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참을 먹을 때 그녀는 사샤의 부모와 얘기를 나눴다. 중학교의 학과목들은 어린애들이 배우기에 더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 직업 교육을 받게 하는 것보다는 역시 기본적인 고전을 배울 수 있는 중학교 교육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사샤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하로조프에 있는 자기 언니네 집에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인 수의사는 매일같이 가축을 검사하러 출장을 나가곤 했고, 어떤 때는 2, 3일씩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 보면 사실 사샤는 자기 집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나 별로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올렌까는 이러다가는 사샤가 굶어죽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가 사용하는 건넌방에 붙은 조그마한 방 하나에서 지내도록 마련해 주었다.

사샤가 올렌까에게 와서 살게 된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났다. 아침이면 그녀는 아이 방으로 들어간다. 사샤는 한쪽 뺨 밑에 손바닥을 괴고 죽은 듯이 자고 있다. 아이를 깨우는 것이 너무 가엾어서 그녀는 늘 망설이곤 했다.

"얘, 사센까!" 올렌까는 애처롭다는 듯이 아이를 불러 깨운다.

"이젠 일어나야지, 학교에 갈 시간이란다!"

사샤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기도를 드린다. 그런 다음 차를 세 잔 마시고 커다란 도너츠를 두 개, 버터를 바른 빵을 조금 먹는다. 아침을 먹을 때면 잠에서 미처 깨지 않아 늘 부루퉁해져 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사센까야, 너 학교에서 배우는 그 우화를 똑똑히 따라 외우지 못했잖니?" 마치 아이를 먼 곳으로 떠나 보내기라도 하는 말투로 그녀는 이렇게 타이른다. "나는 항상 네 일이 걱정이야.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도 늘 새겨 들어야 한단다. 알겠니?"

"에이, 이제 제발 그런 말 좀 그만 해요!" 사샤는 이렇게 내쏘곤 했다.

이윽고 소년은 자기 머리통보다 훨씬 더 큰 모자를 눌러쓰고 책가방을 둘러멘다. 그리고는 한길에 나가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올렌까도 그 뒤를 슬금슬금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사센까야!" 그녀는 그럴 때면 뒤에서 아이를 불러 세워서는 대추나 캬라멜 따위를 손에 쥐어주곤 했다. 학교가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사샤는 이렇게 나이 많은 여자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창피해서 뒤를 돌아보며 말하곤 했다.

"이젠 그만 돌아가요, 아줌마. 나 혼자서 얼마든지 갈 수 있단 말이에요."

올렌까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소년이 학교 문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과거에 사랑했던 어떤 사람에게도 이렇게 깊은 애정을 바친 적이 없었다.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날이면 날마다 더욱 열렬하게 불타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이렇게 순결하며, 이렇게 자기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그런 사랑을 그녀는 아직 맛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영혼을 독차지하는 그런 사랑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기와는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소년인데도, 그녀는 소년의 볼에 오목하게 들어간 그 보조개와 커다란 학생 모자를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자기의 한평생 동안, 자기의 눈물과 기쁨을 거기에 바칠 수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하지만 누가 감히 거기에 대답할 수 있으랴!

사샤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나면 올렌까는 무척 흡족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 반 년 사이에 한결 젊어진 그녀의 얼굴에는 쉬지 않고 밝은 미소가 떠올라 떠날 줄을 몰랐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옛날처럼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리따운 올리가 세묘노브나! 요새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 중학교 공부는 너무 어려워졌어요!" 올렌까는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글세, 어제는 1학년 학생들에게까지 우화를 암송해오라느니, 라틴어 번역을 해오라느니 하지 뭐예요? 게다가 수학에서도 숙제가 있죠! 그건 너무 한 것 아닐까요? 세상에나!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무거운 부담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올렌까는 중학교 교원들이나 학과, 교과서 등에 대하여 사샤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후 세 시에는 점심을 먹고, 저녁이 되면 사샤와 함께 예습을 하면서 진땀을 빼곤 했다. 사샤를 잠자리에 눕힐 때가 되면 그녀는 몇 번이나 성호를 긋고 입 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런 다음에야 자기도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사샤가 대학을 마치고 의사나 훌륭한 기사가 되는 날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저택을 장만한다. 거기에는 마구간과 마차 따위가 갖춰져 있다. 그리고 결혼도 해서 아이를 낳는다... 이렇게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을 환상처럼 그려보는 것이다.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의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겨드랑이 밑에서는 고양이가 가랑가랑 코를 골고 있었다.

밤중에 느닷없이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렌까는 겁에 질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숨이 막힌다.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댄다. 대문에서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한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리코프에서 전보가 온 모양이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올렌까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샤의 어머니가 그 애를 하리코프로 보내라고 전보를 친 모양이야! 아...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을까?'

올렌까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머리와 손발이 얼음장처럼 얼어붙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의사가 클럽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을 꽉 채웠던 묵직한 것이 시원스레 풀려 내려가는 것 같다. 가슴이 다시 가벼워졌다. 올렌까는 옆방에서 곤히 잠든 사샤를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따금 사샤가 잠꼬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저리 가란 말이야! 때리지 말라니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