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시치까와 나는 극장에는 가지 않는답니다." 사람들이 그럴 때면 그녀는 아주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우스꽝스러운 구경이나 하고 다닐 여유가 없답니다. 극장 같은 데를 가 봤자 뭐 하나 이로울 게 있어야죠."
뿌스또발로프 부부는 토요일에는 저녁 기도, 일요일이면 아침 미사에 참석했다. 교회를 나오면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길을 걸었다. 아내는 기분 좋게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비단 옷을 입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두 사람은 무척 행복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버터 빵에 여러 가지 잼을 발라서 차와 함께 마셨다. 그 다음에는 케이크를 먹었다.
매일 점심 무렵에는 이 집에서는 수프나 양고기, 오리 따위를 굽는 냄새가 대문 밖 한길까지 풍겨 나왔다. 고기 먹는 것을 금하는 절기 때에는 생선으로 요리를 했다. 누구나 이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에는 언제나 싸모바르가 끓고 있어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차와 도너츠를 대접했다.
일 주일에 한 번쯤 두 부부는 목욕탕에 갔다. 목욕이 끝나면 둘 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올렌까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바시치까와 저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하지요."
뿌스또발로프가 목재를 구입하러 모길레프 현으로 출장을 가 있는 동안 그녀는 너무나 외롭고 적적해서 밤에 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만 짜고 있었다. 저녁 때에는 그녀의 집 건넌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젊은 스미르닌이 가끔 놀러오곤 했다. 그는 군 부대의 수의사였다. 그는 올렌까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도 해주고 트럼프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여간 위로가 되는 게 아니었다.
스미르닌의 가정 얘기가 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수의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행실이 좋지 못해 이미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아내를 무척 미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의 양육비로 매달 40 루블씩 아내에게 보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올렌까는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불쌍했던 것이다.
"당신을 구원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겠어요." 층계까지 촛불을 들고 나와 그를 배웅하며 올렌까는 말했다. "심심한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주님께서 당신에게 건강을 주시고, 또 성모 마리아도 당신을..."
그녀의 말투는 남편을 닮아서 침착하고 위엄이 있었다. 수의사가 아래층 현관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을 일부러 불러 세우고 그녀는 이렇게 충고했다.
"블라디미르 플라토니치, 부인과 화해하셔야 합니다. 아드님을 봐서라도 부인을 용서하셔야 하는 거예요! 어린 자식의 마음에 그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답니다."
뿌스또발로프가 집에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수의사의 불행한 가정사 얘기를 소곤소곤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그들 내외는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흔들면서 그 어린아이를 동정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을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때 이 부부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왜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을까? 그들은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부부에게도 아이를 줍시사 하는 기도를 드렸다.
뿌스또발로프 내외는 이렇게 깊은 사랑 속에서 말다툼 한 번 하는 일 없이 6년 동안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감기에 걸렸다. 사무실에서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목재를 내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것이 그만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앓아 눕게 되었다. 유명한 의사들을 불러서 진찰을 시켰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네 달 동안 앓아 누웠다가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올렌까는 다시 한 번 과부가 된 것이다.
"여보, 나만 혼자 남기고 당신은 어디로 가신 거예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녀는 이렇게 통곡했다. "당신 없이 나 혼자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예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이웃의 여러분들이 나를 보살펴 주시지만, 나는 이제 사고무친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올렌까는 상장(喪章)을 단 검은 옷을 입고 모자나 장갑도 끼지 않았다. 교회나 남편의 묘지에 갈 때를 빼면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없었다. 마치 수도원의 수녀와 같은 생활을 했다. 뿌스또발로프가 죽고 나서 6 개월이 지나자 올렌까는 상복을 벗었고, 창문에 무겁게 닫혀 있던 덧문을 열어놓았다. 아침이면 이따금 하녀를 데리고 시장에 가는 모습도 이웃 사람들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녀가 집안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는 것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이것저것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뭔가 추측을 할 만한 재료는 있었다. 그녀가 뜰에 앉아 수의사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느니, 수의사가 그녀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을 누군가 보았다느니 하는 얘기가 떠돌았다. 어떤 사람은 우체국에서 올렌까가 친구를 만나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했다.
"이 고장은 가축을 엉망으로 관리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병이 생기는 원인이랍니다. 우유에서도 병이 생기고, 말이나 소들도 사람에게 무서운 질병을 옮긴다는 사실 정도는 다들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예요. 사실 사람의 건강 못지 않게 가축의 건강이란 것도 무척 중요해요. 그래서 아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문제예요."
그녀는 즉 수의사의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무슨 일에 있어서나 수의사와 똑같은 의견을 갖게 된 셈이었다. 올렌까가 그 누군가 사랑하지 않고는 1년도 살아갈 수 없는 여자인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집 건넌방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은 것이다.
만약 다른 여자의 경우였다면 사람들은 올렌까를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올렌까만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올렌까와 수의사는 자신들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올렌까는 도대체 비밀이란 걸 가질 수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수의사와 같은 연대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집으로 놀러오면 올렌까는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간식을 차려 내놓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서 그녀는 페스트나 결핵 등 가축의 질병이나 도시의 가축 도살 시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이것은 수의사에겐 무척 난처한 일이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면 수의사는 화를 내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나무랐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런 얘긴 제발 꺼내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소! 우리 수의사들끼리 얘기할 때에는 제발 나서지 말아요. 내 꼴이 뭐가 되느냔 말이오!"
그러면 올렌까는 놀라고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묻곤 했다.
"그럼 볼로치까, 난 거기서 무슨 말을 하면 좋아요?"
그리곤 눈물이 글썽해져서 그를 껴안으며 화를 내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행복하게 지냈다.
귀여운 여인 - 3. 비밀을 가질 수 없는 여자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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