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한 봄볕은 나를 자꾸 밖으로 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내일은 일요일이니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꾹 틀어박혀 책이라도 읽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정작 조반을 먹고 나니 오늘은 유달리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나는 스케치북과 그림물감을 가지고 뒷산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굉장히 그림을 잘 그리거나 그림에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빈손으로 가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들고 앉아 그 따사한 봄볕에 읽는 것은 한층 더 싱거울 것 같았습니다.

 

봄을 그리려고 산에 오른 이 서투른 화가는, 좀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내 눈이 맞은편 산허리에 갔을 때, 거기에는 활짝 핀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살구꽃이 피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할 텐데 저렇게 연분홍꽃이 전등이라도 켠 듯이 환히 피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꽃나무 있는 데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골짜기를 내려 다시 산으로 기어올라 꽃나무 아래까지 갔습니다. 단숨에 달린 나는 숨이 차서 그만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돌리며 내가 꽃나무를 자세히 바라보려니 나무 밑줄기에 이런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으로 가는 길. 동쪽으로 5리.'

 

나는 그 연분홍 꽃나무에 핀 꽃 같은 건 생각할 사이도 없이 곧 이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찾아 떠났습니다. 동쪽으로 사뭇 좁다란 산길을 걸어가노라니까 정말 조그만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집 문 앞에 다다랐을 때는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엔 또 이런 것이 쓰여 있었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은 여기서 남쪽으로 5리 되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나는 남쪽을 향해 또 걸었습니다. 지금 온 만큼 가니까 정말 또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나는 참 잘 왔다고 좋아라 집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까보다 좀 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와 꼭 같은 글이 문 앞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니 꼭 한 자만 틀립니다. 그것은 남쪽 5리가 아니라 서쪽으로 5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조금 주저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만 더 속아 보자 하고 또 서쪽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나는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찾은 것입니다.

 

이런 산중에 어울리지 않으리만큼 커다랗고 훌륭한 양옥집이었습니다. 벽과 창문만이 아니라 지붕까지 새하얀 집 - 다만 정문에 커다랗게 써 붙인, '꿈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일곱 글자만이 파아란 하늘빛이었습니다. 나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시오? 들어오시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늘빛 파란 가운을 입은 점잖은 신사 한 분이 하늘빛 파아란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놓으며 회전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오셨지요?"

 

"저어... 여기가 꿈을 찍어 주는 사진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찍지요?"

 

하고 나는 꿈을 찍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내게 조그맣고 얄팍한 책 한 권을 주며, 저쪽 7호실에 가 앉아 소리 내지 말고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7호실을 찾아갔습니다. 1호실 다음엔 3호실, 그다음이 5호실, 바로 그다음이 7호실입니다. 어쩌면 사진관이 꼭 여관집과도 같습니까. 나는 그제야 이 집의 방 번호는 모두 홀수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벽과 천장까지 모두 새하얀 방... 들어가는 문밖엔 들창 하나도 없는 방입니다. 나는 그 방에 앉아 지금 받은 얄팍한 책을 펴 들었습니다. 불도 안 켠 방이 왜 이리 화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빛이라곤 들어올 곳이 조금도 없습니다. 9포 활자만큼 작은 하늘빛 글씨가 어쩌면 그리도 잘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