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에게는 조카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교회 옆에 붙은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신부는 그 조카딸을 수녀로 만들려고 단단하게 벼르고 있었다. 조카딸은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좀 경솔하고 남을 곧잘 조롱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신부가 강론을 시작하면 흔히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신부가 나무라면 소녀는 삼촌을 가슴으로 힘껏 껴안곤 했다. 그러면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이 포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는 어떤 남자의 내면에나 잠재해 있는, 아버지로서의 애정에 눈을 뜨고 그 포옹에서 아늑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신부는 때때로 소녀와 함께 전원을 걸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조카딸은 그의 이야기를 전혀 귀담아 듣질 않고, 하늘을 쳐다보거나 초목과 꽃들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삶의 행복이 감돌고 있었다. 때로는 깡충깡충 뛰어가서 작은 날짐승을 잡아 와서는 "삼촌, 이것 보세요. 예쁘죠? 정말 키스하고 싶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비나 라일락의 열매에도 "키스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녀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애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신부의 마음을 불안하고 짜증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도 여자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꿈틀거리며, 도저히 뿌리 뽑을 수 없는 사랑의 불씨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의 가사를 돌봐 주던 성당 관리인의 아내가 그의 조카딸에 대해 알려주었다. 애인이 생겼다는 귀띔이었다.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마침 면도를 하기 위해 얼굴에 온통 비누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놀라운 심정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멜라니, 설마 그럴 리가! 그렇지 않을 거요. 말도 안돼요."

그러나 농사꾼의 아내는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했다.

"원 신부님, 제가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요. 하나님의 벌이 두렵지 않다면 모를까. 저녁마다 아가씨는 엄마가 잠자리에 들기 무섭게 거리로 나가곤 한답니다. 그리고 그 남자랑 두 사람이 나란히 강가를 거닐곤 해요. 열 시부터 열두 시 사이에 강가에 나가기만 하면 언제나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신부는 턱수염을 깎다가 말고, 방안을 왔다갔다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깊은 생각에 잠길 때의 버릇이었다. 이윽고 다시 수염을 깎기 시작했으나 코와 귀에 무려 세 군데나 살을 베었다. 그는 하루 종일 침묵했다. 분하고 원통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어린 영혼을 맡은 신부로서의 분노와 함께, 정신적 또는 법률상의 보호자로서의 세속적인 분노까지도 느꼈다. 마치 자식에게 속고, 도둑을 맞고, 조롱을 당했다는 노여움과 비슷했다. 딸이 자기 마음대로 남편을 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버이로서 느끼는 배신감,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전혀 내키지 않고 짜증만 솟구칠 뿐이었다. 그에게는 지팡이가 하나 있엇다. 투박한 참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신부가 저녁에 병자를 위로하기 위해 길을 나설 때면 으레 손에 드는 물건이었다. 신부는 우락부락한 시골뜨기의 손에 쥐어져 사람을 위협하는 것처럼 휘두르기에 적당한 그 몽둥이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다 별안간 몽둥이를 치켜들고 이를 갈면서 의자를 내리쳤다. 의자는 둘로 뽀개지면서 마룻바닥에 흩어졌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다가 찬란히 빛나는 달빛을 보고 흠칫 놀라며 문간에 우뚝 섰다. 그 눈부신 달빛은 마치 생전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비록 종교인의 직업을 갖고 있지만, 기질상으로 정감이 풍성한 시인들이 흔히 지닌 감성적인 천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정적 속에서 은은하게 드러내는 달빛에 감동되어 신부는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 같았다.

작은 정원 속 모든 것이 부드러운 달빛에 고요하게 잠겨 있었다. 길게 늘어선 과일 나무는 푸른 잎을 걸치지 않은 알몸의 가느다란 그림자를 뜰을 가로지르는 길에 던지고 있었다. 한쪽 벽 위로 기어오른 무성한 넝쿨장미는 흡사 설탕을 뿌려 놓은 듯 달콤한 대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고도 환하게 빛나는 밤 공기 속에 마치 요정과도 같이 싱싱한 체취를 뿜어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