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나는 룬투에게 새를 잡아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룬투는 말했다.

"그건 안돼. 먼저 큰 눈이 와야 해. 모래사장에 눈이 오면, 눈을 쓸어 빈터를 만들고, 거기에 짤막한 막대기로 대나무 소쿠리를 버티어 놓는 거야. 그 다음에 나락 쪼가리를 거기 뿌려 놓았다가 새가 와서 쪼아 먹고 있으면 내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 줄을 잡아당기지. 그러면 대나무 소쿠리가 넘어지고, 새는 소쿠리 안에 갇혀 도망칠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무슨 새든지 다 잡을 수 있어. 참새, 꿩, 산비둘기, 파랑새..."

그래서 나는 눈이 내리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룬투는 또 내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추워. 나중에 여름이 되거든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는 낮엔 바다에 가서 조개껍데기를 줍는다? 붉은 것, 푸른 것, 뭣이든 다 있어. 귀신을 쫓는 조개도 있고, 부처님 손 같은 조개도 있어. 그리고 밤엔 아버지하고 수박을 지키러 간단다. 너도 함께 가자."

"네가 도둑도 지킨단 말이야?"

"아니야. 우리 동네에선 길 가던 사람이 목이 말라서 수박 한 개쯤 따먹는 거야 도둑질도 아니지. 우리가 지켜는 것은 두더지, 고슴도치 그리고 오소리야. 달밤에 어디선가 사각사각 소리가 나면 그건 오소리란 놈이 수박을 깨물어먹는 거야. 그러면 쇠 작살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때 나는 이 오소리란 놈이 어떤 짐승인지 전혀 몰랐다. 몰론 지금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저 어쩐지 조그만 개처럼 생긴, 영악스러운 동물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놈이 물거나 그러지 않아?"

"쇠 작살이 있잖아. 가까이 가서 오소리를 발견하면 당장 찔러버려야 해. 그 자식은 워낙 약아빠져서 오히려 사람 쪽으로 달려들어선 가랑이 밑으로 빠져 달아나 버리거든. 털이 마치 기름칠한 것처럼 매끄러우니까..."

나는 그때까지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일이 많은 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바닷가에 형형색색의 갖가지 조개껍데기가 있고, 또 수박에 그렇게 위험한 내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수박이란 그저 과일가게에서 파는 것으로만 알았을 뿐이었다.

"우리 모래사장엔 말이야, 밀물이 들어오면 날치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른단다. 그 녀석들은 모두 청개구리처럼 두 다리가 달려 있어서..."

아아! 룬투의 가슴 속엔 그때까지 내 주변의 친구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신기한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간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룬투가 바닷가에서 그렇게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있을 때, 그 애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모두 나처럼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마당에서 네모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월은 다 지나가 버리고 룬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만 어쩔 줄 모르고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룬투도 부엌에 숨어서 울면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룬투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 애는 나중에 자기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내게 조개껍데기 한 꾸러미와 아름다운 새의 깃털 몇 개를 보내주었다. 나도 한 두 차례 뭔가 그 애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뒤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제 어머니께서 그 애의 얘기를 꺼내시자 나는 어렸을 적의 그 기억이 갑자기 번갯불처럼 되살아나서 마치 나의 아름다운 고향을 다시 찾은 것만 같았다. 나는 대뜸 어머니께 물었다.

"그것 참 반갑군요! 그래, 룬투는 어떻게 지내요?"

"그 애 말이냐? 걔 살아가는 것도 무척 힘든 모양이더라."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밖을 내다보시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이 또 왔구나. 말로는 목기를 사러왔다고 그러면서 닥치는대로 아무 물건이나 손에 쥐고 가 버리니 내가 잠깐 나가봐야겠다."

어머니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셨다. 문밖에서 여자들 몇 사람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카 훙얼을 불러다가 내 앞에 앉히고 글씨를 쓸 줄 아는지, 다른 고장에 가보고 싶은지 등을 물어보았다.

"우리, 기차를 타고 가요?"

"그래, 우린 기차를 타고 갈 거다."

"배는요?"

"먼저 배를 타고, 그런 다음에..."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컸네! 수염도 길게 기르고!"

갑자기 찌르는 듯 날카로운, 무척 괴퍅한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입술이 얇은 쉰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치마도 두르지 않은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제도기구 가운데 하나인 콤파스가 두 발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날 모르겠어? 이전에 내가 안아준 일도 있는데!"

나는 더욱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옆에서 말씀하셨다.

"저 앤 너무 오랫동안 객지에 나가 있어서 아마 까맣게 잊었을 거야."

어머니는 그러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아마 너도 기억이 날 거야. 저 양반이 우리 집 길 건너편에 사시던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시단다... 왜 그 두부가게를 하던..."

아, 그렇지. 이제 생각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건너편의 두부가게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였다. 사람들은 모두 이 여자를 '두부가게 서시(西施)'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때는 하얗게 분칠을 했었고, 지금처럼 광대뼈도 튀어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입술도 이렇게 얇지는 않았다. 또 그 때는 하루 종일 가게에만 앉아 있었던 탓인지 나는 이런 콤파스 같은 자세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 마을 사람들은 이 여자 덕분에 두부가게의 장사가 잘 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나는 나이가 어린 탓이었는지 그런 말에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고 그 동안 그만 고스란히 잊어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