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이쪽에 이렇게 썼습니다.
'살구꽃 활짝 핀 내 고향 뒷산 - 따스한 봄볕을 쬐며, 잔디 위에서 같이 놀던 순이,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 할미꽃을 꺾어 들고 봄노래 부르던 순이 - 오늘밤 정말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아직 해가 지기엔 시간이 좀 남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쓴 종이를 가슴에 품고 방바닥에 눕자 밤은 그만 캄캄해졌습니다. 참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샘처럼 솟아오르는 지난날의 추억들. 정말 내가 민들레와 할미꽃을 좋아하는 까닭은 순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순이의 그 노랑 저고리가 어쩌면 그때 내 마음에 그렇게도 예뻐 보였을까요?
"순아! 오늘은 정말 네게 꼭 할 말이 있어. 감추려고 했지만, 역시 알려 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만 순아, 울어서는 안 돼! 응?"
"무슨 얘기냐? 어서 말해 줘!"
"정말 안 울 테냐?"
"울긴 왜 우니? 못나게......."
"그래! '픽' 하면 우는 건 바보야. 울지 말아, 응?"
"그래! 어서 말해!"
"저어..."
"참, 네가 바보구나. 왜 제꺽 말을 못 하니? 아이 갑갑해! 어서 말해 봐!"
"저어, 말이지, 이건 비밀이야.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랬어. 아무에게도 미리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지만, 난 네겐 숨길 수 없어. 우리는 며칠 있으면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이사를 간단다. 여기서 살 수가 있어야지. 지난해 8월 해방이 되었다고 미칠듯 즐거워했지만, 우리는 토지와 집까지 다 빼앗기지 않았어? 지주라고. 그리고 우리는 딴 데로 옮겨가 살라고 그러지 않아. 빈손이라도 좋아. 우리는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을 찾아 가야 해..."
"얘, 나보고 울지 말라더니, 제가 먼저 울지 않아?"
소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는 원산이나, 함흥에 같이 가자던 순이. 너와 내가 갈린 것은 소학교 5학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