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하나구나…"
존시가 말했다.
"지난밤에 꼭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밤새 바람 부는 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오늘은 꼭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 때 나도 죽을 거야."
"제발, 제발…!"
수우는 지치고 피곤한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며 말했다.
"그런 소린 하지 마. 자기 생각을 하기 싫더라도 내 생각 좀 해주렴. 난 도대체 어떡하란 말이야?"
그러나 존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것은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존시는 이 세상에서 자기와 이어져 있던 모든 매듭이 하나하나 풀리면서 더욱 더 환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수우에 대한 우정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루가 또 지나가고 황혼이 다가왔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 그 담쟁이 잎새는 여전히 벽에 달라붙은 덩굴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윽고 어둠이 닥쳐오면서 또다시 북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렸다. 낮은 네덜란드식 처마에서 빗방울이 쉴새없이 흘러 떨어졌다.
그 다음날 또 날이 밝아오자 존시는 커튼을 올려 달라고 졸랐다.
담쟁이 잎새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존시는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존시는 수우를 불렀다. 수우는 가스 난로 위에 닭고기 수프를 올려놓고 젓고 있었다.
"수우디, 이봐, 내가 잘못했어."
존시는 말했다.
"뭔가가 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걸 가르쳐 주려고 저기에 마지막 잎새를 하나 남겨두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젠 알겠어. 죽기를 원하는 건 죄를 짓는 거야. 자, 수프를 조금 갖다 줘. 밀크에 포도주를 탄 것도. 아냐, 우선… 거울을 좀 보고 싶어. 베개를 몇 개 등에 받치고 일어나 앉아야겠어. 그래서 네가 아침 차리는 걸 봐야지…"
한 시간쯤 지나자 존시가 말했다.
"수우디, 언젠가는 꼭 나폴리만을 그리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찾아왔다. 의사가 돌아갈 때 수우는 슬쩍 복도로 그를 따라 나왔다.
"이젠 좀 희망이 엿보이는구먼!"
의사는 수우의 가냘프게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간호만 잘하면 아가씨 당신이 이길 거야. 난 또 아래층에 가서 새로 병이 난 다른 환자를 봐야겠어. 베어맨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도 글쎄 무슨 예술가라고 하더군. 그 사람도 폐렴이야. 갑자기 병이 든 모양인데 글쎄, 나이가 많은데다 몸도 약해서 어려울 것 같구먼. 그러나 고통을 좀 덜어줘야지. 그래서 오늘 입원을 시킬 계획이야."
다음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이제 위험은 완전히 벗어났어. 아가씨, 아가씨가 이긴 거야. 이제 영양 섭취를 잘하도록 돌봐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야!"
그날 오후, 존시는 침대에 누워 파란 털실로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그 목도리가 별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때 수우가 그녀에게 다가와 팔로 베개와 이불까지 한꺼번에 존시를 끌어안았다.
"요 생쥐 같은 아가씨야, 네게 할 얘기가 있어."
수우는 말했다.
"베어맨 할아버지가 폐렴에 걸려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어. 겨우 이틀 앓았을 뿐인데… 병이 나던 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 할아버지 방에 가보니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신음을 하고 있었단다. 구두고 옷이고 몽땅 젖어서 꽁꽁 얼어 있었다는 거야. 도대체 그렇게 비바람이 사나운 밤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상상도 못한 거야.
그런데 관리인이 방안에서 무얼 봤는지 알겠니? 불을 켜 놓은 랜턴, 헛간에서 끌어온 사다리, 붓 두세 자루, 초록색과 노란 색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 이런 것들이 방안에 흩어져 있더라는 거야. 자, 창 밖을 한번 내다 봐. 저기 벽에 담쟁이 잎새가 딱 하나 붙어 있는 게 보이지? 바람이 이렇게 거세게 부는데도 꼼짝도 안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았어? 존시! 저게 바로 베어맨 할아버지의 걸작이었던 거야.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그날 밤, 그분이 벽에다 저걸 그렸던 거야."
<끝>
마지막 잎새 - 4. 베어맨 할아버지의 걸작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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