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사는 형편이 어떤지 물었다. 그는 그저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말이 아닙니다. 여섯째 놈까지 나서서 집안 일을 거드는데도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세상 공기는 온통 뒤숭숭하고... 무슨 이유도 없이 여기저기서 돈만 마구 거둬가고 ... 그러니 버는 게 형편이 없죠. 게다가 소출은 점점 나빠져요. 농사를 지어서 짊어지고 가서 팔려고 하면 세금만 몇 번씩 내야 합니다. 그러니 본전만 까먹고 말죠. 그렇다고 팔지 않고 두자니 그냥 썩혀버릴 형편이구요..."

그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숱한 주름살이 새겨져 있는 룬투의 얼굴은 마치 석상처럼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괴로움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려 해도 표현할 방법이 없는 듯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담뱃대를 집어들고 묵묵히 빨았다.

어머니가 물어보자 그는 집안 일이 바빠서 내일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점심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어머니는 부엌에 가서 손수 밥을 볶아먹도록 일렀다.

그가 나간 뒤, 어머니와 나는 그가 사는 형편을 이야기하며 탄식했다. 자식들은 많고, 농사는 해마다 흉작이고 세금은 가혹하다. 군인, 강도떼, 벼슬아치들, 지방 토호 그런 따위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괴롭혀 마치 장승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은 모두 그에게 주어서 그가 갖고 싶은 걸 직접 고르게 하자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후에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골랐다. 기다란 탁자 두 개, 의자 네 개, 향로와 촛대 한 벌씩 그리고 짐을 짊어질 대 쓰는 가로대 한 개였다 그는 또 재(우리 고향에서는 밥을 지을 때 짚을 땐다. 그리고 그 재는 모래밭에 뿌리는 비료로 쓴다)를 전부 달라고 했다. 우리가 떠날 때에 배로 실어 가겠다는 얘기였다.

밤에 룬투와 나는 또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일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쉐이성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아흐레가 지났다. 바로 우리가 떠나야 할 날이다. 룬투는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와 있었다. 그러나 쉐이성은 데려오지 않고 그 대신 다섯 살짜리 계집애를 데리고 와서 배를 지키도록 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서 룬투와 나는 다시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다. 집으로 직접 찾아온 손님도 많았고, 전송하러 온 사람, 이것저것 물건을 가지러 온 사람, 전송도 할 겸 물건도 가져갈 겸 온 사람 등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붐볐다. 저녁 때 우리가 배에 오를 무렵에는 이 오래된 집에 있던 낡고 오래된, 크고 작은 온갖 잡동사니들은 마치 빗자루로 쓸어버린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양쪽 강기슭에 줄지어 서 있는 푸른 산들은 황혼빛에 검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그 산들은 하나씩 하나씩 배 뒤쪽으로 사라져갔다.

훙얼은 나와 함께 선창에 몸을 의지하고 바깥의 아스라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아이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큰아버지! 우리 이제 언제 돌아와요?"

"돌아와? 너는 어째서 가기도 전에 돌아올 생각부터 하는 거냐?"

"하지만, 쉐이성이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나와 약속했는걸..."

훙얼은 크고 새까만 눈을 똑바로 뜨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다시 룬투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그 '두부집 서시'라는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는 우리 집이 이삿짐을 챙기면서부터 매일같이 꼭 찾아왔다고 한다. 엊그제 그 여자는 잿더미 속에서 접시와 그릇을 열 몇 개씩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룬투가 재를 나를 때 함께 가져가려고 숨겨둔 것이라고 따따부따 떠들어댔다고 한다.

양씨네 아주머니는 이 발견으로 마치 큰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자랑하며 '구기살(狗氣殺, 우리 고장에서 닭을 기를 때 쓰는 도구이다. 나무판 위에 창살을 치고 그 속에 모이를 넣어두면 닭은 목을 길게 뽑아서 쪼아먹을 수 있지만 개는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바라보며 속을 태울 뿐이다)'을 집어들고 쏜살같이 달아났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전족을 한 그 여자가, 그렇게 뒤축을 높인 신발을 신고 어쩌면 그렇게 빨리 뛰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옛 고향집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만큼 고향의 산천도 점점 멀어지며 작아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미련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단지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이 나의 주위를 둘러싸여 나를 외톨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뭔가 헤아리기 힘들게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수박밭에서 은 목걸이를 한 걸고 있는 작은 영웅의 형상은 무척 뚜렷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조차 갑자기 흐릿해졌다. 이것 역시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어머니와 훙얼은 모두 잠이 들었다.

나도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배 밑바닥에 부딛히는 잔잔한 물소리를 들으며, 난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룬투와 나는 이미 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하나로 이어져 있다. 훙얼이 바로 쉐이성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난 그 애들이 또다시 나와 같은 단절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마음을 잇기 위해 모두 나처럼 괴롭게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또 그 아이들이 모두 룬투처럼 괴롭고 힘들어서 마비된 것 같은 생활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워하면서 생활을 포기하고 방탕하는 것도 역시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마땅히 새로운 생활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아직 경험해본 일이 없는 그런 생활 말이다!

나는 희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를 속으로 우습게 여겼다.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희망 역시 내가 직접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상이 아닌가?

단지 그의 희망이 보다 현실에 가깝고 절박한 것인 반면, 나의 희망은 더 막연하고 아득하게 멀다는 차이일 뿐이다.

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나의 눈앞에 파란 바닷가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짙은 쪽빛 하늘엔 동그란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