니... 유럽도 이렇게 북쪽 지방에서는 이상한 날씨가 가끔 생기는 모양이로군. 하긴, 그 갈대 아가씨도 비를 무척 좋아했지. 그거야 그 아가씨 자유니까."
또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렇게 비도 피할 수 없다면 이따위 조각상은 도대체 뭘 하려고 만든 거야? 이거, 어디 괜찮은 굴뚝이라도 찾아봐야겠구먼." 제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른 곳을 찾아 날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비가 날개를 미처 펴기도 전에 물이 또 한 방울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제비는 위쪽을 쳐다보았어요... 그런데 아아, 그 때 제비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까요?
행복한 왕자의 두 눈이 눈물로 가득 차서 그 눈물이 황금의 두 볼로 흘러내려 떨어졌던 것입니다. 달빛을 받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자 제비는 어쩐지 왕자가 무척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비는 물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왕자란다."
"그런데 왜 울고 계시죠? 덕분에 제가 흠뻑 젖었잖아요!" 제비는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