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은 화이트 씨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로 노래했다. 콘스탄틴은 남의 흉내 내는 것을 무척 꺼려했기 때문에 사실 그의 노래 가사는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수의사를 하고 있을 때 외워 둔 말의 병명을 늘어놓은 것이었다. 소리는 분명 독특했고, 쉰 목소리였다. 너무 목이 쉬어서 가볍게 기침이라도 하던가, 코를 시원하게 풀어버리면 깨끗하고 맑은 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가라앉은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조그맣게 들렸다.

그렇게 조그맣고 맑지 못한 소리였지만, 묘하게 부드럽고 생생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악기 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듣기 거북한 소리지만 묘하게도 조용한 음색이었다. 듣는 사람이 뭔가 어리둥절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산양 같은 동물이 목청을 가다듬고 무슨 마술처럼 거친 화음을 내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

"내 음악은 바로 이런 겁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듭니까?" 콘스탄틴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쇼팡을 듣는 것이 더 마음에 드는군." 화이트 씨가 대답했다.

"레코드 판에 담긴 쇼팡 말입니까?"

"그래, 레코드 판에 실린 쇼팡이지."

"그렇지만 내 음악은 지금까지 당신이 들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겁니다. 쇼팡 레코드 판은 수백 만 명 인간에게 똑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기계일 뿐이잖아요?"

"아냐, 그래도 그게 더 좋아."

콘스탄틴은 입술을 약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기분을 바꿨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그는 대범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 신상 얘기를 듣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 지그재그 이론을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 그런 얘기보다 우선 당신은 뭘 먹어야겠지." 앵글로 색슨족은 대개 다른 사람을 먹이고 마시게 하는 걸 좋아한다. 화이트 씨도 스스로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내 지그재그 사상은 뭘 먹으면서도 설명할 수 있어요." 콘스탄틴은 방 저쪽 식탁 쪽으로 앞장서 걸어 가면서 말했다. "당신도 같이 식사하지 않으렵니까?"

"난 밤 열 시에 고기를 먹는 습관이 아니야."

"습관이 없다는 게 지금 먹지 않는 이유입니까?"

"그런 셈이지."

"음... 음... 아니, 당신처럼 되어보고 싶군요."하고 콘스탄틴은 힘을 주어 말했다.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 것은 - 일체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죠. 나는 정말 당신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자, 시금치를 먼저 드시지." 화이트 씨가 말했다.

"그러면 지그재그 사상을 설명해 볼까요."

"먹으면서도 얘기할 수 있다면 어디..."

콘스탄틴은 무척 배가 고팠다. 화이트 씨를 정면에서 보면서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에 앉았지만 그는 금방 접시에 고개를 숙이고 먹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은 입에 너무 많이 음식을 물고 있어서 말도 못할 형편이다. 그러나 그 검은 눈으로, 자기가 얘기를 시작할 때까지는 입을 열지 말라고 부탁하듯이 화이트 씨 얼굴을 쳐다 봤다.

"그래서..." 그는 입에 든 음식을 급히 삼키고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지그재그는 언제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공간에서 이런 선을 긋는단 말입니다. 이렇게... 똑바로 직선 말입니다. 그리고... 알겠습니까, 그 아래 끝에서 이번에는 경사지게, 미묘한 선이 나옵니다. 이렇게 말이죠, 내가 말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지그는 그쪽으로 가고, 재그는 그쪽에서 나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자네 한 쪽 발이 왜 그렇게 퉁퉁 부었나?" 화이트 씨가 물었다.

"붕대를 감고 있어서 그럽니다. 그런데 나는 이 지그재그가 인간이 사물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두뇌가 움직이는 것은 지그 아니면 재그...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그쪽에서 나오는 것이며... 대담한 지그는 직선적이어고 이렇게, 보다 영리하며 냉혹한 재그는 그 밑에서 살짝 달린다. 마치 이렇게 인간의..."

"그런데 붕대는 왜 감고 있지?"

"말에게 채었어요. 그런데 인간의 논리 전개도 꼭 그런 모양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우선 여기 단순하고 충실한 이해 방법이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그가 돼서 단순한 신앙을 반영하는, 느긋하고 영리한 지혜가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그 아래에... 이렇게, 또 지그가 옵니다. 말하자면 현명하고 침착한 이해력이지요. 그리고 다음에는 또 그것과 반대인 재그가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침착하게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러니칼한 놈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또다시 이번엔..."

"당신 발을 좀 볼까." 화이트 씨가 물었다. "이래 봬도 전쟁 때에는 나도 의무대에 있었지."

"아니 발이 어쨌단 말입니까." 콘스탄틴은 소리쳤다. "발 같은 건 어느 거나 다 비슷합니다. 수 백 만 명이 다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발이나 다 피와 뼈와 근육... 모두 이런 쓸모없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의무대에서는 발을 잘라 버리기도 하고 상처를 고쳐 주기도 하고, 뼈와 뼈를 이어주기도 하고, 지혈을 시키기도 합니다. 정말 쓸 데 없는 짓들이죠. 인간의 육체는 전혀 쓸 데 없고, 인간의 독자성은 오직 그 정신에 있는 것입니다요."

"그럴 테지." 화이트 씨는 말했다. "하지만 정신이고 뭐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려면 발이 필요할 거야. 당신 발을 좀 보여줘."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발에 관한 얘기를 합시다. 우리는 누구나 발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나 나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 그렇게 더러운 넝마를 감으면 안돼. 그 넝마를 감지 말고 다른 좋은 방도가 있었을 텐데?"

"더러운 게 아닙니다. 그저 약간 거무튀튀할 뿐이죠. 논 물에 빨았으니까." 콘스탄틴의 무릎 근처에서 뭔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새삼 자기 발에 흥미를 느끼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쳐 박으며 바라봤던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물로 씻었어요. 무릎 뒤에 종기가 세 개 있더군요. 넝마가 거무튀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상처가 거무튀튀했을 뿐이죠."

화이트 씨는 한 마디 대답도 없이 벌떡 일어섰다. 콘스탄틴은 짐승처럼 각반을 다리에 감은 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는 입에 음식을 한 입 문 채 또다시 지그자개론을 떠들기 시작했지만 곧 얘기를 중단했다.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화이트 씨가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화이트 씨가 멀리 떨어져 방 한쪽을 귀찮은 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자기한테서 싫은 냄새라도 나는 것 아닌가 염려했다. 비길 데 없이 귀중한 그의 인격이 육체에 의해 이렇게 잔인하게 배신을 당하는 것인가... 이것이 그의 끊임없는 근심거리였다. "기분이 상했습니까?"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이트 씨의 귀찮은 듯한 그러면서도 침착한 태도가 일변했다.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하필 이런 때에, 정말 어떻게 해 볼 수 없군.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할 경우가 생기다니.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있고... 거기에다 이 지방은 어디나 전쟁터라서 움직여 볼 수도 없고..."

"뭐가 그리 난처합니까?" 기가 질려 영어를 더듬거리며 콘스탄틴이 물었다.

"말해 주지." 콘스탄틴 앞에 다리를 크게 벌리고 서서 화가 난 목소리로 화이트 씨가 말했다. "당신은 오늘 밤 이 집 지붕 밑 방에서 자야 해.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일찍 깨워주지. 그리고(정말 별 수 없어) 내가 차를 운전해 라오쵸에 있는 병원까지 데리고 가겠어... 자동차로 이틀, 3백 마일이야... 그리고 길 형편이 무척 나쁘다는 걸 미리 알아 둬야 해."

콘스탄틴은 충격으로 심장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병원 같은 델? 제 발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래." 화이트 씨는 더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의사라면 그 발을 한 시간도 더 몸에 붙여놓지 않아."

콘스탄틴은 이빨이 딱딱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죽는다. 이 꼴을 하고. 이 시커먼 발 때문에 나는 죽는다... 이 귀중한 단 한 사람인 내가 죽는 거야..." 위로의 말을 기대하면서 그는 화이트 씨를 곁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사나이는 귀중하지 않아... 집단 속의 한 사람일 뿐이야... 그러니까 오히려 얼마든지 대담해질 수 있는 거다."

화이트 씨는 다시 귀찮은 듯한, 흥미 없다는 태도로 돌아가서 이 조그만 러시아인을 지붕 밑 방으로 안내하고 나가 버렸다. 방에는 보기 좋게 접어서 깔아놓은 하얀 시트나, 방바닥에 정사각형으로 깔린 푹신한 푸른 양탄자, 열린 양복장 안에 한쪽으로 걸린 몇 개의 옷걸이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보자 콘스탄틴은 화이트 씨가 그 물건들 만큼이라도 손님으로 온 자기를 가치 있게 여기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이 조그맣고 깨끗한 방안에 서서 그는 자신의 이 육체 - 화가 날 정도로 골치 덩어리인 두 다리 위에 얹힌 채 목욕도 하지 않으며 수염도 깎지 않고 더러운 옷으로 싸인 이 피곤한 몸뚱이에게 배반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 달리 입을 옷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입고 있는 것은 모두 벗어 던지자고 그는 결심했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시트 위에서는 자기 자신의 빛나는 나체로 있는 것이 오히려 그럴듯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몸을 씻고 싶었지만 옷을 벗으면서 발의 상처에 관심이 갔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이제는 아픔보다도 상처의 추악함에 가슴이 답답할 정도였다. 온 몸의 신경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상처를 살피는 순간 튀어나와 그 고통을 느끼게 하려고 벼르는 것 같았다. 무릎 위쪽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새로 생겨났다. 콘스탄틴은 셔츠 하나만 걸친 채 급히 층계를 내려가 불빛이 보이는 방으로 뛰어 들었다. "이것 좀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딴 곳이 아프기 시작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증거입니까?"

깨끗한 파란색과 흰색 무늬의 파자마를 입은 화이트 씨는 막 넥타이를 소중하게 걸고 있는 중이었다. 넥타이 걸이와 그가 입고 있는 파자마, 정성스럽게 기념문이 쓰인 은제 빗, 그리고 문 옆에 걸려 있는 고무줄 달린 운동기구, 이런 것들을 본 순간 콘스탄틴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타인과 자기의 큰 거리를 생생하게 느꼈다.

"자, 돌아가 주무시오." 화이트 씨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조금만 더 분별 있게 자중해 주면 좋겠소."

콘스탄틴은 지붕 밑 방에 돌아와서 가까스로 생각했다. "그 때 말해줬어야 하는 건데... '당신이야말로 좀 분별있게 행동해주지 않겠어요?'라고. 분별이라니... 정말 쓸 데 없는 소리야."

그렇지만 그 분별 덕분에 내일은 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삼 백 마일이나 자동차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