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런던 지역의 사람들은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거나, 얼쩡거리며 걸어다니기도 하고 길가에 숨어 기다리다가 튀어나와 소란을 부리거나, 먹을 것이 다 떨어진 부엌에서 울부짖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총파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미리 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조합은 파업에 들어가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파업에 들어갔다.

그보다 규모가 적은데다 준비도 덜 된 조합들 역시 동조 파업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역시 마찬가지로 파업에 들어갔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노동조합들도 분위기를 타게 되었다. 이들에게도 파업이 한창이니 동조하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래서 이들 역시 파업에 들어갔다.

연계 업종에서 대부분 파업이 진행되는 바람에 일거리는 거의 사라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도 다른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 가운데는 사정 이야기를 듣고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부두로 떼를 지어 몰려가서 소란을 피우고 난리를 피웠다는 그런 이야기를 일부러 들려줬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온 사람들은 자기네들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을 본받아 하는 일없이 떼를 지어 빈둥빈둥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튼 이스트 런던 지역은 대단히 소란스러웠고, 사람들은 거의 다 굶주리고 있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대단히 흥미롭게 이 지역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여러 가지 충고를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여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조합에서 파업 수당도 받지 못하고 먹을 것마저 부족했다.

상황이 별로 유리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맨체스터나 버밍엄, 리버풀이나 뉴캐슬 등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런던의 북쪽 그레이트 노스 가로에선 열 명씩 또는 스무 명씩 사람들이 무리지어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혼자 또는 두 사람이 함께 걷기도 했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버데트 거리에 모여 빅토리아 공원, 클랩튼, 스탠포드 힐을 거쳐 엔필드 거리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 뒤쪽에 세 사람의 사나이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입심 좋은 사내,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과묵한 사나이, 그리고 얼굴이 창백하고 근심 어린 표정의 키가 작은 사나이가 일행이었다. 얼굴이 창백한 사나이는 연장 배낭을 둘러멘 채 이따금 발작적으로 기침을 했다.

이 일행은 거의 말이 없이 묵묵히 생각에 잠겨 보도와 차도를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도 이들 노동자의 모습은 아직 부랑인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얼굴도 깨끗이 씻었고 옷도 잘 기워서 손질이 되어 있었다. 지방 법원에서 배심원으로 재판을 방청한 다음 돌아오는 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밭이 듬성듬성 드러나고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자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의 맨 앞에 서서 가던 젊은 친구는 아직 마음에 걸리는 가족도 없는 처지였다. 그는 이번 여행을 일종의 기분 전환이나 심심풀이 나들이 정도로 생각하는 기분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코디언까지 둘러메고 있었다.

그는 일행의 분위기가 침울한 것이 못마땅한지 지금 다들 알렉산드라 궁전으로 가고 있다는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그때 배낭을 메고 맨 뒤에서 따라오던 키 작은 사나이가 무의식중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손에는 3실링의 돈이 쥐어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말했다. "아마 린드라일 거야. 내가 나올 때 몰래 살짝 넣은 거겠지! 이런 짓을 왜 해? 자기는 겨우 1실링으로 애들과 함께 지내야 할 텐데..." 그는 걱정스러운 듯 갑자기 땀을 흘렸다. "우체국을 보면 바로 다시 부쳐주어야겠군. 그러면 되겠지."

"부치다니? 쓸 데 없는 짓이야!" 그와 나란히 걸어가던 입심 좋은 젊은 사나이가 경멸하듯이 말했다. "집사람은 끄덕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자네 앞가림이나 하라구... 여자들이란 항상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단 말씀이야. 이봐, 조이. 곧 피눈물이 날 정도로 그 돈이 필요할 때가 올 테니 내 말대로 그냥 갖고 있는 게 좋아. 그렇지 않아, 데이브??" 그는 과묵한 사나이에게 동의를 구했다.

"거 참, 이상도 하지..." 과묵한 사니이가 대꾸했다. "우리 마누라는 내가 떠나기 전에 주머니 밑바닥까지 샅샅이 뒤져서 가져가던데... 게다가 곧 돈을 더 보내지 않으면 자기를 빌어먹게 했다고 사람을 보내고 난리를 피우고 재판이라도 걸 거야... 여자도 여자 나름이야."

여행은 계속되고, 길은 갈수록 점점 더 먼지투성이였다. 맨 앞에 서서 가던 그 쾌활한 사나이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팔머즈그린에 도착하자, 무리 가운데 네 명의 사나이가 엔필드 병기 공장에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겠다면서 곧장 앞으로 가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어 왼쪽 퍼터즈바 쪽으로 걸어갔다.

키 작은 사나이 - 조이 클레이튼이 오래 침묵하다가 데이브에게 물었다. "데이브, 어느 쪽이 더 가까운가? 뉴캐슬인가, 아님 미들즈버러인가?"

"미들즈버러가 더 가까워. 내가 걸어가 본 적이 있어."

"걷는 것도 별로 힘든 건 아니군, 안 그런가?" 조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자네가 걸을 때도 괜찮지 않았어?"

"나는 죽 걸어갔지... 길이 고되기도 하지만, 그야 형편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운이지, 운. 내가 걸어갈 땐 날씨가 사나웠어."

"만약 지금 가는 곳에 좋은 일자리가 없으면 말이야... 젠장, 거기서도 한바탕 파업이나 일으키는 거야." 입심 좋은 젊은 사나이가 떠들어댔다.

"거기서 파업을 일으킨다고?" 조이가 놀란 듯 큰소리로 반문했다. "어떻게? 누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거야?"

"내가 하면 되지, 뭘... 나도 그만한 재주는 있다네, 안 그래? 자, 들어보라구!"

"여러분, 노동자들이 이마에 땀을 흘려 부와 풍요와 사치를 생산했으면서도 그 한가운데서 할 일이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동자 형제들이여, 이제 일어설 때입니다! 노동자를 착취하여 살이 뒤룩뒤룩 찐 저 자본가들을 무릎 꿇게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옳소! 야, 멋지구먼!" 조이 클레이튼이 큰소리로 환호했다. 사실 이것은 귀에 익숙한, 많이 들어본 말들이었다. "뉴먼, 아주 잘하는데!"

뉴먼은 사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한바탕 연설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토론회에서 익힌 재주였다. 그리고 조이 클레이튼은 언제나 뉴먼의 열성적인 청중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코디언이 이제 다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뉴먼이 다시 한 번 열변을 토했다.

"공장에선 모두들 나를 보고 농땡이꾼 뉴먼이라고 부릅니다. 왜냐구요? 그거야 물론 내가 농땡이를 치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래!" 이번에는 데이브가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러분, 난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난 철저하게 농땡이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농땡이꾼일 겁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일을 덜 하면 자본가들은 그만큼 더 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 농땡이를 친다, 이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