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찍으시려는 분들에게!
이렇게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에게 먼저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서 이곳까지 찾아온 데는 두 가지 뜻이 있을 줄 압니다. 그 하나는 신기한 것을 즐기는 마음이요, 또 하나는 무척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당신과 있으니 말이지만 오늘 저 세상 사람들은 오늘의 문명을 자랑해서 '텔레비전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이 일에 비하면, 그까짓 게 다 무엇입니까?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 더욱이 6.25를 치르고 난 우리들에겐 많은 잃은 것 대신에 가진 것은, 안타깝게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가장 신기한 것의 하나는 과거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 묵은 앨범을 꺼내서 사진 위에 머물러 있는 지난날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사진이란 다만 추억의 그 어느 한순간이요, 그 전부는 아닙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란 흔히 사진첩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불완전한 것이나마 전쟁으로 인하여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행히 우리에겐 꿈이란 게 있습니다. 이미 저세상에 가 버리고 없는 그리운 얼굴들도 꿈에서는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꿈길엔 삼팔선이 없습니다. 정말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꿈이란 사람의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 꿈에 보려고 애를 써도 뜻대로 잘 안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잠깐 꿈을 꾸게 되나 해도 그 꿈이 곧 깨면 한층 더 안타까운 것뿐입니다. 여기에 생각을 둔 나는 이번 꿈을 찍는 사진기를 하나 발명했습니다. 이는 결코 거리의 사진사들처럼 영업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닙니다. 내게는 안타깝게 그리운 아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 아기의 사진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이 사진기를 만들게 된 게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아,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럼, 인제 꿈을 찍는 방법을 설명해 드려야죠. 무엇보다 그게 더 궁금하실 테니까요.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방에서부터 나오는 한 줄기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바로 사진기가 놓여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꿈을 꾸기만 하면 그 꿈은 곧 사진기 렌즈에 비치게 됩니다. 꿈이 비치기만 하면 사진기는 저절로 '쩔꺼덕' 하고 사진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필름에 사진이 찍히면 곧 현상하여 손님의 요구대로 크게 또 작게 인화지(사진 종이)에 옮깁니다. 그런데 문제 되는 것은 꿈을 꾸는 일입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꿈을 꿀 수 있으며, 또 꿈을 꾼다 해도 그게 정말 자기가 사진에 옮기고 싶은 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로 내가 제일 오랫동안 연구에 고심을 한 것이 이것입니다. 꿈을 찍는 것쯤은 이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오래 가졌었고,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마음대로 꿈꿀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실로 이것은 세계적인 아니 세기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럼 당신도 곧 그리운 이를 만나는 꿈을 꾸십시오. 그리운 이의 꿈을 사진 찍어 드릴 테니. 그 방법 - 당신이 있는 방 한구석에 종이 한 장과 만년필 한 개가 놓여 있습니다. 당신은 그 종이에 그 파란 잉크로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와의 지난날의 추억의 한 토막을 써서 그걸 가슴속에 넣고 오늘 밤 편히 주무십시오. 내일 날이 밝으면 당신은 지난밤에 본 꿈과 꼭 같은 사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 겁니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이곳은 산중이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못합니다. 미안하지만 하룻밤 그냥 주무셔 주십시오.
꿈을 찍는 사진관 아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