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위대한 발명입니까? 생각한 대로 곧 꿈꿀 수 있고, 그 장면을 곧 사진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잠을 깬 것은, 아니 꿈을 깬 것은 아침이었나 봅니다. 통 밖의 빛이 방 안에 비치지 않아 때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겐 시계도 없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사진사가 있는 방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을 밀었으나 문은 밖으로 잠겨져 있었습니다. 내가 손잡이를 돌리자 내 앞에 한 장의 종이쪽이 날아 떨어졌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릅니다. 그냥 거기서 2시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 주인 아룀.'
옳아. 아직 두 시간 더 있어야 된단다.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났는지도 몰라. 날이 아직 밝지 않았을까? 그동안 나는 어제저녁 순이와 고향 뒷산에서 꽃을 따며 놀던 꿈을 다시 되풀이해 보자.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꿈이었나! 사진은 어느 장면을 찍었을까? 나와 순이가 나란히 살구나무 그늘에 앉은 장면일까? 그렇지 않으면 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일까? 그렇지도 않으면 순이가 내게 할미꽃을 꺾어주는 장면일까?
내가 사진관 주인에게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사진 한 장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이와 나의 나이 차이였습니다. 실제 나이로는 순이와 나는 동갑입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여덟 해나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까? 순이의 나이는 열두 살 그냥 그대로인데, 나는 지금의 나이 스무 살이니까요. 그동안 나만 여덟 해 나이를 더 먹은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사실 순이도 북한 땅 어디에 그냥 살아 있다면 꼭 내 나이와 같을 게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그 뒤의 순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순이는 언제나 열두 살 그대로입니다.
스무 살 - 스무 살이면, 제법 처녀가 되었을 순이.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았을까? 제법 얼굴에 분을 발랐을지도 몰라. 지금은 노랑 저고리와 하늘빛 치마가 어울리지 않을 거야. 모처럼 찍어 준 꿈 사진도 그런 걸 생각하니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이게 제일 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사진관 주인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드리고 나는 그곳을 나왔습니다. 벌써, 아침 해가 하늘 높이 올랐습니다. 하루를 꼬박 굶었으나 나는 배고픈 생각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내가 처음 앉았던 뒷동산에 와 앉아 다리를 쉬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사진을 꺼냈을 때,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넣었던 곳에서 꺼냈는데 내가 사진관에서 받아 둔 순이와 같이 찍은 사진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동화집 갈피 속에 끼여 있던 노란 민들레꽃 카드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