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의 빨간 고양이 생각이 언제까지나 나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내가 한 짓이 과연 잘한 것인지 어떤지 지금도 나는 분간할 수가 없다.
우리 집 마당에는 폭탄이 떨어져서 뚫린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 돌 더미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내가 어느 날 그 돌 더미 위에 앉아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내가 돌 더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 집이 반 이상이나 부서져서 그 덩어리들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부서지고 남은 그 나머지 반도 못되는 부분이 그래도 아직 집 모양을 하고 있어서 우리들, 즉 어머니와 페터, 그리고 레니와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 페터는 나의 사내 동생이고 레니는 여동생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 돌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잡초와 무언지 이름을 모르는 초록색 식물들이 그 근처 일대에 우거져 있었다. 나는 빵을 한 개 들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빵이었는데, 어머니는 이 묵은 빵이 갓 구워낸 빵보다도 더 몸에 좋다고 말씀하셨다.
묵은 빵은 자연히 오랫동안 씹어야 한다. 어머니는 그래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게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배가 불러본 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빵 조각 하나가 내 손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몸을 굽혔다. 그런데 순간 잡초 사이에서 빨간 앞다리가 쑥 나오더니 나보다 먼저 빵을 가로채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드디어 잡초 사이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우처럼 빨갛고 바싹 마른 놈이었다.
"요 망할 놈이!"
나는 소리치며 돌을 던졌다. 물론 그저 쫓아버리려고 했을 뿐, 정말 맞출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돌이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비명을 질렀다.
"야옹!"
단 한 마디였다. 마치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도망갈 기색은 없었다. 나는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돌을 던진 것이 좀 심했다는 자책감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그 놈은 잡초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저 숨을 가쁘게 할딱거리고만 있었다. 배의 빨간 털이 달싹이는 게 눈에 띄었다. 그놈은 초록색 눈으로 그저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나는 참다못해 "대관절 너는 어쩌자는 거냐?" 하고 소리쳤다.
이것은 물론 어리석은 짓이다. 사람이 아닌 그놈에게 아무리 말을 해보아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니까. 나는 화가 났다. 그놈의 고양이에 대해서도 또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기 때문에 나는 이제 다시 그놈을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빵을 물어 뜯었다. 몇 번 씹어서 빵을 삼켰다. 마지막 한 입은 큼직한 덩어리였으나 고양이에게 뱉어버리고 약이 올라서 그곳을 떠나버렸다.
집 앞에서는 페터와 레나가 강낭콩을 주워 먹고 있는 중이었다. 둘 다 강낭콩을 입 가득히 물고 연방 우두둑 소리를 내며 씹고 있었다. 레니가 오빠에게 혹시 빵 조각 남은 게 없느냐고, 조그마한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톡 쏘아 붙였다.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도 나와 똑같이 빵을 받았잖아? 넌 이제 겨우 아홉 살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열 세 살이야. 큰 사람이 좀더 많이 받아야 되는 거잖아?"
"그건 그래." 누이동생은 순순히 찬성했다. 페터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
"그런데 레니는 자기 빵을 고양이에게 줘 버렸지 뭐야."
"뭐라구?"
내가 물었다. "대관절 어떤 고양이게 주었어?"
"어떤 거냐구? 빨간 고양이야. 여우같이 생긴 조그마한 놈인데, 무척 말랐어. 내가 빵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 고양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잖아?"
레니가 설명했다.
"바보 같으니라구..."
나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 형편인데..."
그러나 레니는 당황해서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을뿐 페터쪽을 바라보았다. 페터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나는 페터 요 녀석도 필경 고양이에게 빵을 주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쩐지 나는 그곳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거리로 나갔다. 미국 자동차가 서 있었다. 큼직한 뷰이크 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전하는 사람이 시청이 어디냐고 나에게 물었다. 영어였는데, 그까짓 영어 몇 마디 쯤이야 나도 할 수 있지... 내가 대답해 주었다.
"다음 거리, 그리고 왼쪽으로 돌아서, 그리고..."
곧장이라는 말을 영어로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것은 손짓으로 대충 표현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말을 아주 잘 알아먹었다.
"그리고 교회당 뒤에 광장이 있습니다. 시청은 바로 거기입니다."
이번에는 제법 미국말을 능숙하게 했다고 자신한다. 왜냐하면 차 안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에게 흰 빵을 여러 조각 주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하얀 빵이었다. 빵 조각 사이에 무척 크고 두툼한 소시지가 끼어 있었다. 나는 빵을 들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부엌으로 들어가니까 누이동생이 당황해서 무언가를 소파 밑에 감추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대뜸 알아차렸다. 바로 그 빨간 고양이인 것이다. 더군다나 마루 위에는 우유가 조금 엎질러져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 만했다.
"너희들 미쳤어?"
나는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하루에 겨우 반 리터밖에 우유 배급을 받지 못한단 말이야. 가족은 네 사람이나 되고..."
나는 소파 밑에서 고양이를 끄집어 내어 창문 너머로 던져 버렸다. 그래도 동생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미국 사람이 준 흰 빵을 네 조각으로 잘라 나누어주고, 어머니 몫을 부엌 선반 위에 남겨 두었다.
"어디서 얻어왔어?"
두 동생이 무척 근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슬쩍 날치기를 해온 거지 뭐겠어."
내가 대꾸하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혹시 길바닥에 석탄이 떨어져 있지나 않은지, 재빨리 살펴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석탄을 실은 화물 자동차가 지금 막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차가 지나간 뒤에는 간혹 석탄 덩어리가 조금씩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집 앞마당으로 나오니까 그 빨간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저리 꺼져."
나는 소리치며 고양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그마한 입을 벌려
"야옹"
하고 울었다. 이 고양이는 다른 놈들과는 달리 큰 소리로 울지 않았다. 그저 '야옹'할 뿐인데, 나는 그 모습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가 없다. 그 고양이는 울면서 초록색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화가 치밀어서 미국인이 준 빵 조각으로 그놈을 후려갈겼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련한 짓을 했다. 도로에 나가 보니까 벌써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나보다 덩치가 큰 놈들이고, 석탄은 이미 다 주워버려서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내가 일부러 그들 옆을 지나가 보았더니 그 자식들은 이미 양동이에 석탄을 가득 주워 담아놓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침을 탁 뱉었다. 고양이란 놈 때문에 우물쭈물한 게 잘못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게 모두 나의 것이 되었을 거고, 그것만 있으면 한 번쯤은 제대로 저녁밥을 지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나는 조금 있다가 석탄 대신 감자를 실은 마차 한 대를 만났다. 슬쩍 건드려 보았더니 몇 개가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또 연달아 몇 개가 떨어져 나왔다. 나는 그것을 포켓 속에다 쑤셔 넣고 모자 속에도 감추었다. 마부가 뒤를 돌아다 보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감자가 떨어졌어요."
빨간 고양이 - 1. 폭탄 구멍이 뚫린 마당에서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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