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우리는 마치 갇힌 신세처럼 되어 버렸군요. 이 혼잡이 한 시간 안으로는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이건 제 불찰입니다. 제가 그 반지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리처드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 가락지를 저에게도 좀 보여 주세요."

렌트리 양이 말했다.

"이제 별 수 없군요. 단념해야겠어요. 사실 그 연극은 좀 시시한 거였으니까요."

그날 밤 11시 쯤 락웰 저택의 현관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와요."

붉은 가운을 걸치고 해적의 모험소설을 읽고 있던 앤서니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엘렌 고모였다. 그녀는 마치 실수 때문에 지상에 남게 된 백발의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오빠, 리처드랑 그 처녀가 약혼했다지 뭐에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세, 그 처녀가 리처드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대요. 걔들이 극장에 가는 도중에 길이 막혀 마차를 다시 끌고 나오는데 자그만치 두 시간이나 걸렸대요. 그런데 오빠, 다시는 돈 자랑하지 마세요. 진정한 사랑의 작은 상징이 리처드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랍니다. 그 애가 반지를 길에 떨어뜨려 그걸 찾으려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교통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차가 그렇게 길거리에 묶여 있는 동안 리처드가 사랑을 고백해서 그녀의 승낙을 얻었다지 뭐예요. 오빠, 진정한 사랑에 비하면 돈은 아무 것도 아니라구요."

"그래? 아무튼 우리 아들녀석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잘 되었구나. 나는 그 녀석에게 말해 줬단다. 이 일에 대해서는 결코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이야, 만약에 말이야…."

앤서니 노인은 말했다.

"하지만 오빠, 이번 일에는 오빠의 돈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어요?"

"얘야!"

앤서니 노인은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해적이 엄청나게 곤란한 지경에 빠졌어. 녀석의 배가 곧 침몰할 처지인데, 녀석은 돈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를 침몰시키지는 않을 것 같구나. 제발 부탁이니 이 부분을 마저 읽도록 해주렴."

이튿날, 손이 거칠고 푸른 바탕에 물 방울 무늬가 박힌 넥타이를 맨 켈리라는 사나이가 앤서니 노인을 찾아왔다. 그는 곧바로 서재로 안내되었다.

"아주 잘했네, 가만있자…. 자네에게 내가 현금으로 5천달러나 줬지?"

"하지만 제 돈이 3백 달러나 더 들었지 말임다."

켈리가 주장했다.

"예산이 좀 초과되었지 말임다. 우편 화물차와 마차에는 5달러씩 들었지만, 트럭과 말 두필이 끄는 큰 마차는 거진 10달러씩 들었지 말임다. 전차 운전수는 5달러를 달라고 말임다. 대형 화물차 운전수는 5달러를 내라고 하지 말임다. 제일 골 때리는 게 짭새지 말임다…. 두 인간한테 50달러씩 주었지 말임다. 그런데 어르신, 일은 그래도 멋들어지게 끝냈습죠?

경찰국장 윌리엄 A. 브레 씨가 이번 소동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게 다행이지 말임다. 윌리엄 씨가 직무에 충실하다가 심장 터지는 걸 보고 싶진 않지 말임다. 그런데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못할 짓이지 말임다. 그 인간들이 1초도 틀리지 않고 제때에 들이댔지 말임다. 무려 2시간 동안 뱀 새끼 한 마리도 그릴리 동상 아래를 얼씬하지 못했지 말임다."

"그래 잘 알았네. 켈리, 자! 1,300달러 더 받게."

앤서니 노인은 수표 한 장을 떼어주면서 말했다.

"자네 몫으로 1천 달러, 그리고 초과된 3백 달러일세. 자넨 설마 돈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아닐 테지."

"제가 말임까?"

켈리가 대답했다.

"전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난을 만들어낸 작자들을 개바르고 싶지 말임다."

켈리가 문까지 갔을 때 노인은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자네 혹시 어제 거리가 한창 복잡할 때 길거리에서 홀딱 옷을 벗은 통통한 소년(편집자 주 : 사랑의 신 큐피드를 비꼬아 말한 것)이 한쪽에서 활을 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그런 건 전혀 못 봤지 말임다."

케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그런 녀석이 있었다면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짭새가 끌고 갔지 말임다."

"물론 나도 그런 꼬마 건달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켈리, 그럼 잘 가게나."

앤서니 영감은 혼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