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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신부는 키가 크고 몸집이 호리호리했다. 거의 싸움꾼 같은 인상이었고, 그의 신앙은 광적이었으며, 마음은 믿음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슴 속에 신앙이 깊이 뿌리를 내려 흔들리는 일이 없었고, 자기만은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하느님을 잘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과 의도까지도 능히 짐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탱 신부도 시골의 작은 사제관 정원을 걸어갈 때면, 가끔 두 가지 의문이 생기곤 했다. 어찌하여 하느님은 그런 일을 용납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골똘히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의문에 대한 그럴싸한 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저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를 잘 알게 해주십시오. 만약 저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적어도 추측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하고 간구하곤 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모두 찬양할 만한 절대자의 말씀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왜?’라는 의문과 동시에 ‘∼때문에’라는 대답이 저울의 양면같이 언제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 햇빛은 왜 만드셨을까? 아침잠을 깬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낮은? 밀과 보리가 익으라고 만드셨겠지. 비는? 밀과 보리에 물을 주기 위해 만드셨고. 저녁은? 사람들을 졸음으로 인도하고 밤중에 푹 잠들라고 만드셨을 거야.’
신부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식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 년의 사계절은 농사짓기에 필요한 모든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대자연의 모든 현상은 맹목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반드시 그 계절과 날씨 그리고 물질적인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부는 여자만은 싫어했다. 무의식중에 싫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능적으로 여자를 멸시했다. 그리하여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인이여, 그대와 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몸소 지으신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않으시는 모양이야"하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여자란 어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열 두 번이나 죄를 지은 어린애’일 뿐이었다. 인류의 시초에 남자를 유혹하고, 그 뒤에도 계속해서 그 죄 많은 후손들을 유혹해온 것이 여자라고 신부는 생각하였다. 연약하면서도 위험한 존재,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존재, 영원히 죄에 매인 육체이면서도 사랑이 가득 찬 그 마음, 신부로서는 이러한 존재를 더욱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탱 신부 역시 지금까지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여인들의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 자신의 사랑이 신부의 견고한 믿음을 침범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 가슴 속에서 사랑의 욕구가 설레인다는 점에 대하여 신부는 짜증을 느끼곤 했다. 그의 생각에는 하느님이 여자를 만드신 것은 오직 남자들을 유혹하여 하나의 시련을 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여자에게 접근해야 할 경우에 신부는 반드시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유혹에 대한 방패를 삼고, 여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사실 여자들이 남자를 향해 팔을 내밀며 입술을 방긋 사랑스럽게 벌리는 모습은 함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일부 믿음이 두터운 여자들만이 경건한 기도의 힘으로 남자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자신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이런 여자들을 대할 때에도 어디까지나 냉정을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억눌린 마음, 이른바 경건해진 가슴속에도 여전히 그 영원한 사랑의 불길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영원한 사랑의 불길이 신부인 자기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불길을 수녀들의 믿음 가득한 눈길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그 희열 속에도 사실은 성적 감각이 어느 정도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불쾌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여자의 사랑 바로 육체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저주스런 사랑을 그들의 얌전한 마음속,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조용히 내려 깐 눈초리 속에서도, 또한 자기가 퉁명스럽게 꾸짖을 경우에 그들이 애처롭게 흘리는 눈물 속에서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수녀원 문을 나설 때면 옷자락을 털면서 마치 위태로운 곳을 빠져나오는 사람처럼 발길을 재촉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