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런 경황 가운데 1946년에서 47년에 걸친 그 겨울이 닥쳐왔다. 우리들은 그 당시 문자 그대로 먹을 것이 없었다. 단 1 그램의 고기도 없이 감자만 몇 주일 동안 먹는 일도 있었다. 언젠가 레니는 배가 너무나 고파서 빵집에서 빵을 한 개 훔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해 2월초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제 그 짐승을 죽여버려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떤 짐승을 죽인다는 거냐?"
하고 반문하면서 엄한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 고양이 말이에요!"
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이 말의 결과가 어떨지 잘 알고 있었다. 온 식구가 나에게 일제히 덤벼들었다.
"뭐라고? 우리 고양이를? 부끄럽지도 않아?"
"나는 부끄러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대답했다. "그 고양이는 우리들이 먹을 것을 대신 뺏어먹고 살이 찐 거야. 그놈은 돼지 새끼같이 살이 쪘어. 그놈은 아직 어리고 하니 지금쯤 죽여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침내 레니가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페터는 식탁 밑으로 나를 발로 세게 걷어찼고, 어머니는 슬픈 듯이 말했다.
"나는 네가 그처럼 나쁜 사람이라고는 아직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고양이는 부뚜막 위에 배를 깔고 누워서 잠자고 있었다. 그놈은 정말 토실토실하게 살이 쪄 있었다. 그놈은 이제 무척 게을러져서, 집에서 내쫓으려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4월이 되어 마침내 감자마저도 다 떨어지자 우리는 이제 정말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미칠 듯이 화가 나서 고양이를 앞에 놓고 큰소리를 퍼부었다.
"알겠지? 잘 들어둬. 우리는 이제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단 말이야. 그래 넌 그것도 모른단 말이지?"
나는 텅 빈 감자 상자와 빵 그릇을 그놈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놈에게 솔직하게 일러 주었다.
"썩 나가란 말이야. 우리 집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으면 썩 꺼지란 말이야."
그러나 그놈은 부뚜막 위에서 눈을 깜박거리더니 그대로 뒹굴거리기만 했다. 나는 화가 나서 식탁을 탕 치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래도 그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놈을 움켜잡아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섰다. 집밖은 약간 어두웠다.
어머니는 동생들과 함께 석탄을 주우려고 차도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빨간 고양이는 내가 끼고 가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그놈은 게으름장이니까.
나는 개천 쪽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고양이를 팔 생각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요" 나는 대답하면서 고양이를 살 사람이 생겼다고 속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공연히 몇 번 웃기만 하더니 그대로 가 버렸다. 어느새 나는 개천가에 와 있었다.
개천에는 얼음이 흐르고 있었고 주위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추웠다. 고양이는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게 됐어. 내 동생들이 굶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포동포동 살만 찌고. 그러니 이제 도저히 너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나는 고양이의 뒷다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주어 고양이를 나무 기둥에 후려쳤다.
그러나 고양이는 비명만 지를 뿐 여간해서 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그놈을 얼음 덩어리에 후려쳤다. 그러나 고양이는 머리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눈언저리에 거무스름하게 반점을 이루며 스며들었다. 고양이는 갓난아이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이제 그만 둘까도 생각했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끝장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다시 고양이를 얼음 덩어리에 내리쳤다. 뚝하는 소리가 났다. 뼈가 부러지는 소린지 얼음이 갈라지는 소린지.
그런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고양이는 목숨이 일곱 개라고 하더니, 이 고양이는 그보다 목숨이 더 질긴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부딪칠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나 역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몹시 추운 날씨였는데도 나는 온몸이 땀에 젖었다.
드디어 고양이가 뻗어버렸다. 그때야 나는 그 시체를 개천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더러워진 손을 눈으로 닦았다. 다시 한 번 고양이를 바라보니까 벌써 개천 한 복판에 뜬 얼음들 사이에 둥둥 떠 있더니, 이윽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몸이 오싹 떨렸으나 그렇다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정처 없이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너 무슨 일이 있었니?" 하고 물었다. "네 안색이 파랗다. 윗저고리에 묻은 그 피는 뭐니?"
"코피가 났어요." 나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박하 차를 끓여주었다. 나는 다소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나 아무래도 견딜 수가 없어서 곧 침대로 가 누웠다. 조금 후에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기분은 잘 알아. 이제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아라."
밤중에 페터와 레니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오랫동안 나의 귓전을 울렸다. 한참 지난 뒤에 나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 빨간 고양이를 죽여버린 것이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어쩐 것인지를. 그러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조그마한 동물이 먹는다 해도 과연 얼마나 먹었을 것인가.
<끝>
빨간 고양이 - 3. 그 조그마한 동물이 먹으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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