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주일 정도라면 자네 맘대로 농땡이를 칠 수도 있겠지..." 데이브 버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을 좀더 삼가는 게 좋겠어."

포터즈힐에 이르자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울타리 그늘에 앉아 빵과 치즈를 먹고 깡통에 든 차가운 차를 마셨다. 그냥 빵만 먹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것도 준비해 오지 않은 농땡이꾼 뉴먼은 친구 두 사람 것을 얻어서 먹고 마셨다. 일행이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그레이트 노스 거리에 들어서자 때 뉴먼은 허리를 펴더니 교활한 눈으로 조이 클레이튼 쪽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나한테 한두 실링만 있어도 자네들한테 맥주 한 잔씩 앵길 텐데 말씀이야..."

조이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자네한테 돈이 없으면 나라도 한턱 내야 되겠지..." 그는 불안한 듯 이렇게 말하고 가까운 술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이와 뉴먼은 걸음을 멈추려하지 않는 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 잔 하지 않으려나?" 그러나 데이브는 천천히 대답했다. "글쎄, 그런 식으로 멋 부리는 건 잘하는 짓 같지 않구먼..."

조금 지나서 조이는 적어도 2실링 정도는 부칠 생각으로 우체국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뉴먼이 나서서 반대했다. 만일의 경우 필요할지도 모르는 돈을 멀리 보내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여자란 것은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존재라는 자신의 논리를 몇 번씩 되풀이했다. 조이는 일단 돈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 미루기로 한 것이다.

길은 점점 더 나빠졌다. 먼지가 심해서 일행의 꼬락서니도 점점 더 뜨내기 무전 여행객의 행색이 드러났다. 이따금 아코디언 연주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그것도 완전히 멎고 말았다. 연주하는 사람이 지친 것도 지친 것이지만, 일행 가운데 나이 많은 몇몇 사람들이 걷는 일이 피곤해지면서 아코디언 소리마저 소음을 듣는 것처럼 짜증을 냈던 것이다.

조이 클레이튼은 먼지 때문에 기침이 더욱 심해져서 특히 아코디언 소리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발작적으로 기침이 터질 때마다 열댓 번씩 되풀이되는 아코디언의 그 연주 소리가 정말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아코디언의 느리고도 웅웅거리는 소리...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트필드 역에서는 일행의 앞에서 걷던 두 사람이 어떤 승객의 무거운 짐을 거들어 주고 동전 몇 닢을 벌었다. 딕스웰 힐까지 오자 그 동안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의 길다란 줄도 거의 흩어졌다. 뉴먼도 이젠 연설을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맑게 갠 밤 하늘의 공기에는 달콤한 냄새마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웰원과 코디코트 중간 지점에서 일행은 잠을 청할 만한 헛간 같은 곳을 찾아 모두 흩어졌다.

아코디언 연주자만은 웰원에 있는 자그마한 주막을 찾아갔다. 한 곡 연주해서 재수가 좋으면 맥주 한 잔에다 헛간 구석자리라도 얻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데이브 버지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초가 오두막 한 채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아직 다발로 묶지 않은 건초더미가 쌓여 있었다.

뉴먼은 건초더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가장 아늑한 구석자리로 가서 몸을 눕혔다. 데이브 버지는 뉴면이 누운 자리에서 마른 풀을 좀 끄집어내더니 괜찮아 보이는 장소에 조이 클레이튼을 도와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이내 잠이 들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이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기침을 하면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이런 환경에 익숙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몇 달 동안 감옥 신세라도 지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들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헛간에서 자는 패거리들 가운데는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퍼뜨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엔 다행히 코디코트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북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세 사람이 음식점에서 찬 고기와 빵을 사서 먹여 주었던 것이다. 아코디언을 가진 사나이는 그들을 따라갔다. 잠자리와 아침 식사, 그리고 8펜스의 돈을 얻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히친에 머물러 하루 정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에는 일행과 헤어져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닐 속셈이었다. 그래서 히친을 지난 뒤부터는 그나마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조이 클레이튼의 처지기 시작했다. 뉴먼은 마음속으로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른 일행보다 훨씬 뒤떨어지게 되었다. 조이는 힘겹게 비틀거리며 두 사람의 뒤를 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원래 체력이 달리는데다 잠도 부족했던 것이다. 데이브 버지가 연장 배낭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조이는 몇 번이나 길에서 쉬어야 했다.

뉴먼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동료들과 떨어지지 안겠다고 자기 결심을 말했다. 그러더니 한 잔 하자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데이브 버지는 헨로우에 있는 철도 건널목에서 놀라 날뛰는 말을 잡아 주고 2펜스를 벌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바람에 말이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조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조이는 길의 노랗게 빛나는 색깔만 보아도 현기증이 일었다. 어떤 때는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또 어떤 때는 파랗게 보이기도 했다. 기침이 심해서 몸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는 가끔씩 동료의 부축을 받고, 때로는 혼자 비틀거리며 걸었다. 자기가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거의 의식불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행들은 대부분 한참 앞으로 가 버렸다. 조금만 더 가면 풍차가 있는데 거기에 가서 쉰다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비들스웨이드 바로 바깥쪽 강가의 낡은 보트 오두막에서 걸음을 멈췄다. 거의 졸면서 걷고 있던 조이는 털썩 바닥에 쓰러지더니 해질 무렵부터 다음 날 아침 해가 훤할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데이브 버지는 문 쪽에 앉아 있었으나, 뉴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의 연장 배낭도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았자 헛일이야." 데이브가 말했다. "그놈이 한 짓이야."

"뭐?"

"그 농땡이꾼 자식 말이야. 자네 연장을 슬쩍 채 가지고 달아난 거야. 그 자식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도리가 없지."

"그럴 리가!" 조이는 파랗게 질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연장을 훔쳐가다니... 설마 그럴 리가... 세상에... 그 배낭에 든 연장은 15실링이나 하는 값비싼 물건인데... 두께나 지름을 재는 캘리퍼스까지 있는데... 믿을 수 없어... 이렇게 뺑소니를 치다니..."

그러나 데이브 버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주머니도 한 번 뒤져보게. 아마 거기에도 손을 댔을 걸세."

그가 말한 대로였다. 조이는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 2실링은 집에 부칠 참이었는데... 게다가 연장도 없어졌으니 일은 어떻게 하지? 정 일자리를 못 구하면 그거라도 잡혀서 집에다 돈을 부칠 작정이었는데... 정말이야... 그럴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 하는군!"

잠을 많이 자기는 했지만 걷느라고 너무 지쳐서 조이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데이브는 그런 조이를 다시 걷게 하느라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조이는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앞서 가던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묻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몇 마일을 아무 말도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조이가 길가의 풀덤불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