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서 얼른 집에 들어가 보니까 어머니가 혼자 계셨다. 그런데 어머니 무릎 위에 그 빨간 고양이가 천연덕스럽게 안겨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이 망할 놈이 또 왔구나."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몹쓸 말을 하지 말아라. 이 고양이는 길러줄 사람이 없단다. 이것 좀 봐라. 얼마나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알 수 없구나... 이렇게 뼈만 남다니... "
"쳇, 우리도 뼈와 가죽뿐인 걸 뭐..."
내가 이렇게 대꾸하니까 어머니는 또 말했다.
"내 빵을 조금 주었을 뿐이야."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를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나는 식구들의 빵과 우유, 또 그 흰 빵을 생각해 보았으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온 식구가 달라붙어 감자를 삶았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기색이었으나, 내가 어디서 그 감자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하기야 뭐라고 물어본대도 나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커피 마실 때 자기 커피에 우유를 타지 않았다. 아껴서 남겨둔 밀크를 그놈의 빨간 고양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핥아먹는 꼴을 모두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고양이가 창문 밖으로 뛰어 나가자 나는 비로소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튿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야채를 타는 줄에 가서 서 있었다. 나는 8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와 보니 동생들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두 동생들 사이의 의자 위에는 또 그놈의 빨간 고양이가 낼름하니 올라앉아 커피에 적셔 부드럽게 된 빵을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빵은 레니의 접시에 담겨 있었다. 몇 분 후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5시 반부터 일어나 배급 행렬에 나가 서 있다가 이제 돌아온 것이다. 고양이가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내가 눈치채지 못한 줄 알고 소시지 한 조각을 슬쩍 떨어뜨려 주었다. 그것은 배급표가 없어도 살 수 있는 회색 소세지였으나, 우리들은 그거라도 빵에 발라서 먹고 싶어했다. 어머니가 그런 사정쯤 모를 까닭이 없었다.
나는 화가 나서 배가 아팠으나 꾹 참고 모자를 움켜쥐자 방을 나와 버렸다. 지하실에서 낡은 자전거를 끄집어 내서 올라타고 곧장 교외로 달렸다. 그곳에는 연못이 있어서 물고기가 제법 많았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나는 이번에도 꽤 성적이 좋았다. 10시도 채 되기 전에 큼직한 물고기를 두 마리나 잡은 것이다. 점심은 이걸로 충분하다. 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물고기를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지하실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이걸 알렸다. 그 날은 어머니가 항상 빨래를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부엌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물고기가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작은 놈만 남아 있었다. 얼핏 창문턱을 쳐다보니 그놈의 빨간 고양이가 벌써 물고기 한 마리를 다 먹은 참이 아닌가. 나는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무토막을 들고 그놈의 고양이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 이번에도 나무토막은 고양이를 제대로 맞추었다. 고양이는 창문턱에서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마치 무슨 자루가 떨어지듯 털썩하는 소리가 마당에서 들려왔다.
"고놈 꼴 좋다."
나는 통쾌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뺨이 얼얼해졌다. 어머니였다. 나는 열 세 살이었지만 그때까지 아직 한 번도 따귀를 맞아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동물을 괴롭히다니..."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우선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점심 식사에 생선 샐러드가 나오기는 했으나, 어차피 생선보다 감자가 훨씬 더 많이 섞여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고양이란 놈을 쫓아낸 셈이었다. 그러나 물론 일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동생들은 마당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불러댔고, 어머니만 해도 매일 밤 우유를 접시에 담아 문밖에 내놓고는 얄밉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곤 했다. 이쯤 되니 나 자신도 그 고양이를 찾아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병이 났거나 또는 죽어서 어디엔가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그 고양이는 다시 돌아왔다. 고양이는 다리에 상처를 입고 절룩거렸다. 오른쪽 다리였는데, 물론 내가 던진 나무토막에 맞아서 생긴 상처였다. 어머니는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 뒤부터 고양이는 다시 매일처럼 우리 집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놈은 꼭 식사시간만 되면 나타나는 까닭에 우리는 무엇 하나 그놈 몰래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좀 먹으려고 하면 그놈이 낼름 버티고 앉아서 먹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곤 했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고양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주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배알이 뒤틀려서 참을 수 없는 노릇이기는 했지만.
고양이는 점점 살이 통통하게 쪄갔다. 원래는 종자가 좋은 고양이었던 것 같았다.
빨간 고양이 - 2. 가족들과 친해진 고양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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